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리고. 달빛도 없이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었다, 잡초로 우거진 저수지 주변에 활을 든 포졸과 창을 든 포졸 여러 명이 앞서 횃불을 들고 가는 마 부장과 선을 따라 저수지 주변과 풀숲 사이를 경계하듯 조심스럽게 헤집고 다녔다.
“그 정신 나간 여인 찾는데 벌써 며칠이나 밤샌 거야.”
맨 뒤에서 횃불을 들고 따라오던 장 포졸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옆에 같이 따라오던 이 포졸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더구나 우리 엄니가 잘 가는 무당집이 있는데, 거기서 오늘 밤을 잘 보내야 한다고 그랬어.”
“그게 뭔 소리야?”
“오늘이 그 뭐시냐. 신월? 그래 밤이 깜깜해지는 뭐 그런 날 이래. 이런 날 귀신한테 홀리기 좋은 날이라니까 자네도 조심해.”
장 포졸과 이 포졸의 소곤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어디선가 낮게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센 빗줄기에 시야가 흐려서 앞을 보기 힘들었고, 포졸들이 들고 있던 횃불은 모두 꺼졌다. 포졸들이 당황해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섰는데, 선에게 갑자기 가슴 통증이 시작됐다.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선을 본 마 부장이 말했다.
“종사관 나리, 또 흉통이 도졌습니까요?”
“휴— 잠시 숨을 고르면 곧 지나가네. 자네가 나 대신 포졸들을 인솔해 주게.”
“네, 그럼, 천천히 오십쇼.”
선을 지나쳐 앞서가는 마 부장과 포졸들.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걷는데, 앞선 포졸 한 명이 발끝에 뭔가 걸려 넘어졌다. 마 부장과 다른 포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마 부장이 말했다.
“제 발에 뭔가 걸려서 넘어졌습니다요.”
“어서 손을 잡아주게.”
다른 포졸 한 명이 넘어진 포졸의 손을 잡아당기며 일으켰다. 그런데 포졸의 왼손 끝에 뭔가 잡혀서 당겨 보는데,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비가 그치고, 달빛 하나 비추지 않은 칠흑 같은 밤이어서, 포졸들은 넘어진 포졸이 잡은 그것의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진흙을 손으로 치우며 더듬거리며 확인해 보는 포졸. 그러다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눈알이 없는 여자의 시신이었다.
“으악!! 나… 나리, 사… 사람입니다.”
천천히 뒤따라오던 선의 눈에 시신이 들어왔다. 가슴 통증이 잦아들었는지 허리를 펴고 침착하게 앞서가던 마 부장에게 말했다.
“자네는 포청으로 가서 사건 조사 준비를 해오게.”
마 부장은 선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볼 터이니 나리는 내려가서 쉬는 것이 좋을 듯한데요.”
“난 괜찮네. 한두 번도 아니고. 좀 지나면 나아지니 걱정 말고 다녀오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마 부장은 포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이곳에서 종사관 나리를 도와 시신을 지키고 있게. 그리고 두 명은 나를 따라 같이 포청에 가서 조사할 도구를 챙겨 오세.”
포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시신 옆에 있기를 꺼렸다. 특히 장 포졸과 이 포졸은 무서워서 한발 물러나 있으면서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잘못 만졌다가는 병이 옮을 수도 있어.”
“암, 그렇고말고. 난 우리 엄니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아서 말야. 저주라도 걸리면 큰일 아닌가.”
서로 눈짓을 하다가 이 포졸이 결심한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저희가 부장 나리 따라가겠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이곳에 남아있게.”
마 부장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 꺼진 횃불에 불을 붙여보려 했으나 비에 젖은 횃불은 불이 붙지 않았다.
“횃불도 없이 어두워서 내려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자네 조심히 내려가게.”
“종사관 나리도 조심하십쇼. 짐승이라도 있으면 아직 여길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요.”
마 부장이 앞장서자, 장 포졸과 이 포졸은 그 뒤를 바짝 쫓아갔다. 남은 포졸들이 시신을 지키고 서 있는 동안 잠시 가라앉았던 가슴 통증이 다시 선의 숨통을 조여왔다. 다른 포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허리를 숙인 채 천천히 숨을 고르며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데, 시신 옆 진흙 속에 붉은 조각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시진이 지나 포도청에 도착한 마 부장과 장 포졸, 이 포졸은 포도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사 도구와 교대할 포졸 여러 명을 데리고 나왔다. 마 부장은 장 포졸과 이 포졸에게 돌아가 쉬고 아침 일찍 나오라고 말하고 다시 숲 속 저수지로 향했다. 장 포졸과 이 포졸은 대단한 일이라도 한 냥 한껏 지친 표정으로 포도청을 지나 집으로 향해 걸으며 말했다.
