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절대적이지 않은 틈 찾아내기
오후 2시, 전날 비가 내린 후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평소 자주 뛰던 트랙으로 향했다. 기온은 30도, 쨍한 햇빛이 부드럽게 지면을 달구고 있었다.
낮이라 좀 덥다는 생각과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보통 4명 이상은 트랙 위에서 이미 달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 날은 유독 한산했다. 7월이면 여름이고, 여름에는 더위를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나는 그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트랙, 그 트랙이 곧게 뻗어 저 멀리서 곡선으로 꺾이고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기다란 트랙이 온전히 내 눈앞에만 놓여있었다. 가만히 나의 뜀박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도 러너스 하이를 느껴본 적이 있어?
30분 이상 달리기를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온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 짧게 뛰는 와중에도 러너스 하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는 했다. 때로는 달리는 중간에, 때로는 달리기를 멈춘 후 자유의 쾌감과 성취감이 온몸에 전해졌다. 쉼 없이 움직이는 뜨거운 근육들과 휙휙 스쳐가는 주변의 사물들, 에어팟으로 들려오는 자유로운 음악이, 도망치듯 저 뒤편에 두고 온 무언가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는 기분이 들었다. 발바닥이 지면을 힘차게 밀어내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속박의 굴레로부터도 훌훌 벗어나는 듯한 미묘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달까.
그러나 이 여름의 한낮, 텅텅 빈 트랙을 마주하며 차근차근 열기를 밟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트랙을 달리는 일은 어쩌면 쳇바퀴 돌기와 비슷했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이 같은 장소를 뱅글뱅글 맴도는 것이다. 처음 뛰기 시작할 때는 새롭고 즐겁다. 바람을 가르며 주체적으로 뜀박질을 만끽한다. 그러나 뛰다 보면,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서’ 뛰는지에 대한 대답이 흐릿해진다. 물론 트랙 밖에서 뛰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날은 5km를 채워 달리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내가 만약 5km를 채워 달린다면, 분명 목표를 달성한 뿌듯함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터였다. 그러나 왜 무엇을 위해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가? 목표를 달성하고 찾아오는 뿌듯함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왜 5km를 꼭 채워야 하지? 4.8km만 뛰면 안 되나? 지인들과 애플워치 없이는 달리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할 만큼 기록 측정은 러닝의 큰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서 그래서 왜 기록을 달성해야만 커다란 뿌듯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 해방감이 든다. 나는 대체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을 느끼는가. 사실 그냥 등 뒤에 무언가가 쫓아올까봐 겁이 나서, 잡히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달리는 꼴에 가깝지는 않냐고 물어보면,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멈추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끔 러닝을 하다 보면,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멈추는 순간 내가 애써 멀어져왔던 무언가에 다시 붙잡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들 때가 있다. 혹시 나는 그저 일단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작정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순간의 기쁨을 도피 삼아,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트랙을 하염없이 돌고 있지는 않은가.
홀로 트랙 위에서 달리기를 하며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생각은 ‘움직임-멈춤’의 이분법이었다. 러닝을 하면 ‘뛰거나-멈추거나’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멈춤은 한계와 포기, 실패를 연상시키고, 뛰는 행위는 건강하고 멋진 정답으로 다가온다. 멈춤보다는 달리기를 택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러닝 무리에서 함께 뛰다 힘들어서 홀로 멈추면 낙오된다. 나는 단체로 뛸 때 언제나 낙오를 필사적으로 피해왔다. 5km까지밖에 못 뛰었던 내가, 낙오가 싫어 남들 다 뛰는 만큼 8km, 10km까지 뛰기도 했고, 그 이상 뛰는 모임에는 처음부터 나가지 않았다. 낙오에 대한 두려움은 결론적으로 내가 뛸 수 있는 최대 거리를 늘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나는 ‘움직임-멈춤’의 폭력적인 이분법을 두려워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 여름의 한낮, 오롯이 혼자 트랙 위에 서자 그 이분법은 더욱더 나를 사로잡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트랙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달리거나 멈추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크게 실감 났다. 그리고 멈춤이 두려워 달리기를 선택하고 열심히 뛰는 나의 모습은 요즘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겹쳐 보였다. 멈추기보다는 달리는 편이 더 좋아 보이니까 일단 열심히 달리고는 있는데, 나는 과연 어디를 향해서 무엇이 좋아서 달리고 있는지, 내 뒤에 잠시 두고 온 무언가가 나를 발끝까지 쫓아올까 두려워 더욱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멈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은 아닌지 구체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었다. 도대체 나는 왜 러닝을 좋아하는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느낌에 비해 아무것도 명확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달리기를 하면 어김없이 해방감과 상쾌한 기분이 찾아오며, 나의 건강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고 있으며, 오늘의 목표를 채우면 어떤 뿌듯함이 밀려온다는 점. 이런 점들이 좋으니 그냥 이렇게 계속 달리기만 하면 되나?
종종 ’ 움직임-멈춤‘의 세계가 트랙 너머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날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힘겨운 직장생활과 모진 학교폭력, 성공에 대한 압박과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실패로 인한 극단적 선택을 접하곤 한다. 인생을 뛰거나 멈추거나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달리기를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주어지는 선택지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인생이라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이 맹목적인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질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지’는 달리기를 잘했으나 부상으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멈춤’ 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을 견디기 버거워진 ‘미래’는 그 달리기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을 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그 고착상태를 해결해 가지만, 어쨌거나, 많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었기에 드라마 역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탄환임이 드러난다. - 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103면.
