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의 반대는 사랑과 각성
백제의 명장 계백은 나당연합군과의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자신의 식솔들을 본인 손으로 직접 죽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일화를 두고 자신의 가족이 적들의 손에 비참하게 죽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계백의 결단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만약 계백이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남아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지 않았을까? 계백의 선택을 조국과 가족을 위한 결기라고 칭송하기도 하지만, 나는 사실 그건 이기적이고 가부장적인 만행에 불과했다라고 생각한다.
카프카즈와 흑해 연안은 전통적으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지역이다.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인권이 공공연하게 무시되는 경우가 빈번한데, 이는 힘이나 권력이 윤리나 상식보다 우선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변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는 기득권층이 새로운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카프카즈와 흑해 지역은 많은 국가들이 접경하고 있지만, 국가 간 협력도 원활하지 않고 성공적인 국경 협력 사례도 적다. 오히려 크고 작은 분쟁만 잦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차치하고서라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몰도바의 트란실바니아, 조지아의 오세티야, 터키와 접경한 쿠르드 자치구 등이 모두 또 다른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지역들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이들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중앙 아시아, 중동 그리고 발칸 반도 역시 분쟁과 전쟁이 늘 끊이지 않는 지역들이다. 그리고 이 지역들은 모두 권위주의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일하게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은 조지아 뿐인데, 조지아는 유럽 연합 가입을 추진하며 빠르게 서구화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장미혁명이라는 성공적인 혁명의 역사 또한 가지고 있다. 나는 서구화를 추종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민주적 가치와 인권이 그 어떤 교리나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권위주의 문화는 하지만 이와 같은 원칙과 대척점에 있는 봉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고와 강제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촉발될 거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전제적인 통제나 강제가 전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다. 다양한 정보의 이동이나 사고의 교류가 비교적 자유롭게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통제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정보나 뉴스를 접하며 각성의 기회를 늘려갈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 권력은 그러한 미세한 변화까지 틀어막지는 못한다.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어떻게’보다 중요한 건 ‘어디로’이다. 방향만 올바르게 설정하고 있다면 더디게 가더라도 그렇게 힘들진 않을 것이다. 변화는 언젠가 벼락처럼 닥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러시아는 과연 시베리아로 수도를 이전하고 극동 개발을 가속화할 것인가? 그렇다면 러시아는 새로운 시베리아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중앙아시아와 극동은 물론 카프카스와 흑해 연안까지 개발 붐이 일고, 러시아는 유럽 연합으로 대표되는 자유 진영이 아닌 중국이나 인도, 중앙아시아나 터키, 이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밀착을 더 강화되고 결국엔 신냉전이 확고하게 고착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수도를 옮기더라도 당연히 민주화와 의미 있는 변화가 진전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와 같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러시아 사람들의 냉소적인 농담처럼 러시아는 지도상으로가 아닌 실제로 유럽에 똥을 지리고 시베리아에서 퍽큐를 날리며 극동을 향해 내달리는 말이 될 지도 모른다.
이는 결코 인류를 위해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만 놓고 본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인구 대국, 자원 대국들이 즐비한 권위주의 문화권과의 밀착을 통해 경제 규모를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런 결과가 도래하도록 러시아를 그냥 놔 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인구의 우위를 앞세워 접경지역에서부터 러시아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갈 것이다. 아니 오히려 국제 관계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러시아의 약점을 틀어 잡고 경제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우위를 앞세워 노골적인 침탈을 강행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나아가 유라시아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러시아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러시아인들이 각성하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에 안주하고,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을 스스로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바로 혁명의 시작이다. 사랑만 있으면 된다. 사랑은 이기적인 자기애가 아닌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과 용기 있는 행동이다. 나는 지금 이 곳 러시아에서 그와 같은 혁명의 시간이 도래하길 기다리고 있다. 편력의 끝에 있다고 믿고 있다.
https://youtu.be/-WNTxEIAVoc?si=cAvxp_4Et5dc8v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