“오늘 밤은 그냥 집으로 가면 안 되겠어.”
장 포졸의 말에 이 포졸도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엄니가 그랬는데, 험한 일 하고 꼭 잡귀가 붙는다고 했거든. 특히 우리같이 위험하고 힘든 일 했을 땐 더 조심해야 한다구.”
하며 이 포졸은 허리춤 작은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거 엄니가 용한 무당한테 두 냥이나 주고 써 온 거야.”
“어디, 나도 좀 만져보자.”
“에잇, 손 저리 치우게. 부정 타니까.”
장 포졸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모친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그러지 말고 내가 탁주 한 사발 살 테니 한잔하고 가세나.”
두 포졸은 달빛 없는 컴컴한 포도청 담길을 지나 늦은 밤에도 장사하는 주막으로 향했다. 장터 초입이 다다르면서 흑월각 앞을 지나는 두 포졸 옆으로 검은 도포에 갓을 쓴 남자가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 시진이 지나 저수지에 도착한 마 부장. 선은 횃불을 켜 놓고 시신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 부장을 본 선이 말했다.
“내가 살펴보니 외상이 없고, 부패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듯 눈알도 없이 뼈와 가죽만 남아있을 수 있는 건지 참으로 기괴한 사건 같네.”
“종사관 나리, 어차피 지금 어두워서 시신을 제대로 살펴보기 어렵겠습니다. 저희가 시신을 포도청으로 옮길 터이니 종사관 나리도 아침에 포도청에서 제대로 검시하시죠.”
선은 마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이니 예를 다해 들것에 싣고 포도청으로 옮기도록 하라.”
선의 명에 포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선은 시신이 있던 자리 주변을 횃불로 비치며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진흙 속에 빛나던 붉은 조각은 시신을 옮기며 생긴 발자국 때문에 더 깊숙이 박혀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 포도청 앞마당에는 포졸들과 마 부장이 서 있고, 잠에서 깬 포도대장이 군복을 입고 전립을 고쳐 쓰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시신이 어제 발견된 여인이란 말이냐?”
포도대장이 포졸의 횃불을 받아 시신을 비춰 보았다. 시신은 진흙이 묻어 더러웠고, 얼굴은 눈알이 빠진 채 바싹 말라 보였다.
“에잇, 기분 나쁜 시신이구나. 종사관은 어딨 느냐?”
이때, 선이 포도청 안으로 들어오자, 선을 보며 포도대장이 말했다.
“자네가 맡은 사건이니 빨리 종결하고 시신은 꼭 화장하라고 이르거라.”
“하지만, 아직 시신 검안을 하지 못했으니, 검시관을 불러 살펴봐야 합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마을에 나쁜 병이라도 퍼지면 더 큰일이 아니더냐.”
“제가 오늘 검시관과 같이 시신을 살펴보고 가족들에게 인계하겠습니다.”
포도대장은 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면서 시신을 빨리 치우라고 손짓하자 선은 포졸들에게 말했다.
“시신을 검시소로 옮기거라.”
포졸들은 서로 미루며 눈치를 보자, 선과 마 부장이 시신을 들어 들것에 실었다. 이 모습을 본 포졸들이 들것을 들고 포도청 문밖에 놓여있는 수레에 옮겼다. 그 뒤를 선과 마 부장이 따라 나왔다. 수레는 천천히 출발했고, 선과 마 부장도 수레를 따라 뒤에서 걸었다. 그때, 시신의 어머니로 보이는 평민 복장을 한 여인이 수레 쪽으로 달려왔다. 수레는 멈췄고, 여인은 수레에 실린 가마니로 덮인 시신을 보기 위해 가마니를 들었다.
“아이고……”
여인은 짧은 탄성을 지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포졸 한 명이 여인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아줌니, 억울하게 죽은 딸 한을 풀어야 하니께. 보내주셔유.”
여인은 목에 메이지만 겨우 울음을 참고 선을 보며 말했다.
