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과 뒤바꾼 것들 (feat. 플라스틱)

일단 반찬통을 들고 장을 나서보자.

by 따티제

집에서 도보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아웃렛 꼭대기 층에는 내가 좋아하는 서점이 있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깥 풍경과 하늘이 한눈에 보이는 통창이 두 개 층에 걸쳐 크게 나 있기 때문이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좋다. 게다가 이곳에는 잠시 앉아 조용히 책을 탐색할 수 있는 자리도 많다. 오늘도 아웃렛에 들른 김에 참새 방앗간처럼 서점으로 올라갔다. 언제나처럼 서가를 둘러보다 우연히 눈에 한 책이 들어왔다. 지도를 담은 책이었다. 전 세계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한 현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도들이 백여 장 담겨 있었다. 먼저는 이 지도들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다음에는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 보자는 취지의 책이었다. 오늘은 왠지 이 책을 조금 읽어보고 싶었다. 너무 크고 두꺼워 다 읽을 엄두는 나지 않아 목차와 결론, 그리고 지도들을 가볍게 훑어가며 읽기로 했다. 그중 한 지도에 시선이 멈췄다. 플라스틱 오염과 관련한 지도였다.


이 책의 다른 지도들과 같이 세계지도가 바탕이었다. 세계지도 위에는 플라스틱 배출량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인포그래픽이 그려져 있었다. 측정한 특정 수치는 강에서 바다로 흘러나오는 플라스틱과 관련된 성분의 수치였던 것 같다. 수치가 높을수록 파란색 원의 크기를 크게 그려 그 볼륨을 직관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두 페이지에 걸친 세계지도에 얹힌 대륙의 해안선에는 어디나 할 것 없이 파란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간혹 선이 끊긴 곳은 청정지역일 터였다. 그러다 수치가 크게 측정된 곳은 선이 아니라 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수치가 더 높을수록 원의 크기도 커졌다. 지도를 보며 당연히 훨씬 더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나라들에 더 큰 원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미국, 인도 같은 나라들을 먼저 찾아봤다.


그런데 뜻밖에 가장 큰 원을 보란 듯이 자랑하는 지역은 바로 중국과 한국을 둘러싼 바다였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인터넷 지도처럼 그 지역을 확대해 가며 더 자세히 탐색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가장 큰 원들이 겹겹이 그려져 있는 그곳의 중심에 한국이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느껴졌다.


얼마 전 본 뉴스가 떠올랐다. 우리가 카페에서 흔히 사용하는 종이컵에 뜨거운 음료를 담으면 미세플라스틱이 어마어마하게 음료에 녹아 몸속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생수병에 담긴 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흡수된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즉각적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어떠한 부정적인 형태로 발현될 것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알고서도 일부러 미세플라스틱을 마실 필요는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환경에 해악인 일회용품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회용품 쓰레기들을 집에 가져가지 않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가 않았다. 우리는 너무나 바쁘고 너무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가장 많이 일회용품을 집에 소환시키는 건 배달음식을 주문했을 때였다. 문 앞에 완성된 요리가 도착한다. 먹고 버리면 된다. 그런데 분리수거함 한 칸이 순식간에 차버린다. 문제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집밥을 해 먹으러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갔다. 대부분의 재료들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플라스틱 포장이나 스티로폼 접시에 담겨 비닐랩으로 씌워져 있다. 안의 내용물들만 빼달라고 하면 아마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재래시장에 갔다. 재래시장에서는 그나마 그런 포장들이 덜한 날것의 식재료들을 공수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인들은 손님이 무엇을 달라 하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손 빠르게 비닐봉지부터 뜯어 대기하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이다 싶다. 길거리에는 버려진 일회용 커피컵들이 넘쳐나고 수요일마다 아파트 분리수거날 분리수거장으로 나가보면 온갖 재활용품들이 넘쳐난다. 재활용이 되는지 안 되는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난주는 배달음식도 포장음식도 시켜 먹지 않고 집에서 해 먹었더니 분리수거 함이 그야말로 텅텅 비어있다. 무언가 뿌듯하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면 된다. 그런데 이게 최선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배달, 포장음식을 판매하는 것이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난관이다. 식재료에서 나오는 일회용품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트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빈 반찬통을 들고 재래시장이나 아니 직거래 판매장 같은 곳을 찾아다닌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까? 나 한 사람 그렇게 한다고 과연 그 원에 일말의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그곳을 찾아가기 위한 환경 비용은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럼 동네 마트의 생존은? 질문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사실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텀블러를 세척하는 세제와 텀블러를 폐기했을 때 환경에 주는 영향이 텀블러가 없었다면 사용했을 일회용 컵들을 사용했을 때보다 과연 더 친환경적인지. 그런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냥 직관적인 판단을 할 뿐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마저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남들보다 발자국을 덜 남기고 있는지도 또한 모를 일이다. 일상 속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에 유난히 예민하게 굴 때가 많은 나에게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다고 나도 안 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아는 것도 사실 별로 없다.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이런 현실이 불편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나의 행동이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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