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내용 스포가 많습니다. 영화를 보고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람은 가끔 사랑 때문에 미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사랑에 미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다만 중요한 점은 어떤 방향으로 미치고 있는가이다. 방향이 +인지 -인지에 따라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방향과 -방향으로 사람이 사랑에 미치는 모습을 골고루 보여준다.
지지는 코너와 소개팅 후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전화가 오지 않자 본인이 먼저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긴다. 이 과정에서 지지의 친구들은 소개팅 이후 11일 만에 연락이 닿아 잘 되었다는 사례도 봤다는 둥, 희망 어린 말들을 해주며 지지를 응원한다. 그 때문에 지지는 자신을 - 방향으로 이끄는 행동을 멈추지 못한다. 그녀는 하루 종일 전전긍긍해하며 코너의 전화만 기다린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코너가 자주 간다는 바에 찾아가고, 그곳에서 그녀는 코너가 아닌 알렉스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미친 사람 같은 행동을 자각한다. 알렉스는 ‘그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진실을 지지가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동 그 자체를 ‘- 방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랑에 미친 행동은 ‘-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지는 알렉스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행동이 ‘- 방향’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지지는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남자들의 반응, 자신만 진심을 다하고 있는 상황, 그 신호들을 애써 무시해왔던 스스로를 점차 투명하게 마주한다. 지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뼈아픈 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을 때, 지지의 사랑은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현실을 냉정하게 자각할 수 있을 때, 지지는 현명한 방식으로 사랑에 미칠 수 있었다. 책 “자기 결정”에서 페터 비에리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경험과 내적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14)”의 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주체적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현실과 자신을 당당히 정확하게 마주해야 한다. 사랑에 휘둘리기보다 사랑을 건강하고 용감한 방식으로 휘둘러야 한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할 때, 사랑은 사람을 ‘- 방향’으로 미치도록 한다. 애나는 처음부터 벤이 유부남인 사실을 알았고, 그 때문에 그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접근하기를 택하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와의 사랑에 뛰어든다. 벤과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된 애나의 사랑은 어느새 불륜으로 치닫고, 애나는 결국 코너에게도, 벤의 아내 제인에게도 몹쓸 바람피운 내연녀가 된다. 그리고 결국, 애나는 벤의 사무실에서 모욕적인 상황에 처한다. 그녀의 사랑에 미친 행동은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큰 상처를 안겨준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결국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애나는 ‘- 방향’으로 정상 궤도를 이탈한다.
제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강한 의지로 벤과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는 벤의 거짓말과 바람을 어떻게든 눈 감아주며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벤이 자신에게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더는 자신이 노력하고 참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거울을 깨부수며 고통스러워 하지만, 이내 결단력 있게 이혼을 통보하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금 새롭게 마주한다. 그녀는 벤과의 결혼 생활에서 비상식적인 수준의 헌신과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바쳐왔다. 그러나 사실 이는 그녀가 가장 원하는 바도, 그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행동도 아니었다. 그녀의 사랑에 미친 행동은, 스스로를 속이며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용감하게 스스로의 마음을 따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사랑의 행동에는 ‘- 방향’과 ‘+방향’이 있으며, 둘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 기준은 솔직함이다.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의 차이다. 페터 베어리는 우리는 사실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모두 진실을 추구하는 욕구와 정직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때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를 무시하기도 하고, 그럴 때 사람은 ‘자기 존중’을 하지 못한 채 스스로에 대한 경멸을 느낀다고 한다. (66) 어쩌면 지지, 애나, 제인 모두 ‘- 방향’의 사랑에 미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을 보는 관객들 역시, 그런 경험을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때문에 인물들이 유쾌하지 않은 진실을 결국 용감하게 대면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삶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관객들 역시 마음이 움직이는 지도 모르겠다.
한편 ‘사랑에 미쳐’ 나타나는 평소와는 다른 행동은, '+방향'의 영향, 즉 성장과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알렉스는 수많은 여자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도 정작 진심으로 사랑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그는 지지의 고백을 듣고, 뒤늦게 자신이 지지를 좋아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새로운 선택을 향한 용기를 낸다.
닐과 베스도 사랑으로 인해 이전과 다른 선택을 결심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닐은, 결국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베스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무척이나 결혼을 바라왔던 베스는 결혼을 포기하고서라도 닐을 곁에 두고자 한다. 이처럼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바라왔던 모습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행동이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바를 깨닫고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원한다고 생각했던 베스는 사실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닌 ’닐과 함께하는 나날들‘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타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에 미친 행동’은, 자신이 무엇을 더,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깨닫도록 한다.
진실한 내면을 자각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사람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 서로에게 솔직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붙잡을 용기를 내는 일이 ‘+ 방향’의 사랑에 미친 사람의 모습이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실천할 때, 더 큰 행복의 기회가 다가온다. 사랑은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투명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된다. 그렇게 사랑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더 큰 행복이 다가온다.
정리하자면, 영화에서 말하는 ‘- 방향’의 ‘사랑에 미친 행동’은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하고 하는 행동,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방향’의 ‘사랑에 미친 행동’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아주 솔직하게 마주하며 내리는 선택이다.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떠올려보자. 자그마치 ‘51년 9개월 4일‘동안 한 여자를 짝사랑해 온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인생이 단순히 낭비였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에 미친 행동'은 그것이 어떤 방향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당신은 사랑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둘째, 당신은 당신을 둘러싼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셋째,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자신의 진심에 충실하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사람은 ’-‘가 아닌 ’+‘방향으로 사랑에 미칠 수 있고, 그러한 미친 행동은 삶이 한층 더 행복해지도록 돕는 기회가 된다. 사랑에 미친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판단력을 얻어간다. 그들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말로 사실을 재빠르고 당당하게 직시할 수 있도록 성장해간다. 그렇게 영화 속 인물들은 + 방향으로 미치는 사랑에 기꺼이 뛰어들어보거나, - 방향의 사랑으로부터 과감히 뒤돌아선다. 이 영화는 사랑을 통해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더 나은 너와 나’를 빚어가보자고 말하고 있다. 당신은 사랑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랑에 미칠 준비가 되었는가.
한 줄 평 : 그렇게 우리는 + 방향으로 미치는 사랑에 기꺼이 뛰어들어보거나, - 방향의 사랑으로부터 과감히 뒤돌아서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