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흑월각의 비밀

by 한이제이

선은 마 부장을 업고 마을 끝 인적이 드문 폐가에 들어갔다. 선의 등에 마 부장의 피가 흥건했고, 마 부장은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지만,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선이 마 부장을 짚이 쌓인 바닥에 천천히 내려놓고 말했다.

“내 얼른 가서 의원을 데려오겠네. 조금만 더 버텨주게.”

선이 폐가를 나가려고 하자, 마 부장이 마지막 힘을 다해 선의 다리를 잡았다.

“조.… 종 사 관… 나리.”

“말하지 말게. 피가 멈추지 않으니.”

마 부장은 피가 흥건한 옷섶 안에서 검은색 장부를 꺼내 선에게 주었다.

“이… 이거… 이걸로… 꼭 그놈을… 자… 잡으…”

선이 장부를 건네받으려는 찰나, 마 부장의 손이 뚝 떨어지며 장부가 바닥에 떨어졌다.


같은 시각, 복면을 하고 손에 횃불을 든 장정 넷이 선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선의 집 앞에서 한 사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자 조심스럽게 대문이 열리면서 며칠 전 송만석이 쌀과 함께 보낸 수하가 나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송만석의 수하를 따라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간 네 사람. 잠시 후, 네 사람이 횃불 대신 주머니 하나씩 손에 들고 대문 밖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그자가 사람은 다치지 않게 한다 했으니 괜찮겠지?”

“그렇겠지. 이게 다 우리 마을을 위한 일이라고 했니까 괜찮을꺼야. 그리고 다들 입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장정들이 입조심을 다짐하며 가는데, 주머니를 손에 쥔 그 사람들의 손에서 붉은빛이 빛났다. 그들이 골목에서 사라지자, 선의 집 안에서 “불이야!!” 하는 송만석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고, 돌석아범과 성주댁이 놀라 뛰쳐나왔다. 뒷마당 창고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사랑채와 행랑채까지 번졌다. 별채에서 놀란 솔이 맨발로 뛰어나와 유씨 부인이 있는 안채로 향했다. 그러나 안채로 향하는 곳까지 불이 번져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유씨 부인은 다급히 방 안 경대 서랍에 넣어둔 비단 주머니를 꺼내 품에 품고 방문을 얼었지만, 불길이 눈앞에 보여 나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

솔이 안채에서 나오려는 유씨 부인을 보며 다급히 불렀다. 그리고 뒤에서 성주댁과 돌석아범이 물을 길어와 유씨 부인이 나올 수 있게 물을 뿌렸다. 하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턱도 없었다. 송만석의 수하도 같이 돕는 척을 하다가 멸화군이 불을 끄는 장비를 싣고 도착하자, 그 틈에 슬쩍 자리를 떠났다.

“어머니가 저기 계셔요. 좀 도와주세요!”

솔이 절규하며 외쳤지만, 불길이 거세서 안채에 접근할 수 없었다. 멸화군은 급수 비자가 가져온 물통에 멸화자를 적셔 불을 끄려고 했지만, 열악한 장비로는 불길을 잡을 수 없었다. 유씨 부인은 비단 주머니를 가슴에 품은 채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결국 불길에 갇히고 말았다. 종루에 불이 났다는 종이 울리자, 마을 사람들도 물이 담긴 통을 들고 와 불길을 잡기 위해 뿌렸지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선은 마 부장을 임시로 묻어주고, 포도청으로 향했다. 포도청에 도착해 보니, 마당에 가마니로 덮인 시신이 보였고, 포도대장은 선을 보며 말했다.

“또 자네인가? 우리 마을에 불길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자네가 엮였으니….”

선은 포도대장의 말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에 그을린 옷, 그을음이 묻은 얼굴과 손 그리고 맨발로 이곳까지 와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솔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디 계셔?”

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선을 보았다. 그리고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은 가마니로 덮인 시신을 살펴보기 위해 가마니를 들췄다. 검은 그을음이 콧구멍에도 귓구멍에도 입 주변에도 가득했지만, 선은 어머니 유씨 부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선은 울분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포도대장을 보며 말했다.

“누가 이런 것입니까?”

선의 표정에서 살기를 느낀 포도대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범인을 찾고 있네만, 아직 누가 불을 질렀는지 알지 못하네. 그래도 빨리 멸화군이 도착해서 자네 누이는 살 수 있었어.”

선은 그걸 말이라고… 하며 화를 내고 싶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마 부장이 살해당한 것도, 마 부장이 남긴 증거도 포도대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미 포도대장도 송만석에게 뒷돈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흑월각 비밀 창고에서 송만석과 유씨 부인의 집에서 도망친 수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한 것은 못 찾았다는 겐가?”

“네, 방안을 샅샅이 뒤졌는데, 말씀하신 비단 주머니는 없었습니다요.”

“자넨 당장 이 마을을 떠나게. 박종사관이 자넬 찾으려고 할 거야.”

송만석은 수하에게 돈이 든 주머니를 던졌다. 수하는 주머니를 챙겨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무방비 상태로 흑월각을 빠져나가려는 수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조용히 따라붙다가 몽둥이로 수하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한 대 맞은 수하는 놀라 자빠지며 돌아보는데, 몽둥이가 한 번 더 수하의 머리를 내리쳤다. 기절한 수하.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수하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흑월각 비밀 사당으로 갔다.

