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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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바다 중의 하나인 흑해를 둘러싼 열강들의 패권 경쟁은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쳐 지금의 터키 땅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동로마(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 시대를 지나 소련,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지난하게 이어져 왔다. 지중해로 통하는 해상로인 흑해는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역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 현재에 이르러서는 풍부한 수자원과 지하 자원으로 인해 다양한 나라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경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특히 동진을 추구하는 나토(NATO)와 이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러시아 입장에서 흑해는 유라시아 패권 경쟁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교두보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흑해 연안의 한 중앙에 있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 병합했고, 크림 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도시인 오데사에 이르는 흑해 연안의 회랑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지금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전쟁이 빈번했던 바다는 그래서 늘 오염이 심하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폭발물들과 침몰한 군함들로 인해 부영양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발트해와 마찬가지로 흑해 역시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으로 인해 바닷물의 산소 농도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바다로 변해 버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합병과 크림 연방구 출범을 통해 흑해 패권 경쟁의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지만, 나토(NATO)와 서구 세력은 결코 이를 좌시하려 하지 않는다. 크림 반도에 면해 있는 유럽연합 국가인 루마니아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유럽 내에서 러시아를 대체할 자원 생산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흑해 너머 카프카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의 가스관은 흑해와 아드리아해를 거쳐 그리스로 연결된 후 동남부 유럽의 불가리아까지 연장이 될 계획이다. 그리고 지금의 에너지 위기가 2022년까지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이 정점을 찍은 후 꺾이기 시작하면, 그 동안 천연자원 판매로 서구의 재제에 견디며 전쟁 자금을 충당해 왔던 러시아 경제는 2023년을 기점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2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며 기술적인 침체에 접어든 데다, 심각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제조업 위기까지 겹칠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일으킨 이 전쟁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국의 경제를 망가뜨림으로써 현 정권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할 것이다.
결국 전쟁으로 인해 남는 것은 파괴와 상처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 전쟁이 서구의 바램데로 러시아 연방의 해체를 촉진시키거나 혹은 러시아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세력은 결국 서구가 아닌 중국이나 인도, 터키를 비롯한 아랍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서구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권력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보다 더 강력한 적 혹은 경쟁자와 맞닥뜨릴 가능성마저 상존한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특히 흑해 연안 도시들의 물가는 결국 전쟁으로 인해 남는 것은 파괴와 상처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 전쟁이 서구의 바램데로 러시아 연방의 해체를 촉진시키거나 혹은 러시아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세력은 결국 서구가 아닌 중국이나 인도, 터키를 비롯한 아랍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서구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권력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러시아보다 더 강력한 적 혹은 경쟁자와 맞닥뜨릴 가능성마저 상존한다. 살인적으로 치솟았다. 내가 방문했던 조지아 최대 항구 도시 바쿠미는 전쟁과 징집령을 피해 밀려드는 러시아인들로 인해 집값이 폭등했고, 터키의 이스탄불은 리라화 가치 폭락과 맞물려 물가가 폭등했으며, 몰도바의 키시나우는 살인적인 물가로 인해 식료품이나 생필품마저 구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 연합의 새로운 자원 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역시 시내 도처에서 집 없는 노숙자들과 불법 이민자들이 속출하며 치안을 위협하고 있는데, 이들은 폭등한 물가로 인해 살 집과 먹을 것을 마련할 돈이 없어 시내의 밤거리를 떠돌며 행인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거나, 마약 매춘 등 불법적인 지하 경제 활동에 가담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어떤가? 우크라이나는 이미 북한과 같은 빛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인해 수도와 전기가 끊겨 밤이 되면 암흑 천지가 되어 세계 지도에서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다.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동부나 흑해 연안 지역의 상황은 특히 더 심각하다. 그리고 이 지역들에 면한 러시아의 접경 지역 역시 상황이 암담하기는 매한가지다. 꺾일 줄 모르는 인플레는 둘째 치고 공항은 전면 폐쇄되어 사람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게 됐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으로 인해 이들 지역민들의 피로감은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노욕에 빠진 열강의 위정자들과 어리숙한 정치 초보의 판단 실수와 고집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져 이제는 불가능해 보이는 협상 외엔 어떠한 출구 전략마저 사라져 버린 현실은 실로 개탄스럽기만 하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모른 체 전쟁이 일어나면 10년 혹은 20년 뒤로 크게 후퇴하겠지만,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러시아는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현지의 친구들에게 반 농담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전자의 예측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흑해 연안 지역은 아름다운 휴양지가 아닌 갈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전쟁은 늘 이렇게 우리네 민초들의 삶을 파탄시키고, 정 많고 친절한 이들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위정자들은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국민을 배반한 체 권력 투쟁에만 골몰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도 평화는 짧게 이어질 뿐, 또 다른 강력한 적들을 만들어 내어 다시 또 소모전을 벌이는 악순환만 지속된다. 그렇게 위정자들은 세상을 망가뜨린 대가로 힘을 얻고 돈을 벌며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들을 양산해 냄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불안과 반목을 가중시킨다. 이것이 바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지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우리 깨어있는 시민들이 위선적이고 탐욕적인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항해 뜻을 모아 단결하는 것은 그래서 더 이상 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될 시대적 사명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흑해와 아조브해를 둘러싸고 있는 동남부 유럽과 근동 아시아 지역에서 개혁이나 혁명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것들이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위해 꼭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리스 및 러시아의 정교회, 터키와 중앙아시아 및 중동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수니파와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 이슬람 교단 그리고 인도의 힌두교는 정치 경제 등을 장악하고 있는 기성 권력과 결탁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문화가 주도적인 이들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교리나 문화적 전통 안에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여기는 인권 존중이나 평등은 통용되지 않는다. 도그마에 사로잡힌 구세대적 관습이 여전한 절대 권력으로 일반 평민들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이들의 교리를 종교의 자유나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관용의 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그래서 솔직히 너무나 힘들다. 나는 서구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나 터키, 이란 같은 나라들을 더 좋아한다. 정치나 종교를 빼면 말이다.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서다. 개개인을 만나면 다들 너무나 친절하고 정이 많은데, 슬프게도 이들의 정신 세계나 관습과 마주하게 되면 일종의 가스라이팅 혹은 세뇌라고 볼 수 있는 종교정치 권력의 교조주의가 낳은 참혹한 이면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다만 이념이나 교리가 아닌 자유와 인권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돈이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 힘 있는 위정자들이나 가식적이고 기만적인 사람들이 아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체홉의 소설 ‘갈매기’에서 상징하듯이 이상은 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지만 다가가면 다시 멀어지는 수평선처럼 꿈은 늘 이루어지지 않는 동경으로 남아있다. 이것이 나를 정말 슬프게 한다. 희망이라도 있으면 더 끈질기게 노력할 텐데 그런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땅의 현실이 나를 결국 좌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깊은 슬픔... 지난한 고난으로부터 이미 해탈한 듯 한 민중들의 열정 가득한 허무와 애절함이 가득한 이 땅에서, 나는 여전히 이루지 못한 사랑을 부르는 민중들의 노래를 듣는다.
https://youtu.be/c4u0h0XLFbM?si=XMxSTgH-l06shF_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