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성향 백수의 바뀐 주말 풍경.
드디어 월요일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나의 주말은 월요일이 되었다. 여기서 나의 주말의 정의는 몸도 마음도 다른 요일에 비해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의미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여느 직장인과 같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일단 밀린 잠을 자고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만약 약속을 잡게 되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최대한 여유 있게 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돌아오는 월요일은 언제나 몸도 마음도 무겁기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토요일, 일요일이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서로의 일정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주말에 몰아 만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쉬는 내가 가급적 지인이 편한 시간, 장소에 맞춰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루틴과는 조금 다른 시간대에, 평소라면 잘 가지 않았을 먼 거리도 마다치 않고, 간혹은 하루에 여러 일정을 잡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다소 소진하는 주말을 보내고 나서 맞는 월요일은 나에게 휴일이 된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주말이다. 회사에 다닐 때 맞던 토요일처럼 늦잠도 자고 늦장도 부린다. 매일 지키려 노력하던 루틴을 깨는데도 조금 더 너그럽다.
백수에게도 주말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일과 쉼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말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게 보내는 것이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주말이 필요했다. 이는 곧 주말에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나에게는 때로는 일이었음을 의미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월요일에는 쉰다고 집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느지막이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도 하고 볼일을 보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요일의 만남과 월요일의 만남은 마치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정확히 반대의 요일과 같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 차이가 하나 있었다.
월요일의 약속이나 볼일은 소진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나만의 주말이기 때문이다.
월요일을 더 주말처럼 느끼며 지내게 된 데에는 어쩌면 청개구리 심보도 한몫한 것 같다. 그렇게도 싫었던 월요일, 싫지만 어쩔 수 없었던 월요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전의 월요일의 공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나는 지난 수많은 월요일들을 괴로워했다. 지금도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일요일 오후에 만날 때면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는 시간이 되기 시작하면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친구의 기분과 함께 공기가 무거워진다.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현재의 백수인 내가 던지는 위로는 등가교환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월급과 즐거운 월요일을 바꾸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답은 절대로 아니다.
결국 문제는 문자 그대로의 일과 쉼이 아니라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기꺼이 기쁘게 그 행위를 하려고 하는 마음인가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렇게 정리하니 내 심리가 이해가 된다. 그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날이 일하는 날이 되기도, 주말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평일도 주말로 바꿀 수 있는 걸까? 아니, 그 마음은 생각만으로 바뀔 수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환경을 바꾸어야 하는 것일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주말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 눈 뜨고 일어나 보니 월요일 새벽이어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