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력의 시간 그 어디 쯤에서..그리고 혁명의 길
바람, 그 많은 우연들이 머무는 곳.
아! 끝내 잡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나의 소망
그 깊은 슬픔이여!
[1]
캄차트카에서 카렐리아까지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무르만스크에서 크림반도까지 러시아를 종단하는 건 생각만 해도 설렌다. 내일 모레면 오십이라 이 꿈을 이루려면 더 늦기 전에 실행에 옮겨야 되는데, 자금 문제도 있고, 러시아가 전쟁 중인 상황이라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아 실제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아무래도 난맥상이 많다. 게다가 터키에서 카프카스를 거쳐 이란을 관통한 후 인도, 중앙아시아까지 이르는 옛 페르시아 권역권 기행도 계획하고 있고, 한자동맹의 자취를 따라 발트유럽지역을 재방문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이 남아돌지도 의문이다.
보통 영어로는 ‘serve’라고 해서 정치 행위를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한자문화권에서는 ‘통치(統治)’, 즉 ‘다스린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해당 언어에 깃든 민주적 인식과 권위주의적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내가 편력하고 있거나 편력을 계획 중인 지역 대부분은 ‘봉사’ 받는 지역이 아닌 ‘통치’ 받는 지역이다.
한자동맹의 거점 지역이었던 발트유럽은 중세 유럽 내에서도 특히 도시 발전과 시민 계급의 성장이 두드러졌던 곳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계몽사상의 도래와 민주주의 이념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아쉽게도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한자동맹은 이후 그 역할을 다했지만, 그때의 전통은 현재의 유럽 연합으로 이어져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으로 계승되고 있다.
유럽 연합은 ‘다양한 하나 혹은 단일함 속의 다양성’을 기치로 회원국과 지역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한다. 유럽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강제나 억압이 아닌 자율과 복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유럽 연합은 공동 번영과 안정을 위해 회원국 간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더디지만 꾸준히 기존의 유럽을 넘어선 유럽 연합이란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의 밑바탕이 되는 정치의 기본은 바로 ‘봉사 혹은 섬김‘이다.
하지만 ‘봉사’나 ‘섬김’을 정치의 기본으로 보는 민주 진영과 달리 대부분의 권위주의 진영에선 여전히 ‘통치’가 정치의 통념이다. 실제 구현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민주 진영은 정치를 봉사로 인식하며, 국민을 섬기려는 노력을 이어간다. 하지만 권위주의 진영에선 여전히 국민을 다스림과 계도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권력은 늘 그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인다.
[2]
내가 지금 체류하고 있는 나라 러시아. 이 잠들어 있는 곰 러시아의 운명과 유라시아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더불어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를 둘러 싼 흑해 연안과 카프카스 그리고 중앙아시아가 처한 현실이 주는 시사는 무엇인가? 이들 나라의 권력자들은 국민이나 국가가 아닌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것을 애국으로 여긴다. 자신들에게 굴종하고,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한 것인 것처럼 선전하며 국민들을 세뇌시킨다. 그리고 그런 우민화의 과정을 통해 국민들을 길들이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시킨다. 그런 권력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그리고 그런 권력자들을 추종하며 변혁을 거부하는 지역이나 사람들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나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지역을 사랑하고 이 지역의 국가들에 대한 관심도 많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과 같은 유랑을 이어가는 이유이다. 하지만 독재가 만연하고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 곳의 현실을 보면 슬픈 감정이 든다.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문화와 인습이 지배하는 상황을 목도할 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막막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나는 정말 이곳의 평범한 시민들이 애처롭고 불쌍하다. 집을 잃은 가족들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친구를 잃은 보통 사람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기득권층이 강제하는 도그마와 선전 선동에 현혹돼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눈 뜬 장님이 되어가는 민중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종교를 불신하지만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은 우리로 하여금 늘 예비 된 길을 걷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바램이나 희망데로 삶이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다. 그래서 결과는 때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는가? 바로 그 과정과 진실이 더 중요하다. 이런 연유로 나는 어쩌면 아무런 소득도 없을 수 있을 지금 이 편력의 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긴다.
