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정을 보여주며 생생하게 전하는 계급사회의 '쾌감과 공포'
대한민국 사회는 요리에 미쳐있다. 오마카세, 먹방 등 음식과 맛집에 대한 관심,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문화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점점 큰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런데 얼굴만 비추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요리사들이 100명이나 모여 최고의 요리를 선보인다니. 값을 매기기도 힘든 요리를 조리하고 한 입씩 맛보고 음미하며 해석하는 모든 과정을 친절하게 시청자들에게 떠먹여 준다니, 안 볼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저명한 요리사가 그 위상과 상관없이 일찍 서바이벌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호기심과 스릴을 불러일으킨다. 요리만으로 평가했을 때, 현재의 ‘계급’을 바꿀 수 있을까? “흑백요리사”는 이 강력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질문의 서술부가 현재의 계급을 ‘없앨 수’ 있을까가 아닌, ‘바꿀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계급을 뒤집는 콘셉트처럼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는 “흑백요리사”. 그러나 사실은 자리를 차지하는 주체만 바뀔 뿐 철저하게 계급 사회의 체제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현대 사회에서 갖고 있는 계급사회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며, 은연중에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을 아주 적나라하게 실현한다.
우선,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와 요리사의 관계를 전복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비싼 요리를 먹고 SNS에 자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맛있고 감명 깊게 먹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나 이 정도 값을 주고 밥 한 끼 먹을 정도는 되는 사람이야’라는 자랑을 하는 심리도 있지 않을까. 과격하게 말하자면 음식으로 본인의 급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SNS에서는 ‘오마카세를 먹으러 가서 먹는 방법을 모른다고 무시를 당했다’, ‘이 가게만의 문화가 있는 것 같아 나도 눈치껏 그 문화에 따랐다’는 등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외국의 어떤 식당은 꼭 정장을 차려입고 가야 하는 규정이 있기도 하단다. 이런 식문화를 보면, 돈을 내는 사람은 손님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요리사이지만, 묘하게 손님이 비싼 음식점을 선망하고 셰프를 우러러보는, 손님이 돈을 ‘낸다’기보다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가져다 바치는’ 구도로 바뀌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그 일반인들이 다가갈 수 없는 ‘성역화된 요리’의 성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린다. 어떤 셰프든 자신의 실력을 카메라 앞에서 입증해내야 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방구석에 편안하게 앉아, 의심할 수조차 없던 요리사들의 진짜 실력과 본모습을 확인할 아주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요리사의 면전에 대고 심사할 자격은 없지만, 어쨌거나 언제든 내키는 때 작은 화면으로 그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무슨 평가든 내릴 수 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 만큼 고급스러워 보였던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들을 여유롭게 관망할 수 있다. 요리사들이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시청자들은 자신이 그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는 기분을 곧바로 느낀다. ‘보이는’ 입장이 아닌, ‘보는’ 입장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어떤 전복의 쾌감을 느낀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사간의 계급을 뒤집기 이전에, 요리사와 손님 간의 관계를 뒤집어버린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셰프들의 위치를 흑과 백이라고 명확하게 구분하고, 서로 긴장하고 동경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과 속마음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흑수저와 백수저의 1:1 대결, 자신의 모든 요리 인생을 쏟아부은 단 하나의 요리가 “탈락입니다” 소리를 듣는 모습, 몇십 년을 요리해도 일찍 탈락하는 모습. 그간 해온 노력이 아직은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시청자들은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모든 과정을 여과 없이, 생략 없이 볼 수 있다. 진짜, 설마 싶은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질 때 그 모든 잔인하고 가차 없는 과정을 겪는 요리사들의 얼굴을 보고야 마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흑백요리사”는 음식에 대한 검증된 ‘해석’도 탄탄하게 제공한다. 요리의 창작부터 수용까지 모든 과정에 요리를 만드는 전문가, 요리를 먹어본 전문가의 해석이 입혀진다. 사람들은 어렵지만 좋았던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접한 후 해석을 찾아보곤 한다. 문학, 영화 등의 평론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인지도가 높은 평론가도 많다. 하지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맛집 리뷰들은 대부분 맛있다, 비싸다, 싱싱한 재료를 썼다, 맵다,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던가. “흑백요리사”에서는 의심할 수 없는 명장들이 직접, 검증된 대가가 직접 정성스럽게 평가를 내리고 자세히 해석해 준다. 음식을 평가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어떤 부분에 기준을 두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음식을 요리하는 셰프의 입장에서, 그리고 검증된 미각을 지닌 미식가 입장에서 두 번씩이나. 하나의 요리를 왜 만들게 되었고,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맛이 전달되는지 표정으로, 행동으로, 말로 꼼꼼히 전한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화면만으로는 모자라서 각각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자세하게 인터뷰한 내용까지 친절하게 더해준다. 요리에 미쳐있는 대한민국을 매료시키고, 부족했던 수요를 제대로 충족해 준다.
