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신월, 전야

by 한이제이

연가와 선이 금줄이 쳐져 있는 싸리문 앞에 서자, 금줄의 방울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연가는 싸리문을 열고 선이 들어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선은 들어가지 않고 그 앞에서 버텼다.

“나리, 들어가셔야 합니다. 제발 정신 차리셔요!”

연가의 간절한 외침에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과 싸우는 듯 괴로운 표정을 하던 선이 천천히 발을 뗐고, 이때 연가가 먼저 들어가 선의 손을 잡고 싸리문 안으로 당겼다.

그리고 싸리문을 닫자, 요란하게 울리던 방울이 조용해졌고, 선은 가슴 통증이 심해져 괴로워했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소. 내가 그놈에게 조종당하는 것이오?”

“아마도 나리 몸속 그것이 그놈과 한 몸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겠군요.”

“일단 신당으로 들어가시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연가는 선을 부축해 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신당 안에서 연가는 여러 개의 향을 잡고 불을 붙였다. 큰 불꽃이 꺼지고 잔잔한 불꽃이 향 끝에 남아 은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선의 눈에 백자단지가 보였다.

“저기 안에 그놈이 찾는 물건이 들어있는 게요?”

연가는 선의 말에 답하지 않고 향을 두 손에 모아 쥐고 합장한 자세로 백호신에게 반절하고 주문을 외며 선의 주변으로 향을 퍼트렸다. 향이 선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여러 무구가 놓인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선과 연가가 마주 보았다.

선은 그중에 호랑이 가죽 손잡이의 목검이 눈에 들어왔다.

“나리가 짐작하신 게 맞아요. 저 단지 안에 그놈이 찾는 물건이 있죠.”

“말해주시오. 그놈을 없애고 누이를 구할 수 있다면 뭐든 하겠소.”

“10년 전 나리 부친께서 쏜 화살 때문에 그놈이 꼬리를 잃었어요. 나리 댁에 저주가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지요.”

“온전치 않지만, 그때 기억이 조각조각 생각났소. 아버지께서 내게 단검을 꺼내오라고 하셨소.”

“그건 부사직 나리 뜻이 아니셨을 겁니다. 지금의 나리처럼.”

“역시 아버님이 스스로 선택할 리 없다 짐작만 했었는데. 그럼, 꼬리를 되찾으면 그놈은 어찌 됩니까?”

“지금처럼 사람에 기생하지 않아도 되는 영원불멸 악귀가 되지요.”

“영원불멸?”

“욕망 가득한 인간을 홀려 세상을 어지럽히며 이 마을뿐만 아니라 더 많은 마을로 그놈의 저주는 퍼질 것입니다. 역병처럼요.”

“절대로 그놈 손에 들어가면 안 되겠군요”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그놈을 없앨 방법?”

“맞아요. 그놈의 피가 묻은 세 가지 물건과 그놈의 꼬리를 불귀의 불로 소멸시키는 것이요.”

“세 가지 물건이라면?”

“부사직 나리의 그놈 피가 묻은 화살과 옷조각, 나리 가슴에 있는 그놈의 붉은 조각이 그 세 가지입니다.”

“쉽지 않겠군. 활을 쏘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으나, 불귀의 불이라니……”

“허나, 문제는 그것뿐이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소?”

“저 단지에서 결계로 봉인된 꼬리를 꺼내면 그놈에게 우리 위치를 들킬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꼬리를 빼앗아 가겠죠.”

“날 홀리기라도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군요.”

“그렇죠. 그래서 그놈이 모르는 안전하게 꼬리를 숨길 최후의 방법을 나리께서 선택해야 합니다.”

말을 마친 연가는 앞에 놓인 무구 중에 목검을 잡아 선에게 내밀었다. 순간, 극심한 가슴 통증에 선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리의 고통도 끝낼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무사하도록 저도 옆에서 도울 테지만, 결국 나리의 선택에 달렸어요.”

선은 가슴 통증을 참으며 목검을 손에 쥐었다.


낮인지 밤인지 구별할 수 없는 어두운 폐가에 솔이 깨어났다. 몽둥이에 머리를 맞은 후유증 때문에 머리가 아팠고, 손과 발은 결박되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천천히 눈을 뜨고 누운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폐가 안에는 혼자 있는 것 같았고, 문밖에 지키고 있는 남자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내일 밤만 지나면 다 끝난다 하니 저 아이도 불쌍하군.”

