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모두 포기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요즘은 하루에 적어도 만보, 많게는 이만보도 걷는 것 같다. 효율을 극도로 따지는 성격 탓에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이동하거나 조금이라도 이동시간이 길어지는 루트로 움직이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걷는 것만큼은 예외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걷기 좋은 길이라면 그 길을 택한다. 버스나 지하철로 한 두 정거장이면 되는 거리는 굳이 차비를 들일 필요 없이 운동삼아 그냥 걸어 다닌다. 이, 삼십 분쯤 더 걸려도 상관없다. 아, 출근길은 당연히 예외다.
처음부터 걷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걷기를 시작한 것은 동네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받고부터였다. 직장생활과 스트레스에 치여 지내던 어느 날 위장약을 지으러 내과에 갔다. 당시 소화가 잘 되지 않기가 예사였고 상황에 따라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진땀이 나는 증상들도 나타났다. 그런 나에게 의사 선생님께서는 하루 50분 걷기 처방을 내려주셨다. 50분은 쉬지 않고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로 걸어야 한다고 하셨다. 처방이 납득이 갔다. 운동은 무슨, 퇴근 후나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기 바빴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근린공원이 있었다. 곧바로 처방을 따르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해 공원을 몇 바퀴 돌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최소 50분을 채울 수 있도록 걷기 루트를 짰다. 그렇게 퇴근 후 걷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걸어서 십분 남짓 걸리는 공원 한 바퀴를 도는 것도 힘들었다. 초, 중학교 때는(너무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장거리 달리기 시합이나 등산에서 전교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이 일상이였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주 새벽 조깅을 나가기도 했고 쉬는 날이면 한강을 뛰며 스트레스를 풀었기에 내 체력은 언제까지고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근린공원의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충격적이었다. 걷기 첫날, 뭉쳐있던 어깨, 목 근육들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두통도 시작됐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붓기 시작했다. 숨이 차고 어지러운 느낌도 들었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내 몸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서 그냥 집에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횟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걷기가 조금씩 더 편해졌다. 속도를 더 냈다. 조금씩 뛰기도 했다. 걷기를 시작했던 것은 봄이었다. 봄을 지나 여름, 가을, 겨울이 되기까지 계속 걷고 또 걸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걸었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바람막이를 목 끝까지 올리고 걸었다. 눈이 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걷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주말 오전, 그날도 걷기 위해 공원에 가기로 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찬 빗방울이 퍼붓던 깜깜한 밤에도 예외 없이 걸으러 나갔었던 나이기에 그 정도 비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십 여분을 우산을 쓰고 걸어가 공원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우산을 쓰고 걷는 분들이 서너 분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나처럼 걸으러 나온 사람들이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보행과 관련한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고 있던 때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사람들의 보행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직업병 때문에 더 빨리 알아차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분들은 모두 보행이 불편한 분들이었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계시던 할아버지, 지팡이를 짚고 걷고 계시는 할머니, 그리고 보행 보조기를 끌고 걷고 계시는 분까지, 그 날 공원에 나온 그들은 모두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걷기가 간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마다의 속도로 트랙을 걷고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걸으러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각자의 상황과 목표는 저마다 다르고 속도도 다를 테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포기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일종의 동지애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전보다 더 자부심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체력을 회복했고 근린공원뿐 아니라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아킬레스 건염이 왔다. 발목에 무리가 가는 활동을 한 터였다. 조금만 걸어도 발 뒤꿈치가 너무 아파 걸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기를 며칠, 여전히 증상은 낫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어느 날, 절뚝거리며 걷다 길에 멈춰 선 나를 발견하곤 결국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물리치료와 체외충격파를 받았지만 고통에 비해 받지 않은 쪽과 비교했을 때 별 차도가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다시 걷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아킬레스 건염을 호전시키는 마사지 방법을 수 없이 찾아봤다. 나의 증상에 맞는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외출후나 취침 전에는 각 컨디션에 맞게 냉온 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걸을 때 통증을 줄여줄 수 있는 고가의 보호대를 장만했다. 운동화도 바꿨다. 걸음걸이도 교정했다. 걷다가 통증이 심해지면 쉬어갔다. 그렇게 어떤 방법 때문이었는지 모르게 증상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했다. 걷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걷기가 주는 유익은 끝이 없다. 처음에는 체력을 위해 걸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걷는 행위는, 특히 자연 속에서 걷는 행위는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 시간은 나에게 해소이자 충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걸을 수밖에 없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 어느 날 빗속을 함께 걷던 그날의 포기 없는 마음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