그럼에도 한 음식으로 오랜 시간을 끌지 않는다. 참을성 없는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한다. “흑백요리사”는 특히 초반부, 먹방 쇼츠를 계속해서 넘기는 느낌이기도 하다. 하나의 음식에는 딱 필요한 만큼의 서사만 밀도 있게 제공한다.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대부분 딱 한 입씩만 먹는다.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먹고 나면, 또 다른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한 입 먹는다. 그리고 또 다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한 입 먹는다. 빠르게 빠르게 다음 타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탈락과 생존은 가차 없이 반복된다. 마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음식들을 한 입씩 먹어보는 쇼츠를 모아둔 느낌이다. 지루할 때쯤 넘기고 다른 영상을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알아서 다음 영상으로 펼쳐지는 기분이니까.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철저한 서바이벌 형식을 따른다. 선택지는 생존 혹은 탈락밖에 없다. 가차 없는 서바이벌 예능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공감할 여지가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슬프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FOMO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다.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와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조금이라도 소외되면 결국 사회에서 영영 살아남지 못하는 실패자, 낙오자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생존’과 ‘탈락’, ‘성공’과 ‘실패’만으로 나뉘어있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렇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듯하다. ‘실력만으로 흑수저가 백수저를 이길 수 있을까?’하는 질문은 곧, 현실 사회에서는 실력이 있다고 모두가 성공한 상태는 아닐 수 있다는 작은 불신이 깔려있고, 통쾌하게 사회를 전복시켜보고 싶다는 작은 불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대단한 요리사임에도 꼭 끝까지 최후의 1인을 가려내야 한다는 설정은 ‘계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대전제를 포함한다. “흑백요리사”는 처음부터 흑수저 요리사들에게 불리하다. 분명 같은 참가자인데 백수저는 첫 번째 대결에 참여하지 않고 부전승으로 올라간다. 그럼에도 자발적인 퇴장자는 아무도 없다. 동일하지 않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불공정한 상황을 모두가 감내하며, 어떻게든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결국 “흑백요리사”는 계급‘에 대한’ 전쟁이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계급을 ‘정하는’ 전쟁이다. 계급 자체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누가 위를 차지하냐의 싸움이다. 모두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더라도 누군가는 탈락하고 누군가는 생존하며, 탈락한 사람은 그냥 그대로 짐을 싸서 집에 가면 된다. 사회에서 뒤처지면 그대로 끝이라는 현대인들의 두려움을 그대로 실현한다.
조금 더 자극적인 부분은, 이미 사회에서 공고한 입지를 다져놓은, 절대 ‘나락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백수저 셰프들도 가차 없이 탈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흑백요리사”는 처음부터 요리사들을 흑과 백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가시적 분리를 했다. 흑수저 요리사들은 기존의 계급을 뒤집어야 하고, 백수저 요리사들은 명예를 지켜야 한다. 흑수저 요리사들도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성공의 가능성이 주어질까. “흑백요리사”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부분은 이렇게 “야, 너도 올라갈 수 있어”에 가깝다. 그러나, 이보다 사람들을 더 크게 자극하는 부분은 “야, 너도 떨어질 수도 있어”라는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다. 행동경제학에는 ‘손실 회피성향’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금액의 이득과 손실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손실을 이익보다 더 크게 느끼고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어쩌면 “흑백요리사”는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올라가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탈락하는 모습을 철저하게 표현하는데 방점이 있는 프로그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한 칼럼에서는 “흑백요리사”를 보면 오히려 흑수저가 아닌 백수저를 더 응원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흑백요리사”가 탈락, 추락, 실패에 대한 현대인들의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요리 경연의 모든 과정, 탈락하는 순간까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흑백요리사”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며 어떤 미지의 영역을 깨버리는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잠재적인 두려움,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의 순간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며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물론 “흑백요리사”는 기존의 권위와 계급을 무너뜨리고, 감동적인 서사를 추구하는 면도 있다. 5화에서 여경래 셰프와 철가방 요리사의 대결이 끝났을 때, 승리한 철가방 요리사는 여경래 셰프에게 절을 한다. 곧이어 이어지는 후속 인터뷰에서 여경래 셰프는 말한다.
"사람은 살면서 항상 실패를 거듭하고 거듭해서 뭔가 향상을 하고 위로 올라가는 거는 분명하니까 좋은 경험 한 것 같아요."