“오라비 잘못 만난 탓이지 뭐.”

솔이는 자기 때문에 오라버니가 잘못될까 봐 걱정됐다. 그리고 이곳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변에 날카로운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눈앞에 깨진 그릇 조각이 보였다. 솔이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그릇 조각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밖에서 감시하던 남자 한 명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문을 열었다. 순간 솔이는 깨지 않은 척을 하려 눈감았다. 수상한 점이 있는지 살펴보던 남자는 솔이가 깨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릇 조각을 잡기 위해 다시 조용히 몸을 움직이던 솔이, 몸을 돌려 뒤로 묶인 손으로 조각을 겨우 잡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눈을 감고, 뒤로 깨진 조각을 밧줄에 계속 비볐다. 하지만 뭉툭한 조각은 밧줄을 끊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아픈 손목도 잊은 채 조금씩 조금씩 밧줄은 잘리고 있었다.


신월의 전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김좌수가 사랑채에서 포도대장과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박 종사관이 그 비밀 장부를 감찰관에 넘기면 끝장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어제 포도대장이 준비한 대로 그놈을 잡았다면 이리 노심초사하지 않았겠지.”

“그…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박 종사관이 순순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만하지. 우리끼리 다툴 문제도 아니구.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송 객주는 어딜 갔길래 코빼기도 안 보이는지 원.”

“송 객주 믿어도 되겠습니까? 비밀 장부에 애 닳는 건 좌수 어르신과 저뿐인 것 같아서요.”

송만석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한 채 고민하는 두 사람, 이때 밖에서 행랑아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월각에서 서찰이 왔습니다요.”

“가지고 들어오너라.”

김좌수의 말에 송만석의 수하가 서찰을 가지고 들어와 김좌수에게 건네고 나갔다. 김좌수, 서찰을 꺼내 읽어보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김좌수의 모습을 본 포도대장이 물었다.

“송 객주가 뭐라 썼습니까?”

다 읽은 김좌수가 작은 화로에 서찰을 넣자, 화르르 불길이 서찰을 삼켰다.

“궁금합니다. 뭐라 했습니까? 무슨 대책이 있답니까?”

“비밀 장부는 걱정 마시게. 송 객주가 그놈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해뒀으니.”

“네? 박 종사관을 찾았답니까?”

“그건 걱정 말고, 자넨 포도청으로 가서 방을 붙이게. 박 종사관이 역병이 들어 도주 중이니 절대 가까이하지 말라고. 마을 사람들이 접촉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내일 밤, 포졸을 모아 내가 말한 곳으로 가게.”

김좌수는 포도대장에게 송만석의 서찰에 적힌 내용을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네? 박 종사관의 누이를 인질로 말입니까?

“쉿! 조용히 말하게.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네. 너무 자세히 알면 다치네.”

김좌수는 문갑 서랍에서 은자가 들어있는 비단 주머니를 포도대장에게 건넸다. 포도대장은 비단 주머니를 열어 은자를 확인한 후 말했다.

“저는 좌수 어르신만 믿습니다.”

“그래, 날 믿으시게.”

사랑채에서 나온 포도대장은 비단 주머니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숨기고 김좌수의 집에서 나와 포도청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마을 곳곳에 방이 붙었다. 내용은 김좌수가 말해준 그대로였고, 돕거나 같이 있는 것이 발각되면 곤장을 맞는다는 포도대장의 경고도 추가 되었다. 장터 입구에서 방을 붙인 포졸이 떠나자, 장터를 지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종사관 때문에 마을에 역병이 퍼질까 걱정하며 수군거렸다. 그 사람들 틈에서 흰색 쓰개치마를 쓰고 뭔가 담겨있는 면포 주머니를 한 손에 쥔 연가가 서서 붙은 방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신당으로 돌아온 연가는 작은 방문을 열어 보았다. 방 안에는 연가가 피워놓고 나간 향에서 조금씩 연기가 피어올랐고,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는 선이 있었다.

“나리, 몸은 괜찮으신지요?”