“불쌍한 내 딸…… 나리가 억울한 거 꼭 풀어 주세유.”
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수레는 다시 출발했다. 여인은 수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울기 시작했다.
검시소에 도착한 선과 마 부장이 안으로 들어가자, 포졸 둘이 들것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검시관은 검사대 위에 놓인 시신을 살펴보며 말했다.
“검시 준비를 해야 하니 밖에서 기다리시지요. 준비가 끝나면 들어오시라 하겠습니다.”
“알겠소.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반 시진(약 1시간)이나 빠르면 이각(약 30분) 정도 되겠습니다.”
선은 밖으로 나와 포졸들을 포도청으로 보내고, 마 부장과 같이 검시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각이 지났을 때쯤, 준비를 마친 검시관이 선과 마 부장을 불렀다. 두 사람은 검시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시신이 검사대에 놓여있었다. 검시관은 두 사람을 가까이 와서 보도록 했다. 그리고 하나씩 검시를 시작했다.
“시신에 저항 흔적이나 외상의 흔적도 없고, 안검 부위도 칼로 도려낸 예리한 흔적이나 짐승의 발톱에 찢긴 흔적도 없으니 참으로 기이합니다.”
염수(소금물)를 시신 부위에 뿌려보던 검시관이 말했다.
“혹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자반(멍)이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여기 자반 자국이 보이긴 하지만 사망 후 생긴 것일지도 모르고 이것이 저항했다는 흔적은 아닙니다.”
마 부장이 옆에서 검시관이 하는 말을 적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까?”
“발견된 장소가 어디라구요?”
“마을 뒷길 저수지 주변 숲이 우거진 곳이요.”
“그곳에서 당산나무가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습니까?”
“당산나무는 왜요?”
“가끔 무당들이 제물로 바칠 동물을 그 숲에서 죽인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요.”
“아무리 그래도 무당이 사람을 제물로 바칠 리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선은 검시관의 말을 듣고 그곳을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시를 마치고 검시소 밖으로 나온 선과 마 부장. 검시관은 작성한 검시 보고서를 선에게 건넸다. 그리고 또 하나를 선에게 내밀었다.
“시신의 옷소매에서 이런 조각이 발견됐는데……”
검시관이 선에게 내민 것은 흰 면 보자기에 싼 붉은 조각이었다. 그 조각은 영롱한 보석처럼 빛났고, 선에게 다시 가슴 통증이 시작됐다. 검시관이 내민 것을 보지 못하고 허리를 숙인 채 조여 오는 가슴을 붙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선, 마 부장은 선의 고질병이 다시 시작됐다는 생각에 대신 말했다.
“그것이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 뭔가 도움이 될까 해서.”
“그럼 그 여인과 같이 태워주세요. 여인의 물건일 수 있으니.”
“그렇게 하죠.”
검시관은 붉은 조각을 면 보자기에 싸고 검시소 안으로 들어갔다. 검시관이 들어가자, 선의 가슴 통증도 차츰 사라졌다.
“갑자기 가슴 통증이 잦아지는 것 같아요.”
“휴―, 그러게 말일새. 일단 난 그 저수지로 다시 가봐야 할 것 같네. 어젠 잘 살펴보지 못했는데, 검시관 말대로 주변에 당산나무가 있는지도 확인해 봐야겠어.”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혼자보단 둘이 낫지 않겠습니까? 가기 전에 국밥 한 그릇하고 가죠. 아까부터 뱃속에서 밥 달라고 난리 칩니다요.”
생각해 보니 선도 바로 포도청으로 가는 바람에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러지.”
선과 마 부장은 검시소를 지나 사람이 북적이는 장터로 향했다.
정오가 지나서 시구문 밖 화장터에 화장이 끝나고, 이 포졸이 남은 재를 정리하다가 멈추고 재 안을 뚫어지게 보았다. 뭔가 반짝이는 붉은 조각이 보였다.
‘이건? 귀한 보석이 아닌가?’
이 포졸은 웬 횡재냐 싶어 그 조각을 주워 허리춤 주머니에 넣었다.
‘엄니가 좋아하시겠구먼. 아니지. 내가 이걸로 가락지 만들어드리면 더 좋아하시겠지?’
신이 난 이 포졸은 입장단을 맞추며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 포졸의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가 걸음걸이에 달랑달랑 움직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붉은빛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