오랜 요리 경력을 가진 셰프가 보여주는 멋진 겸허한 자세, 승패에 상관없이 존경하는 스승에게 절을 하는 제자의 모습은 잠시나마 시청자들이 공포에서 벗어나 숨 돌리게 한다. 탈락한 셰프들은 오히려 미련 없는 큰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큰 자극이 되었고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후회가 없다는 인터뷰를 한다. 물론 어쨌거나 그들은 탈락자로서 더 이상 시청자들 앞에 얼굴을 비추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다. 잠시나마 공고하게 세워진 게임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자각한다. 이 서바이벌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셰프들의 경력이 끝난 것도 아니고, 그들의 명성에 금이 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탈락한 셰프들의 인터뷰는 이 치열하고 냉혹한 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편의점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모습은 그들이 평소 갖고 있던 어떤 ‘신성함’을 해제한다. 유명 셰프들이 편의점에 우르르 몰려가 재료를 허겁지겁 쓸어 담는다. 라면을 끓이고, 크림빵을 뜯는다. 셰프들이 갖고 있던 권위성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이색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그들에게 친근함을 갖는다.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가 참가자들에게 도토리 국수를 만들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갑자기 안성재 셰프가 요리를 제공하고 참가자들이 음식을 맛보는 입장이 된다. 안성재 셰프는 그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지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와중에 에드워드 리 셰프가 접시를 핥아먹는 듯한 장난을 치는 순간도 시청자들을 웃게 만드는 포인트다. 이처럼 “흑백요리사”는 철저한 승패를 가르면서도 ‘실패의 감동’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요리사들이 가진 권위성도 파격적인 친근함으로 뒤집어보고자 한다. 이런 부분들은 정말 “흑백요리사”가 공고히 굳어진 듯한 계급사회를 전복시켜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그러나 결국은 가차 없는 탈락과 생존, 모든 부분에 있어서의 상세한 묘사는 계급사회의 ‘공포’를 마주하도록 한다. 10화에서 이모카세 셰프가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20년을 넘게 해온 음식인데 거기에 대한 점수를 받았을 때 내 기분은 어떨까?
“흑백요리사”의 구성은 굉장히 철저하다. 참가자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심사위원들이 음식을 맛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요리할 때 자신의 심경이 어땠는지 인터뷰를 하여 또 보여주고, 음식의 맛이 어땠는지 또 인터뷰하여 설명을 덧붙인다. 팀전을 하며 분열이 일어났을 때 서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보여주고,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며 당시 심정을 말로 털어놓는 참가자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화면에 담기는 표면적인 요리 과정과, 참가자와 심사위원의 속마음인 이면까지도 촘촘하게 한 회차에 담아낸다.
심지어는 점수와 평가까지도 모조리 공개해 버린다. 음식을 맛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백종원 요리연구가와 안성재 셰프. 이후 화면에는 그들이 무엇을 메모하였으며 어떻게 점수를 주고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1:1로 의견이 나뉘었을 때는 누가 어떤 요리사의 요리를 택했는지까지 보여준다. 누가 몇 점을 주었고, 누구에게 투표를 했는지 숨기지 않는다. 면전에서 “탈락입니다”소리를 듣고, 남들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 것. 이런 상황들이 사실은 가장 마주하기 어려운, 누구나 두려워하는 순간이 아닐까. 자신의 인생을 점수로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평생을 걸어온 길을 그 어떤 포장도 없이 평가받는 순간. 그 평가로 곧장 ‘탈락’하는 순간. 누군가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그렇게 점수를 매겨본다는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요리사들은 그 평가를 마주하고 견뎌야 한다. “흑백요리사”는 사람이 막연하게 가장 두려워하는 최악의 순간을 구현하고, 공포를 자극한다. 공포, 그 감정 때문에 요리사들이 혼신을 다해 요리하고 평가받는 과정이 아주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흑백요리사”에는 ‘다 잘했어요’ 따위의 관대함은 기대할 수 없다. 결국 당신이 더 잘하거나, 당신이 더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마지막 지옥의 두부 요리 대결은 그야말로 계급의 격차와 실패에 대한 공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부분이다. 결승전으로 가는 두 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번에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대결에서 단 한 번에 1등을 거머쥔 권성준 셰프는 곧바로 결승전으로 향했다. 위에서 남은 참가자들을 내려다보며 지옥 같은 두부 대결을 지켜보았다. 반면 1등을 하지 못한, 실패한 참가자들은 나머지 단 한자리를 위해 두부를 가지고 끝없이 새로운 요리를 생각해 내고 요리하고 탈락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셰프들이 느꼈을 시간과 탈락에 대한 압박, 아이디어 고갈, 한계로 밀어붙이는 듯한 느낌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처음에 1등 하지 못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나머지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패를 보여주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내야 했다. 이 대결은 마치 프로그램 초반 흑수저 80인이 20인 안에 들기 위해 펼친 요리 대결과 겹쳐 보였다. 그때 백수저들은 위에서 80인의 흑수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먼저 결승전 티켓을 쥔 권성준 셰프는 나머지 참가자들의 고군분투를 위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결국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흑백요리사”는 계급 파괴 전쟁이 아닌 계급 형성 전쟁이었다. 현대인들을 열광시키는 ‘요리’를 주제로, 가장 두려운 ‘탈락’의 순간을 숨김없이 묘사하며 시청자들에게 쾌감과 공포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결국에는 시청자들이 경쟁과 낙오, 성공과 실패, ‘생존과 탈락의 이분법’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흑백요리사”가 커다란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매우 재미있는 유일무이한 리얼리티 예능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모든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계급사회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하는 “흑백요리사”, 그 열광 이면에는 생존과 탈락에 지친 현대인의 넋이 놓여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