다음 날 아침, 선의 집 마당에서 어머니 유씨 부인의 장례가 치러졌다. 집은 불에 탄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어서 마당에 겨우 천막만 쳐 놓았고, 성주댁과 돌석아범은 화상을 입고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서 제사상도 차릴 수 없었다. 겨우 유씨 부인의 위패와 향로만 덩그러니 놓았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선의 집으로 송만석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찾아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송만석은 향로에 향을 꽂으며 말했다. 그리고 절을 두 번 하고는 선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선이 가슴 통증이 생기면서 몸을 펼 수 없었다. 그런 선에게 송만석은 귓속말로 한 마디 남기고 갔다. 선은 몸이 움직이지 않아 겨우 고개만 돌리고 송만석의 뒷 모습을 보았다. 검은 형체의 그림자. 아버지 죽음에도 마 부장의 죽음에도 보였던 그 그림자를 보았다. 솔은 고통스러워하는 선에게 가서 선을 부축했다.

“오라버니, 괜찮아?”

“어… 괘… 괜찮아…”

선은 잘못 나섰다가는 솔이 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송만석을 그냥 보냈다.

송만석은 선의 집에서 나와 흑월각으로 가는데, 마주 오던 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연가는 장터에서 선에게 흑범의 기운을 강하게 내뿜던 송만석을 알아보았고, 송만석도 얼마 전 장터에서 봤던 연가를 기억했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지나쳤다.


저녁이 되자 이장이 마을 사람들과 선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이장은 선에게 돈이 든 주머니를 건네며 말했다.

“자네 모친 일은 정말 안됐네만, 우리 입장도 생각해 주게. 장례가 끝나면 이 마을을 떠나시게. 위로금으로 얼마 되진 않네만 십시일반 모은 거니 그리 알고 받아 주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솔이 놀라 물었다.

“우리도 피해자인데, 왜 우리가 떠나요? 그리고 오라버니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너도 들어서 알지 않느냐. 10년 전 네 부친이 그리되고부터 우리 마을이 저주에 걸렸다는 것을. 더 이상 우리도 참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쫓아낼 기세로 솔이를 몰아 부쳤다. 그러자 선이 말했다.

“범인만 잡으면 우리 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껍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도 시간을 많이 줄 수 없네. 나야 자넬 믿고 싶네만,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하니 어쩔 수 없어. 모친 장례 치르고 바로 마을을 떠나게. ”

이장과 마을 사람들은 차갑게 돌아서 갔다.


연가는 선의 집을 알아내기 위해 국밥집에 들렀다. 주모에게 선의 집이 어디인지 물으려는데, 옆자리에서 탁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말에 귀 기울였다.

“박종사관이 우리 마을만 떠나면 저주는 풀리는 겨?”

“이장 어르신이 그랬잖여. 그때까지 우린 몸 사리고 있어야 한다니께.”

“그 집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살꺼 같구먼.”

듣고 있던 연가가 그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종사관 나리 집이 어디예요?”

“그건 왜 묻소?”

“제가 이 마을의 저주를 풀어드리려고 그러죠.”

연가의 옷차림을 훑어보던 남자가 말했다.

“무당이슈? 그럼, 불에 탄 석류나무 집 찾아가 보슈. 거기가 박종사관 집이오.”

“가서 마을을 떠나라고 대신 설득 좀 해주시오. 우리말은 통 안 들으니.”

“이 마을의 저주를 풀 사람은 종사관 나리뿐인데, 그분이 이 마을을 떠나시면 이 마을은 영원히 저주를 못 풀 겁니다.”

연가의 말에 두 사람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가는 빨리 저주를 풀 열쇠가 뭔지 선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바쁜 걸음으로 선의 집을 찾아갔다.

반쯤 열린 불에 탄 대문 안에서 선과 솔은 짐을 싸고 있었다. 선은 봇짐과 화살통을 메고, 한 손에는 검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아버지 박윤의 유품인 쇠뇌를 들었다. 솔은 불에 탄 안채에서 어머니 유씨 부인의 유품을 챙겨 나왔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는 거야?”

“아니. 당분간 안전하게 지낼 곳을 찾아서 갈 거야.”

“참, 이거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건데,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어.”

솔은 유씨 부인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비단 주머니를 선에게 건넸다. 그때, 비단 주머니를 받은 선에게 또다시 환영이 보였다. 숲속을 헤매던 10년 전 아버지 박윤. 그리고 박윤의 피 묻은 옷. 그리고 가슴 통증이 시작됐다.

“오라버니, 괜찮아?”

솔이 괴로워하는 선을 부축하며 비단 주머니를 치우자, 신기하게도 선의 가슴통증이 차츰 가라앉았다.

“비단 주머니때문에 오라버니가 아픈거야?”

“그 안에 들어있는 것 때문인것 같아.”

선은 쪽마루에 앉아 비단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비단 주머니를 잡고 속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는데, 대문이 열리고, 연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선이 붉은 피가 묻은 타다 만 옷 조각을 들고 있자, 선의 가슴에서 붉은빛이 빛이 났다. 연가는 선의 주변으로 잡귀들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고, 솔이의 노리개에서도, 박윤의 유품인 쇠뇌의 화살촉에서도 붉은빛이 보였다.


같은 시각, 흑월각 비밀 사당 안에 송만석이 서 있고, 바닥에는 눈알이 없는 여러 구의 시신이 놓여있는데, 송만석의 수하와 유씨 부인 집에 불을 낸 장정 넷이 었다. 그리고 흑범이 송만석 옆에 모습을 드러내고 말했다.

"시간이 없다. 이제 이런것으로 내 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신월이 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거의 다 왔으니 걱정 마시오."

흑범의 끊어진 꼬리에서 붉은피가 떨어지며 바닥에 붉은 조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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