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강사의 아내] 밤 11시의 저녁식사

식단 좀 추천해주세요.

by 따티제

강사가 된 이후로 남편은 매일 밤 11시에 저녁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먹는 다음 끼니이니 야식이 아니라 저녁이다. 결혼 전, 밤 11시에 저녁을 먹으러 문을 연 식당을 전전하는 남편이 참 안쓰러웠다. 단골집은 집 옆의 대야냉면과 돈가스를 파는 가게였다. 매일 올드보이도 아니고 돈가스만 먹다 보니 돈가스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그도 아마 물렸을 것이다. 혹은 그 시간에 배달 영업을 하는 가게에서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그 배달음식은 보통 그 유명한 대한민국의 치킨이었다. 가끔 집에 놀러 가면 집안은 강의를 준비한 흔적과 치킨 발골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결혼하면 변변치 않은 찬이라도 저녁밥은 꼭 내가 차려주고 싶었다. 음, 아직까지는 그래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정오 즈음 점심을 먹고 출근해 밤 10시가 되면 마지막 강의가 끝나 공식적인 업무가 종료된다. 하지만 바로 뛰쳐나올 수는 없다. 강의가 끝나면 최소 30분 정도 뒷정리를 하고 퇴근길에 나선다. 간혹 학부모와의 전화상담이 있거나 긴급하게 잡힌 회의가 길어지기라도 하면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학원을 나서기도 한다. 학원에서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0분.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 치고 10시 30분에 학원에서 나선다고 하면 집에는 밤 11시 10분이 넘어서야 도착한다. 한창 주중 예능이 절정에 다하는 시간. 직장생활을 하던 나에겐 잠이 쏟아지는 시간.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려면 새벽 6시 정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밤 11시가 되어도 아직 남편은 도착하기 전이다. 일단 식사를 하는 사람도 조금이라도 빨리 밥을 먹고 소화를 시켜야 밤새 위에 부담이 덜 갈 테고 나도 조금이라도 빨리 임무를 완수해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에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점심도 혼자 대충 챙겨 먹고 나갔을 텐데, 그렇다고 너무 해비한 식탁이어서도 안되니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게 늦은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그가 도착한다. 집에 도착해도 한동안은 바로 밥을 먹으러 오지 못했다. 당일 강의 복습을 위한 영상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위해 녹화 영상을 업로드해줘야 한다나. 그렇게 밥을 먹고 나면 어느덧 12시, 자정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눌 새도 없이 먼저 잠을 자러 들어간다.


당연히 결혼하고 나서도 소소하게 같이 퇴근 후 만나 저녁 장을 보고 저녁을 차려 먹는 일이라던가 함께 외식을 하러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침엔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거나 잠시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내가 먼저 출근길에 나서고 먼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다.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장을 보러 나가면 부부가 함께 나와 장을 보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돌아와 거창할 것 없이 간단하게 찬을 꺼내 혼자 저녁을 때웠다.


하지만 이런 생활 패턴에도 장점은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쉬이 볼 수 없는 은행, 공공기관 업무 등은 모두 남편의 몫이다. 가스 검침이나 정수기 필터 교체도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 맡겨둘 수 있다. 가장 덕을 본 건, 이사를 준비할 때였다. 매번 일일이 휴가를 내고 쫓아다닐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가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변화가 생겼다. 지난 11월, 나의 퇴사로 인한 변화였다. 드디어 함께 하는 시간이 생겨났다. 아니, 생각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생겨났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조금 늦게, 그는 조금 빠르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아침을 시작하며 우리가 함께 하는 첫 번째 일과는 걷기 운동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와 점심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드디어 평일에도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밤 풍경도 달라졌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가 퇴근하고 돌아온 밤 시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편하게 도란도란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생활이 그래도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은 적잖이 독립적인 성향의 나와 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 녹록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 주말 부부도 기러기 부부도 얼마나 많은데 하고 누군가가 채근한다면 할 말이 없기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평범하게 느껴지는 그런 생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일에나 선택과 집중이 있으면 그에 따른 포기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편이 더 옳고 어느 편이 더 그르다고 누구도 확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가 바탕이 된다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언제까지 지금의 평화로운 상태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맛있는 점심 식탁을 차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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