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네가 내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

꿈에 내가 나왔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by 따티제

밤새 비가 내렸다. 모닝콜과 새소리가 뒤섞여 잠에서 막 깨려던 찰나였다. 친구의 전화가 나를 깨웠다. 조금 전까지 꾸던 꿈 속에서 미쳐 다 빠져나오기도 전이었다. 꿈속의 나는 아직 퇴사하기 전의 직장인이었다. 왜 아직까지 퇴사하기 전의 꿈을 꾸는지. 급하게 5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이었다. 점심밥을 사 준 동료가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내가 사주겠다며 밀크티를 파는 카페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시간이 1분 지나있었다. 소름 돋게도 시간은 13:31분. 내 점심시간은 13:30까지였다. 이 미친 기억력. 사장님이 늦게 들어왔다고 뭐라고 하면 어쩌나, 괜찮아, 그래도 난 곧 퇴사할 사람이니까 조금 늦게 들어간다고 뭐 별일 있겠어, 하며 마음 졸이며 밀크티를 파는 카페를 찾아 헤맸다. 내가 찾는 카페가 보이지 않아 한동안 길가를 서성였다. 그러다 결국 한 곳을 발견했다. 무려 세 종의 밀크티를 9천 원 안팎의 가격에 팔고 있었다. 세 종의 밀크티의 차이점을 점원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꿈인데 왜 이렇게 디테일한 거야.


두 잔이면 1만 8천 원, 한참을 고민하다 너무 비싸서 못 사고 나왔다. 길에 서서 또 한참을 고민이다 그냥 오늘은 시원하게 쏘자 마음먹고 다시 카페로 향하는 길,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친구가 전화를 하자마자 꿈 이야기를 했다. 꿈에서 내가 나왔는데 안 좋은 꿈이었다며 안부를 묻고 오늘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알겠다고 대답하라고 했지만 고집 센 나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꿈 때문에 은근히 피곤하다.


나는 꿈을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한다. 보통 내가 꾸는 꿈은 나의 생각과 상상에서 비롯된 일들을 바탕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꿈을 한번 분석해 본다. 이틀 전 저녁, 실제로 나는 회사 동료를 만났다. 꿈에서 나온 그 동료는 아니었지만 꿈속 재료가 되기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어제 잠들기 전에는 브런치 작가의 프로필에서 밀크티를 좋아한다는 문구를 읽은 기억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늘 시간에 쫓겼고 보통 테이크아웃하는 음료를 9천 원의 가격에 사지는 않는다. 망설일만하다. 나의 경험과 성향과 기억이 맛있게 버무려진 꿈. 그래서 보통 왜 이런 꿈을 꿨는지 나 스스로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 아프신 줄도 몰랐는데 어금니가 빠지는 꿈을 꿨다. 이런 경우는 조금 신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때운 금니가 빠지기도 하고 이가 여러 개 빠지기도 하는 꿈을 꿨지만 별일 없었다. 때로는 내가 아닌 타인이 꿈속에 주인공으로 나올 때도 있다. 보통 좋은 모습으로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을 위해 짧게 기도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호. 그러고 나서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개연성을 생각한다. 보통 그 사람이 보고 싶거나, 꿈속까지 미워했거나, 또는 그 사람과의 관계 속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무언가는 상대방은 꿈에도 모를 서운함이기도, 내가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자조적 후회이기도, 지금이라도 내가 손을 내밀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미련이기도 하다.


타인의 미래가 내 꿈을 통해 보인 게 아니라 나의 후회 혹은 소망이 꿈속에서나마 어떠한 형태로 해갈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무의식이나 비과학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 같은 세상을 설명하려면 판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의식적이고 과학적일수록 무의식적이고 비과학적인 것들을 배제하기가 어렵다고 믿는다. 우주를 탐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광활함을 알게 될수록 창조자의 존재를 더 찾게 된다고 말하듯이. 우리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친구의 꿈이 어떤 성격의 무엇이든 간에 그래서 오늘 나에게 몇 번이나 주소를 물어보며 식사를 배달시켜 주겠다고 하면서까지 나를 집 안에 묶어두려 종용하는 내 친구의 전화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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