Chapter 1. 장국영에 대한 기억은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언제부터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었더라?’
‘수많은 홍콩배우들 중에서도 왜 장국영이었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렇게 고민하다 내가 내린 답은 어쩌면 꽤나 시시할 지도
‘음... 처음부터 장국영이라는 사람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아닌 것 같아. 홍콩영화도 마찬가지고’
누군가 나에게 너의 최애 영화가 뭐야?라고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장만옥, 양조위 주연의 “화양연화"라고 말했을 것이다. (매 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이 영화를 보는 건 나의 연례행사이다) 그럼 어떻게 내가 그의 팬이 되었냐고? 내가 그에게 빠진 여러 포인트가 있었지만, 간단히 몇 개만 설명(을 빙자한 자랑)을 해보려고 한다.
첫번째는 일단 헤어나올 수 없는 얼굴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비정전을 처음 봤을 때 그의 눈빛, 그의 옆모습을 잊을 수 없다.지금도 내 방에 우수에 젖은 눈빛을 가진 청데이(장국영)의 포스터가 크게 걸려있을 정도니까.
두번째는 그의 가치관이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삶의 가치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로 귀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삶에 대한 혹은 본인의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간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배울 게 많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게 그 생각은 적중했다) 그렇기에 나도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단단한 사람이 되려 많은 노력하고 있다. 그 시작은 아마 장국영이 아니었을 까 생각한다. 장국영이 활동했던 80~90년대의 홍콩은 황색언론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장국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게 내가 그에게 빠진 이유이다.
세번째는 나와 그의 생일이 하루 차이라는 것. 장국영은 1956년 9월 12일에 태어났다. 셋째 형, 넷째 누나, 아홉째 형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7남매나 다름없었는데, 장국영의 생일이 아홉째 형과 생일과 같아 그를 죽은 아홉째 형의 환생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나는 2001년 9월 13일에 태어났다. 우리 사이에는 45년이라는 큰 간극이 있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9/12 그리고 9/13이라는 숫자이다. 2024년의 그의 68번째 생일이었던 9월 12일에 난 홍콩에 있었다. 물론 나의 생일이었던 9월 13일도. 추후 나는 장국영의 22주기인 2025년 4월 1일에 발매한 첫EP [TRANSPONDER]의 1번트랙에서 ‘0912(아비정전)’이라는 제목으로 그에게 보내는 헌정 곡을 만들었는데, 이 이야기는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에서 자세히 풀어놓았다
[56년생 장국영 01년생 레슬리]에서는 이제는 먼지가 낀 창틀을 통해서야만 볼 수 있는, 희미해져가는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2023년 2월에 떠났던 홍콩의 순간들을 메인으로 나의 홍콩 여행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내가 홍콩을 사랑하게 된 이유의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곳이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강산도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지구의 어떤 곳보다 홍콩에는 그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