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주에 갇힌 마을

by 한이제이

저수지가 가까워지자 비릿한 냄새가 선의 코를 자극했다. 인상을 쓰며 시신이 발견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는 선, 뒤늦게 도착한 마 부장이 독한 냄새에 코를 막고 말했다.

“읔…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네요.”

“물비린내와 피 냄새가 섞여서 더 지독한 것 같네. 주변을 살펴보니 어젯밤에 내린 비로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는 것 같군.”

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한 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저쪽에서 여기로 끌린 자국이 있는 것 같으니, 저쪽으로 가보세.”

선이 앞장서 가고 그 뒤를 마 부장이 따라가며 말했다.

“곧 날이 어두워질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선은 마 부장의 말에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보며 해가 어디쯤 있는지 둘러보다가 말했다.

“온 김에 당산나무까지는 가 봐야 할 것 같으니 힘들겠지만 걸음을 빠르게 하세나.”

빠른 걸음으로 저수지를 지나 개암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선을 놓칠세라 마 부장이 서둘러 뒤쫓아 갔다.


같은 시각, 흑월각 안 송만석의 접객실에서 유씨 부인과 송만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수님이 부탁하신 것도 있고, 어제 귀한 물건이 들어와서 이리 불렀습니다.”

하며 자개함을 열어 붉은 조각이 있는 화려한 장식의 노리개를 내밀었다. 언뜻 봐도 값도 나가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노리개에 유씨 부인은 자개함을 송만석 쪽으로 슬며시 밀었다.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저는 괜찮습니다.”

송만석은 호의를 거절한 유씨 부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비싼 거 아닙니다. 제가 형수님께 선물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 부담 갖지 마세요.”

“지아비를 잃고 힘들어한 우리 가족을 물심양면 도와주신 것도 늘 송구하고 감사한데,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솔이 주세요. 그것도 거절하시면 정말 섭합니다.”

유씨 부인은 변변한 장신구 하나 없는 솔이 생각났다. 송만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접객실 안 자개 서랍을 열고 고급 비단으로 만든 향주머니를 꺼내 유씨 부인에게 건넸다.

“박 종사관이 요즘 통 잠을 못 잔다 하셨지요? 이 향이 잠 못 자는 사람에게 특효가 있는 향이라 하여 제가 특별히 주문한 것입니다.”

“덕분에 귀한 향을 얻었습니다.”

“형수님은 어찌 자식들밖에 모르십니까요? 형수님 것도 챙기시며 사시면 좋으련만.”

유씨 부인은 송만석에게 감사하다는 눈웃음으로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장옷을 쓰고 한 손에 자개함을 싼 보자기와 향주머니를 든 유씨 부인은 시끌벅적한 객주 안을 지나 흑월각 대문을 나오다가 앞에서 유향소 김좌수와 마주쳤다. 그러나 김좌수는 급한 일이 있는 듯 유씨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고, 유씨 부인도 주변을 살피다가 장옷으로 얼굴을 더 가리고 흑월각을 떠났다.

이미 어둑해진 산속에서 당산나무를 찾지 못한 선과 마 부장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헤매다가 초가집 한 채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니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에 안도한 선은 마 부장에게 말했다.

“저 집에 가서 물어보세.”

“어? 근데 깃발이 있는 걸 보니 무당집인 거 같은데요?”

“무당이라. 그럼, 근래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겠구나.”

“무당이 주술로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막 만났다가 저주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구요?”

“이대로 산속을 헤매는 게 더 무섭지 않은가? 일단 만나보세.”

선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초가집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 부장이 그 뒤 따르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나, 나리.”

선이 뒤돌아보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마 부장이 하며 말했다.

“제… 제가 뭔가 밟은 거 같습니다.”

마 부장은 선을 보며 자신의 발밑을 가리켰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사체를 밟은 마 부장의 발 주변으로 붉은 피가 흥건했고, 붉은 피를 본 순간 선의 가슴 통증이 발병했다. 숨도 쉬기 어려워 자리에 허리를 숙인 채 주저앉은 선. 선의 주변으로 검은 그림자가 몰려들더니 선의 가슴에 붉은빛이 흐릿하게 빛났다. 그리고 연가의 초가집 싸리문에 쳐놓은 금줄이 흔들리며, 방울이 울렸다.

신당 안에서 조용히 백호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연가가 밖에서 들리는 심상치 않은 방울 소리에 신당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괴로워하는 선의 주변에 잡귀들이 몰려들면서, 선의 가슴에 흐릿한 붉은빛이 보였다. 연가는 급히 신당에서 나와 금줄이 쳐져 있는 싸리문을 열고 겁에 질려 있는 마 부장에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모셔요. 빨리요.”

마 부장은 정신 차리고 선을 부축해 연가의 신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연가는 싸리문을 닫고 부엌으로 들어가 물 한 그릇을 들고 신당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몰려든 잡귀들은 쳐놓은 금줄 때문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흑월각 안 비밀 접객실에 김좌수와 송만석이 고급술이 담긴 백자병과 비싼 육포, 과일 등을 안주로 차려놓고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여인은 잘 처리되었지요?”

“물론이지. 내가 포도대장을 꽉 잡고 있지 않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인이 사고로 죽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될 걸세.”

송만석은 김좌수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이곳에 말씀하신 물건이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면 얘기해 주십시오.”

“그럼세. 자, 일 처리도 잘 되었겠다 축하주 한잔하세.”

송만석이 김좌수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그리고 서로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마셨다. 잔을 내려놓는 송만석, 김좌수의 빈 잔에 술을 따른다. 이번에는 김좌수 혼자 술을 마신다. 다시 김좌수의 잔에 술을 따르는 송만석. 좀 전과 다르게 서늘한 눈빛으로 김좌수를 응시했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밤,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에 술 취해 비틀거리며 이 포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검은 도포에 갓을 쓰고 복면을 한 채 유향소 김좌수 집 앞을 지나는 이 포졸을 불러 세웠다.

“이보시오, 불 좀 빌릴 수 있소?”

“뭐야? 불이라니?”

술에 취한 이 포졸이 뒤돌아보며 답을 하자, 검은 도포를 입은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주겠소.”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 포졸의 눈빛이 바뀌며 한 손에 횃불이 들려있고, 남자는 사라졌다. 이 포졸은 김좌수 집 앞에 멈췄다. 그리고 손에 든 횃불을 집 안으로 던졌다. 잠시 후, 김좌수 집 안 행랑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길이 솟아올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이 포졸은 얼빠진 눈빛을 하고 집으로 갔다.


마을에서 제일 외진 곳에 있는 이 포졸의 초가집에 사람의 온기는 느낄 수 없이 어두컴컴했다. 손에 화상을 입은 이 포졸은 아픈 것도 모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이 포졸이 들어간 방이 갑자기 환해지더니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마침, 포도청에 나오지 않은 이 포졸이 걱정돼 찾아온 장 포졸이 놀라 주변 집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깨웠다.

“불이야! 다들 일어나 보시오. 저 방에 사람이 있소!!”

사람들이 급한 대로 물통을 들고 나와 불길을 향해 뿌렸지만, 그럴수록 화마는 더 세졌다. 멸화군이 도착하고, 급수비자가 물통을 싣고 왔지만 불을 끄기에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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