모든 달리기가 자기 착취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한 행복과 도가 지나친 착취는 종이 한 장 차이와도 같다. 결국 스스로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얼마 전 달리기 모임에서 저녁에 달리기를 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 날씨 더울 때 달리기를 했는데, 두 명인가 달리다가 쓰러졌어요. 진짜 조심해야 돼.” 달리는 그 순간, 찾아오는 자유와 상쾌함은 정말 기분을 좋게 한다. 꾸준한 달리기는 요즘 유행하는 ’ 저속 노화‘와 건강 향상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유는 잘 몰라도 나 역시 달리기가 좋다. 목표한 바를 이뤘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과 단순한 즐거움, 달리기가 나에게 주는 모든 이점들, 그것들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즐거움이 어느 순간 나에게 폭염 속 달리기처럼 달콤한 독이 될 수도 있지는 않은가.
하나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여 말 그대로 삶의 작가요, 그의 주체가 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건을 단순히 맞닥뜨리거나 당하여 그 일로 인한 경험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압도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주체가 되는 대신에 단순히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자기 결정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문항심 옮김, 은행나무, 13-14면.
정신줄을 잘 붙잡아야 한다.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스스로가 확고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트랙 위에 서서 처음으로 막 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 주체적으로 나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 정신줄을 잘 붙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달리다 보면, 예를 들어 10km를 뛰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8km 즈음부터 이미 한계에 다다른듯한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때 나는 첫 발걸음을 기억하며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까지 달리고 있는지, 그럼에도 더 달리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내가 반드시 이렇게까지 10km를 채우고 싶은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그렇지 않다면 9km만 뛰고 멈춘다면 어떨지.
달리기가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면 꼭 그 순간부터 영영 패배하는 멈춤이 기다리고 있다는, 때로는 그러한 멈춤을 내가 원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부상 위험을 안고서도 무리를 하거나, 아예 모든 상황에 대한 극단적인 멈춤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멈춤의 기회는 한 번뿐인 것은 아니다. 지금 나의 멈춤은 그저 이번 트랙에서의 달리기의 멈춤일 뿐이다. 이번 멈춤을 통해 앞으로 몇 번이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언제든 다시 ‘달리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어쩌면 그러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지금 당장 잠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결국 지금 달리기를 멈추고 싶은 이유는 나중에 다시 더 잘 달리고 싶기 때문이지 않은가.
7월의 어느 일요일 한낮, 나는 목표한 5km를 뛰는 대신, 4km도 아닌 애매한 4.21km를 뛰고서 멈추었다. 달리기에서도 인생에서도 ‘움직임-멈춤’ 상태의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없고, 무조건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택할지 정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살다 보면 누군가는 죽어라 뛰는 내 위에서 하늘을 유유히 가로지르며 비범하게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또 누군가는 차마 봐주기 힘들 만큼 위태롭게 비틀대며 한 걸음씩 힘겹게 내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 나의 페이스에 맞추어 달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가 끝없이 산에 바위를 굴리고 또 굴리는 형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 일을 ‘주체적으로’ 수행할 때 그는 행복한 시지프가 된다고 하였다.
세상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 절대적이지 않은 틈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선택할 때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달리기와 멈춤, 둘 중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나를 위한 자유의 선택인가? 그 선택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에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뜨거운 한낮의 폭력적인 ‘달리기-멈춤’의 압박 속에서 빠져나왔고, 5km도 4km도 아닌 4.21km를 뛴 후 트랙을 벗어나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가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멈추자 곧장 뿌듯하고 상쾌한 근육의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 평소와는 다르게 걷기조차 힘들 만큼 온몸에 남아있는 힘이 없었고, 그제야 나는 오늘이 7월의 30도 무더위, 그중에서도 지금은 햇빛이 아직 한창 내리쬐는 오후 2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날씨에 달리기를 했다고 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라고 할 것이며, 열사병 걸릴 수도 있다는 잔소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임을 자각했다. 그제야 왜 내가 뛰던 그 시간에 트랙 위에 사람이 없는지 이해했고, 내가 만약 오기를 부려 5km나 그 이상을 채워 달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위한 달리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미세하게 섬뜩한 느낌이 스쳐갔다.
달리는 순간에 힘들지는 않아?
당연히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로 힘들지 않다고 대답하는 편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더 이상 달릴 수 없겠다 싶고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면, 그 순간에 나는 달리기를 멈추었겠지. 그러나 계속 달리고 있다면, 그건 달릴만하기 때문일 테다. 힘들고 재미없고 욕 나오는데도 계속해서 달려보고 싶고 달리고 있다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일테다. 그냥 지금 뛰고 싶은 상태이거나, 미련하거나. 달리기가 나에게 즐거움이 되는지 혹은 독이 되는지, 내가 지금 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굴러가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달리기를 하며 끝없이 답을 찾아간다. 어쩌면 그 과정 자체가 달리기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달리거나 멈춰야 하는 이분법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 당신은 7월의 어느 일요일 한낮에 달려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지금 달리고 싶은가, 혹은 멈추고 싶은가? 정말이지 매 순간 잘 고민하고 선택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