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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티제 Jul 28. 2023

왜 아프면 꼭 죽이 먹고 싶을까?

복날에 떠올려보는 흰 죽의 기억

같은 음식을 먹고 나서도 혼자 탈이 날 때가 많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그렇게 아플 때면 부드러운 야채죽과 살살 녹는 계란찜, 그리고 속이 풀리는 맑은 된장국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떠나고 나서는 아프면 안 되는 게 정답이었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친구들과 야식을 시켜 먹고 또 혼자만 탈이 났다. 자주 체하곤 하던 나는 당황하지 않고 갖은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옷핀을 소독해 손을 따고 상비해 뒀던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뒤틀리는 속은 다음날까지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날 까지도 속이 나아지지가 않아 하루종일 굶고 버티고 어찌어찌 저녁이 되었다.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그냥 즉석밥을 넘기기는 싫고, 그냥 푹 끓인 따뜻한 흰 죽이 먹고 싶었다.


   기숙사 1층에 하나 있던 작은 식당에 갔다. 속이 안 좋아서 흰 죽을 먹고 싶은데 값을 치를 테니 죽을 한 그릇 만들어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물에 밥 한 공기 풀어넣고 끓여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단호하고 차갑게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들어서 어렵다고 하셨다. 손님도 아무도 없는 한가한 시간이었는데,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부탁을 드려봤다. 다 불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뜨거운 물에 그냥 조금만 끓여주기만 하셔도 된다고. 순진했던 나는 엄마 나이뻘의 모든 사람들이 내 나이의 모든 학생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십여 분 정도를 기다려 한 그릇을 받았다. 쌀은 불려지지 않았고 그냥 뜨거운 물에 밥 한 공기를 털어 넣어 풀어낸 모양새였다. 죽이 되지는 못할 거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는 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십여 년 전, 그 한 그릇에 오천 원을 지불했다. 그냥 즉석밥에 뜨거운 정수기 물이나 부어 먹을걸. 흰 죽을 볼 때면 그래서 항상 서러웠던 그날의 생각이 난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내 부탁이 무리한 것이기도 했다.


   남편이 가끔 탈이 난다.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원래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은데 다음 날 까지도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으로 죽을 끓여본 건 그때였다. 자주 가는 내과 선생님께서는 속에 탈이 날 때 꼭 죽을 먹는 건 아니라고 하셨지만 아프면 왠지 죽을 먹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죽을 끓여보니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죽은 그냥 속이 불편할 때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유동식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랑으로 간호해주고 있다는 그 마음인 것이다. 아픈 몸보다 더 힘들 마음에 위로를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약.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무엇. 그런 의미인 것만 같았다. 속이 불편할 때마다 나는 그 약을 이제 브랜드 죽 집에서 찾는다. 조금 비싼 값이긴 하지만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곳. 나를 위한 특별한 사랑은 결여될지언정 정성을 파는 곳이라고 나를 설득하며 값을 치르고 한 그릇의 상품화된 마음을 산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복날이 올 때마다 삼계탕은 먹었냐는 엄마의 전화가 온다. 삼계탕을 끓여 먹기 귀찮으면 치킨이라도 시켜 먹으라고. 며칠 전 중복 때도 아침부터 삼계탕을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다. 아니, 나 못 가, 갈 시간 없어, 아빠랑 맛있게 드세요. 밤 11시가 다 되어가던 귀갓길, 지금 삼계탕을 가지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곱게 포장한 삼계탕과 미리 불려놓은 찹쌀 한 줌. 집에 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정성으로 위를 따뜻하게 채우고 죽을 끓여본다. 불린 찹쌀을 삼계탕 육수와 함께 냄비에 덜어 넣고 보글보글 약한 불에 끓여준다. 조금 더 불어야지, 조금 더 퍼져야지, 그래야 죽이 되지. 조심스러운 주걱질로 눌어붙어가는 바닥을 살살 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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