[3]
중국을 떠나 발트 유럽에서 시작해 러시아에서 되돌아본 나의 유라시아 기행(紀行)도 어느덧 15년의 시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난 그때도 혼자였고 지금도 역시 혼자인 체로 세상을 유랑하고 있다. 나는 과연 언제쯤 이 지독히도 길고 외로운 편력의 시간을 끝낼 수 있을까? 그런데 여전히 내 앞엔 갈 길이 멀고 길게만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 삶과 사랑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나는 아직까지도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굳이 애써 그들을 알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물 흐르듯 운명에 내 생을 맡긴 체 나의 시간을 살아낼 뿐이다. 그리고 겸허한 자세로 나를 사랑하려 애쓸 것이다.
세상을 두루 여행한다네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좁은 밭을 경작하면서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중에서
생명엔 유한이 있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시간은 그리고 바람과도 같아서 한번 지나가면 잡을 수도 없다. 나는 이 시간의 강 위에서 노를 저으며 구원의 땅을 찾아가는 방랑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비록 혼자였지만, 그 어딘가에서 운명을 개척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나와 같은 처지의 고독한 순례자나 마도로스 혹은 노마드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들은 자유로운 영혼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지구 어딘가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갈망의 날들을 불사르며 진정한 삶의 행복과 진실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보다 나은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 하기에 부족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하며 쓰디 쓴 삶의 고통을 감내한다. 그들은 나아가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세상과 더불어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하며 함께 번영하고 행복해지는 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장벽이 없는 들판은 없다. 파도가 없는 바다 역시 없다. 바람이 없는 초원이나 막다른 절벽 혹은 고개가 없는 산 역시 없다. 세상은 여전히 순수한 영혼들의 소소한 꿈들을 가로막는 인습과 관행과 불의와 부조리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열정과 관심이 있다면 변화는 아주 작고 소소한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바로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말이다. 나는 먼저 술을 끊거나 줄이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직장인은 일주일에 최소한 한권의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신문이나 뉴스 보는 시간을 늘려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학생이나 주부는 앉아 있는 시간이나 폭식을 줄이고 걷는 시간을 늘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아저씨나 아가씨는 금연을 시도하거나 야식을 줄이고, 새로운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노인 역시 위험한 운전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말만 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 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위대한 변화이고 소위 말하는 혁명이다. 체제 전환이나 헌법 개정 혹은 선거구제 개편이나 시위 같은 거창한 것들만이 변혁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서부터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혁명의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나와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겸허한 마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데서부터 내가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혁명은 발아할 수 있다. 그리고 부당한 권위나 권력은 이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지극히 소소하고 건강한 변화와 열망을 막지 못한다.
추신.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전쟁과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의 전망은 더 밝지 않다. 언제 어느 때 지금보다 더 큰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닥칠 지 전혀 예측할 수도 없다. 어쩌면 종말론적인 전쟁이나 자연재해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야기한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비관적인 생각과 전망만 남게 된다. 그래서 마음엔 슬픔만 가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소망과 참회가 일상이 되고, 우리의 생활이 건강하게 변할 때 혁명의 도저한 불씨는 춥고 어두운 세상에 빛과 열을 던지며 평화와 위로를 전할 것이다. 세상엔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건강한 상식으로 무장한 정상인들이 여전히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저물어 가고 있는 지구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열등감과 결핍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나는 신이 아닌 그들에게서 구원을 희구한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이 아닌 평범하지만 건전한 상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운명을 건다. 그 어떤 도그마나 이념보다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폭력에도 반대하며 겸허하고 정직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나는 꿈꿔 본다.
우리 앞엔 지금 혁명의 시간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