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가 돈이 되지 않게 된 어느 시점부터 우리 집은 포도농사로 대체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포도농사를 짓고 있으니 아직 포도밭 집 딸인 것이다. 주업은 포도농사지만 부업으로 다양한 푸성귀와 양념들을 거의 자급자족한다. 그중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마늘 뽑기와 고구마 캐기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집안 농사를 도맡아 한 것 같은데 그건 절대 아니다. 가끔씩 기회가 될 때 도와주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더라.
요즘은 엄마도 마늘농사는 짓지 않는다. 그래서 마늘을 사 먹게 되었다. 나는 엄마 집에서 가져다 먹는다. 엄마는 깐 마늘, 편 마늘, 다진 마늘로 구분해서 다진 마늘은 블록 형태로 냉동시켰다가 꺼내 준다. 시간도 넉넉해지고 차편도 편리해진 요즘은 필요할 때마다 들러서 양념들을 가져다 먹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땐 1시간 내외 거리지만 자주 들리지 못했다, 마음먹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나서는 친정행은 실로 힘든 여정이었다. 고난의 행군 같은 거였다. 엄마 집에서 돌아오는 길의 그 올망졸망한 보따리들은 피난민들의 그것인가 싶을 정도로 종류가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냉장고 정리를 위해 보따리를 풀어헤칠 때는 늘 눈물을 줄줄 쏟았다.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될 정도로 씻고 다듬고 소분해둔 그 많은 종류들, 통깨, 깨소금, 참기름, 채소들 역시 날것은 날것대로 다듬어 씻어져 있었고, 익힐 것은 또 그것대로 데쳐져 있었다. 삶은 시래기는 된장과 갖은양념으로 무쳐져 있어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시래기 된장국이 되게끔 장만돼있었다.
이제 내 아이들이 독립할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난 엄마처럼 내 자식한테 반에 반도 못한다. 그렇다고 효도 또한 자신이 없다. 엄마는 소소한 아주 작은 것도 늘 고맙다고 말해준다. 가끔씩 고기를 주문해 보내고, 밥 한 끼 같이해도 엄마는 늘 고맙단다. "내가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래 자꾸 받기만 해서 되겠나?"라고 하신다.
얼마 전 구입한 전동 깨갈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엄마도 사드렸다. 엄마는 또 "고맙다." 하신다. 그런데 나는 왜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입에서 안 나올까? 마음에는 수천 개, 수만 개의 그 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말이다. 시크한 딸내미.
마트 앞마당에 잔뜩 널려있는 마늘을 보고 한 망 들여왔다. 겁도 없이 저녁에 모두 물에 담갔다. 아침 일찍 깔 요량으로, 마늘 까는 일이 이렇게 큰 노동이었던가? 두어 시간 남짓이었던 것 같은데 허리가 뒤틀리더니 손이 아리고 칼을 잡은 손가락은 물집이 잡힐 듯 벌겋다.
이미 물에 불린 마늘을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 온몸을 뒤틀다가 겨우겨우 다 깠다. 손가락이 벌겋고 얼얼하게 달아올라있다. 마늘을 까는 내내 김장 마늘을 혼자 깠을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 김 올려서 찐 마늘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 '나에휴식울엄마' 다.
"너거 마늘 있나?"
"에고~ 엄마 내 마늘 까다가 죽을뻔했다ㅠㅠ"
"없으면 째매씩 까낫는거 사묵지, 만따꼬 그 마이를 까노~"
어쩌면 나는 엄마 덕분에 지금껏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늘하고 지독했던 시절, 삶과 죽음이 맞서던 그때, 오직 엄마의 기운으로 나도 아이들도 지켜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방금 깐 마늘의 반들반들하고 투명한 윤기가 시중의 포장된 마늘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는 고운 때깔이다. 너무 반들반들해서 내 얼굴이 비칠 지경이니 말이다. 너무 이뻐서 꿀 마늘을 조금 만들었다. 몇 년 전 친구가 선물해 준 잡화꿀이 약이 되어가는지 점점 더 까맣게 짙어지고 있다.
깐 마늘은 김 오른 채반에 올려 10분 정도 쪘다. 찌고 나니 마늘의 강한 매운맛이 순하다. 하루 정도 수분을 날리고,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담고 밀봉했다. 그대로 이틀 실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었다. 5일 후부터 하루에 서너 알씩 꾸준히 먹어볼 요량이다. 한 병은 엄마 꺼.
3일 숙성 후 목살구이에 곁들였다. 아들이 깨끗이 싹 비웠다.
마늘은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 하여 예로부터 '일해백리(一害百利)' 라고 불리었다 한다. 만병통치 식재료인 셈이다. 이렇게 좋은 성분의 마늘을 호랑이는 왜 거부했을까? 너무 매운맛에 열불 나서 동굴을 뛰쳐나온 건가?
그럼 매운맛 없는 꿀 마늘을 먹였다면 어땠을까? 우리 조상이 바뀌었을까? 아니다 꿀 마늘을 먹였어도 인간은 되지 못했을게다. 너무 맛있어서 100일, 1000일 계속 동굴에서 안 나왔을 테니 말이다. 결국은 산신이 되었으려나? 백두산 산신 말이다.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오후네요. 이렇게 글자를 입력하고 드래그하면 메뉴를 더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