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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의 뮤즈를 만나다

by 있다


억압된 것은 없어지지 않고 귀환한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 T.S 엘리엇이 있었다면 대구에는 시인의 생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권도훈 대표님이 있다. 대표님의 손끝에서 귀환한 상화 시인의 라일락 뜨락은 시인이 간절히 바랐던 봄이다.

한때는 대구 근대골목의 해설사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보수의 텃밭, 보수의 심장이라 일컬으며 대구의 의미가 처참하게 훼손됨이 억울해서다. SNS 상에서 흔히 접하는 대구를 향한 비방, 분노의 구체적 종착지는 어디란 말인가?


개인적 견해로 '보수'라 함은 연암의 '법고창신'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수구꼴통=보수'의 공식으로 규정짓는 행태가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대구경북은 국란 때마다 일어섰으며,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의병투쟁, 국채보상운동, 3.1만세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항거가 있었던 대구경북의 보수성을 제대로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대구 중구에 위치하고 있는 라일락 뜨락은 이상화 시인의 생가다. 이상화 고택은 익히 회자되어 친숙하지만 생가는 생소한 분들이 많을 거다. 고택이 당연 생가 거니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랬었다.


대구 공구골목 인근에 어깨동무를 해야만 지날 수 있는 골목을 돌아 해바라기 벽화를 따라가면 상화를 만날수 있다. 나처럼 길치라면 노란 바람 살랑이는 봄에 방문하면 된다. 라일락 향기만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인 곳.


대표님의 마음과 이야기가 깃든 음료를 마시며, 뜨락의 200년을 거슬러 우리 곁에 서 있는 라일락에게서 시인의 뮤즈 마돈나를 본다. 일제강점기를 관통하고 빼앗긴 봄을 찾은 모두가 위인이다. 그 봄을 위해 라일락의 향기는 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라일락 향기는 어떠했을까? 일제강점기의 라일락 향기는 또 어떠했을까? 1945년의 향기는? 라일락의 기억을 스캔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늘 억울하기만 했지는 않았을까? 저항시인이라 불리는 이상화 시인의 시를 눈물로 받아 읽는다.


도로 하나를 두고 건너편에는 재개발로 인한 대형 브랜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불안하다. 침범당할까 봐. 빼앗길까 봐. 자본에 끌려갈까 봐 마음이 쓰인다. 지금껏 수많은 유실과 소멸을 경험해왔다. 정체감 유실로까지 이어지는 타임랩스 속의 나와 문득 마주치던 날의 광장공포증 같은 것.


라일락 뜨락은 그냥 카페가 아니다. 신념으로 지켜내야 되는 곳이다. 그 신념이 어떤 개인의 희생이어서는 안된다. 가치 있는 길을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할 따름이지 않은가. 라일락 향기만큼 멀리 가는 꽃도 없다. 거기에 인향만리까지 더하면 라일락뜨락1956는 지구 두 바퀴는 거뜬하게 번지리라.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상화시인이 즐겨마셨다는 만델링 향은 더욱 깊을 것이다. 오래 쓴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하지 않는가. 시인의 송가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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