연가의 목소리에 선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연무당이 만들어 준 오방색 팔찌와 저 향 때문인지 아직은 버틸만하오. 계속 환청이 들리긴 하지만….”

“이제 곧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팔찌와 향만으로 버티기 힘들 수도 있어요. 나리가 잘 버텨주신다면 내일 신월이 끝나기 전 악귀의 소멸과 함께 나리를 괴롭힌 그 고통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허나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오. 참, 그것은 구해왔소?”

“네, 다행히 파는 곳이 남아있어서 구했습니다. 나머지 준비는 제가 할 테니, 나리는 절대 이곳을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알겠소. 그나저나 마을은 어떻소? 포도대장이 날 찾기 위해 포졸들을 풀었을 터인데….”

“마을 곳곳에 방을 붙이며 다니더군요. 나리가 역병에 걸렸다는…. 아마 나리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아요.”

“설마 했는데,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조치해 놓아서 다행이오.”

선은 집에서 빠져나올 때 은밀히 돌석 아범을 만나 비밀 장부를 감찰관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생각났다. 마을을 무사히 빠져나갔다면 틀림없이 비밀 장부는 신월의 밤이 지나고 감찰관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나리, 전 신당에서 마저 준비할 테니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알려주셔요.”

연가가 방에서 나가자, 선은 통증을 참으며 목검을 품은 채 누우며 생각했다.

‘솔아, 조금만 기다려. 오라비가 꼭 널 찾으러 가마.’


폐가 안에서 솔은 손목의 밧줄을 끊고 밖을 살피며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발목의 밧줄도 끊으려는데, 마침 폐가의 문이 열렸다. 놀란 솔은 깨어나지 않은 척 계속 손목이 묶인 체하며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았다. 문밖을 지키고 있던 수하 두 명이 송만석과 들어 왔다.

“너희는 잠깐 나가 있거라.”

낯익은 송만석의 목소리에 솔은 풀어달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송만석이 솔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네 오라비가 내일까지 오지 않으면, 니 목숨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이후의 일은 모두 네 오라비 탓이니 날 원망 말거라.”

솔은 송만석의 차가운 목소리에 예전 그 송만석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송만석은 솔이 아무 반응이 없자 문밖에 있던 수하를 불렀다.

“들어오거라.”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수하들에게 말했다.

“내일 이곳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이 끝나면 포도청에서 포졸들이 이곳을 불태우기 위해 숨어있다가 내가 빠져나간 뒤 저 아이와 오라비를 이 폐가와 함께 없앨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종사관이 오면 물건을 뺏고 저 아이와 같이 잘 묶어두어라. 알겠느냐!”

“네!”

송만석은 안을 둘러보며 빠져나갈 뒷문이 있는지 확인 후 밖으로 나갔다.


숨을 멈추고 송만석의 이야기를 듣던 솔은 주변이 조용해지자, 실눈 뜨고 보았다. 혼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멈춘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리고 송만석의 계획을 선에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심히 소리가 나지 않게 일어나 발목에 묶인 밧줄을 풀고, 조심조심 바닥을 기어 도망칠 곳이 있는지 찾았다. 그러다 폐가의 나무판자로 된 벽 아래 쥐들이 들락거리는 작은 구멍을 찾은 솔은 오래되어서 썩은 나무판자를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조금씩 뜯어냈다. 솔의 이마에선 굳은 피와 땀이 섞여 흘러내리고 손가락은 나무판자를 뜯느라 마디마디 상처가 났다. 쥐구멍이 조금씩 커지고, 솔의 몸이 나갈 정도가 되자 솔은 문밖의 수하들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들어간 연가는 아궁이의 장작들 사이에서 새까맣게 탄 숯을 꺼내 다듬잇돌 위에 놓고 한 김 식기를 기다렸다. 숯이 식자, 미리 받아놓은 물단지에서 물 한 바가지를 사발 그릇에 담고 식은 숯을 그 그릇에 넣었다. 그리고 그 사발을 들고 신당으로 들어갔다.


연가를 안심시키려 잘 버티고 있다고 말한 선, 사실 점점 흑범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흑범이 보는 환영을 같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흑범이 보는 환영.

폐가 작은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솔이의 모습이 선에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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