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하기.
스무 살이 되고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몇 번의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쉼표를 찍었다. 세어보니 네 번쯤 쉼표를 찍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쉼표는 대학생 때였다. 갑작스러운 대학교 이전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길어진 통학시간을 체력이 버티지 못해 휴학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반년 여의 시간 동안 온전히 체력의 회복에만 집중했다. 처음엔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사를 했다. 결국 단순히 체력이 떨어져서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한약도 지어먹고 뜸도 뜨면서 몸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엄마와 밥을 먹다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내 몸은 왜 그런 내 마음 같지 않은 건지 억울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많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보다도 더 중요했던 깨달음은 내가 나에 대해 참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관리라곤 하지 않던 당시의 나였기에 체력이 좋았었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도 내가 버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계획과 틀어지는 상황을 마주할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첫 번째 쉼표에는 그러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다음 쉼표는 도전을 위한 쉼표였다. 졸업 후 들어간 첫 번째 회사에서 일 년 만에 사표를 내고 나와 오랫동안 꿈꾸던 직업을 갖기 위한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다. 입시는 철저히 실패했다. 지금 돌아보니 입시 공부를 한다는 핑계 하에 현실을 도피하던 일 년의 괴로운 쉼표였다. 하지만 한 번은 도전해야 했다. 깨끗하게 실패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꾸던 직업을 갖는 길과는 멀어졌지만 그 일 년의 시간 덕에 이전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할 수 있었다. 그 쉼표는 도전과 포기, 그리고 새로운 도전으로 명명했다.
세 번째 쉼표는 그렇게 들어간 회사를 또다시 퇴사하고 난 후 오랜 공백기를 겪으면서였다. 이직을 꿈꾸며 호기롭게 퇴사했지만 재취업에까지 일 년 반 여의 시간이 걸렸다. 금방 이직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 달을 쉬고 바로 면접도 보고 몇 곳에 출근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내 자리를 찾기까지는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금방 이직하고 돈 모아서 결혼도 해야 하는데 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멈춰져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취준생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원치 않는 쉼표의 연장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내일 당장 면접을 보고 모레 당장 출근할 생각으로 매일을 지냈던 것 같다. 매일 이력서를 내는 취준생의 마인드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아무 계획도 할 수 없었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 생각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쉬게 될 줄 알았더라면 야무지게 일 년 계획을 짰을 텐데, 아니 일 년이 아니라 한 달 계획이라도 짰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그냥 흘려보낸 시간들이 참 후회가 된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내고 퇴사한 지금, 네 번째 쉼표를 찍고 있다. 이번 쉼표는 조금 복잡하다. 퇴사를 한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삶으로 도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비자발적인 쉼표로 바뀌었다. 여러 일신상의 이유로 당장 몸과 마음의 회복이 우선인 상황이라 마냥 열심히 무언갈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없어 마음만 분주했다. 그러다 이전의 쉼표들을 복기해 보기로 했다. 복기하다 보니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난 쉼표들을 돌아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나에게는 일상이 없었다. 주어진 매일의 시간들을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연연하며 괴로워하며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게 가장 후회가 된다. 하루하루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하며 일상을 건강하게 채워나갔더라면 그 쉼표들은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의 문을 가져다주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지피지기, 메타인지,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독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얼마 큼의 에너지를 쓸 수 있는지, 계획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너무 무리하지 않게 실행 가능한 계획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내일 당장 새로운 문이 기적처럼 활짝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를 적어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당연한 일들이 적히기 시작했다. 기상 후와 취침 전 따뜻한 물 한잔 마시기. 아침식사 포함 삼시세끼 잘 챙겨 먹기. 오전에 운동하기. 매일 묵상과 기도시간 갖기. 기본 중에 기본이라 생각되는 것들인데 그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역시나 모든 답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로 귀결되는 것 같다. 반면 이제는 멈춰야 할 루틴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했던 SNS 피드 확인하기. 한번 시작되면 끝이 없는 인터넷 검색. 지나치게 깔끔 떠는 강박도 좀 버려야겠다. 조금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가득 채웠던 카페인 끊기. 적고 보니 누구에게는 아주 지키기 쉬운 계획들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또 아주 지키기 어려운 계획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