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시간이 멈춰버린 곳

Chapter 3. 홍콩 섬에서 장국영 찾기

by LesliE

장국영을 떠올리면, 나는 단언컨대 아비정전의 대사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당신과 여기 같이 있고 당신 덕분에 난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하겠네요”

수리진(장만옥)에게 소위 ‘플러팅 멘트’를 던지는 아비(장국영) 그리고 그 대사 뒤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느릿하게 움직이던 커다란 시계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장만옥의 이름이 수리진이라는 것에 흠칫했을 것인데, 화양연화에서의 장만옥의 이름 역시 수리진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화양연화와 2046에서 양조위의 이름도 '주모운'로 동일하다)


아비정전에 등장했던 그 시계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센트럴에 위치한 중국은행 구관 주차장에서 지금도 실제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은행 구관을 찾았을 때는 일요일이었다. 건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시계는 둘째치고, 주차장 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날은 주차장 자체가 열려있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휴무였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뿐이다.)


다음 날인 월요일 그곳을 다시 찾아갔을 때서야, 열린 주차장과 함께 비로소 그 시계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아비정전에 사용된 전설의 시계가 중국은행 구관 주차장에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행 건물은 어떤 모습일까?'


[현) 중국은행 타워]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다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중국은행 타워까지 찾아가 보게 되었는데, 홍콩을 대표하는 스카이라인 중 하나로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그 건물을 설계한 구조 엔지니어의 이름이 Leslie E. Robertson이었는데, 이제는 '레슬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괜히 웃음이 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느새 장국영은 이렇게 내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장국영이 생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몽콕 카두리 에비뉴 골목 끝자락에서 과거 그의 집이었던 곳을 한참 바라보고 서있었던 것처럼, 장국영이 찍었던 화보집의 장소라는 이유로 센트럴의 만모사를 방문하여 한참을 서성였던 것처럼, 난 장국영을 직접 마주했을 아비정전의 시계 앞에서 또 한참을 서있었다.


다시 돌아와, 처음 중국은행 구관을 방문하였던 일요일, 지인과 근처 황후상 광장에서 모여 피크트램을 가기로 하였기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 메인 거리로 나왔다. 앞을 지나가는 트램 사이로, 황후상 광장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사실 황후상 광장의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다면, 더 이상 이곳을 황후상 광장으로 부를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이 이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로 인해 황후상 광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홍콩을 점령했던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었으나, 현재는 코즈웨이 베이의 빅토리아 파크로 옮겨져 있다. 마치 주인공 없는 무대 같은 광장이랄까.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은 옮겨졌지만, 현재 황후상 광장에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홍콩 상하이 은행 초대 은행장을 지낸 토머스 잭슨의 동상이라고 한다.


지인과 황후상 광장에서 천천히 걸어 피크트램으로 이동했다. 육교도 건너고, 홍콩 하면 떠오르는 빨간 택시들도 실컷 바라보았다.


사실 빅토리아 피크는 장국영과 관련된 공간이 꽤나 있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밀랍 인형 박물관 '마담 투소 박물관 홍콩'이다. 많은 사람들이 빅토리아 피크를 방문하면서 함께 방문하곤 하는데, 나의 영원한 롤모델 장국영의 밀랍인형 역시 그곳에 위치하여 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밀랍 인형이 장국영과 닮지 않았다는 점이 컸다. 또한 그가 떠난 지 시간이 많이 흘러 한때 그의 공간이 어느새 많이 줄었는데, 그래서인지 방문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영화 '금지옥엽' 포스터

두 번째는 이제는 사라진 빅토리아 피크 카페 데코이다. 실제로 이곳은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금지옥엽'에서 무려 3번이나 등장하는 곳이다. 장국영 팬이라고 말하면, 영화 속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평생 그 경험을 해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아쉽긴 하다.


세 번째는 내가 유일하게 방문한 빅토리아 전망대이다. 이곳은 영화 〈성월동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인데,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곳을 바라보며 히토미와 가보의 재회 장면을 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미소를 짓던 장국영의 표정..


피크트램을 타고 10~15분 만에 올라온 해질녘의 빅토리아 피크 스카이 테라스 428. 해가 지는 시간에는 개인적으로 센트럴이 보이는 앞쪽보다 바다가 보이는 뒤쪽이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금세 찾아온 어둠. 몸을 돌려 센트럴, 침사추이가 보이는 빛나는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도 역시 장국영 생각을 했다. 시간이 꽤 흘러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이곳을 올라온 장국영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날도 역시 하루 종일 장국영 생각을 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던 날이었다.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홍콩 국가보안법 이후 많은 기업들이 홍콩을 떠나 과거에 비해 야경의 화려함도 많이 줄어들었다'라는 홍콩 지인의 말을 듣게 되었다. '아, 그래요?'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이번이 첫 홍콩방문인 나는 과거의 야경을 본 적이 없었기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P.S

: 이 글을 쓰기 위해 장국영과 관련된 여러 블로그와 책을 보다 보니, 아직 내가 방문하지 못한 장국영의 장소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성월동화〉에 나왔던 센트럴의 Entertainment Building Shopping Arcade.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데, [장국영을 찾아 떠나는 홍콩여행 2탄]을 계획해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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