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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유치원

누나들을 공략하라

by 묘묘한인생

김나복에게 3층(내 방)은 미지의 세계였다.

큰엄마(그러니까 내 엄마) 방에서 지내는 평온한 일상도 좋았지만,

위층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들이 나복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침내 용기를 낸 나복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발톱으로 하나하나 디디며 올라가는 그 모습은

마치 유치원에 처음 등원하는 아이처럼 설레면서도

떨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3층에 도착한 나복이가 마주한 것은

예상과는 조금 다른 현실이었다.

첫째, 김나농은 고양이 라면 극혐하는 고양이었고

둘째 나나는 그저 조용히 있고 싶어 할 뿐이었다.

나복이가 기대하고 바라던 사이좋은

고양이 놀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복이에게 그런 것쯤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나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일이었으니까






"야, 너 뭐야!!! 이 고양이 새끼!!!!"

라고 외치는 듯한 김나농의 하악질에도

나복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을 휘젓고 다녔다.

커튼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엎드려있는 나나에게 달려들어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혼자만의 신나는 파티가 펼쳐진 것이다.


김나농에게 김나복은

'정신 사나운 노란 털 뭉치'였고

김나나에게 김나복은

'평온을 깨뜨리는 방해꾼'이었지만

나복이는 그저 그런 누나들과 함께라는게

행복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2-3시간 유치원 놀이를 하고 나서

잠잘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2층으로 내려가서

큰엄마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 모습도 너무나도 귀여웠다.

이제 그만 자러 가겠다며

계단을 내려가던 그 뒷모습은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심 큰엄마도 그런 나복이를 뿌듯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큰엄마의 뿌듯함은 며칠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3층의 완벽 적응해 버린 나복이는 2주 정도 지나자

아예 3층에 터를 잡아버렸다.

나복이가 2층으로 내려가지 않자 당황스러워진

김나농과 김나나와는 달리

김나복은 이미 3층의 터줏대감이 된 듯 당당하게 굴었다.

다행히 김나복은 조금 빨리 중성화를 마친 덕분에

함께 지내는 데 무리가 없었고,

그렇게 김나농, 김나나, 김나복 3남매의 본격적인

공동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누나들을 깨우는(?) 것도,

저녁이면 혼자서 신나게 뛰어다니며 물건들을 떨어뜨리는 것도

모두 나복이의 몫이었다.


때론 나농이 누나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나나 누나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나복이는 여전히 해맑고 행복했다.



IMG_8270.JPEG

그렇게 내 방은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세 남매의 서로 다른 개성이 만들어내는 작은 드라마들이

매일같이 펼쳐졌다.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화해하고,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비록 누나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침입자였을지 모르지만,

나복이가 가져다준 활력과 웃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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