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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속의 작은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by 묘묘한인생

어느 날 저녁,

집 앞에 놓인 박스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미 알 수 있었다.

그 박스는 그냥 단순한 박스가 아닌 것을...


그 당시 집 앞에서 밥을 먹던 고양이들이

그 박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난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박스로 다가섰다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흰색 바탕에 검은 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한껏 겁을 먹고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넣어 들어 올릴 때도

전혀 저항하지 않는

그 순한 모습이 오히려 나를 더 당황시켰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세상에 홀로 남겨져 버린 듯한 그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토끼 아니야? 토끼"


하얀 바탕에 검은 무늬를 가진 아이는

얼핏 보면 반려 토끼를 떠올리기도 했다.


집에 있는 아이들과의 분리를 위해

친구에게 임시로 맡긴 후 다음 날 바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건강한 아이였다.

그리고 버려질 당시 이미 발톱까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바닥 패드를 보면 누가 봐도

집안 생활을 하던 아이였다.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키우던 아이였지만

어떤 사연인지 박스에 담아

우리 집 앞에 버린 것이었다



버려진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지

아이는 식음을 전폐했다.

나는 매일 친구네 집으로 달려가

강제 급여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에 유동식을 넣고,

저항도 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입에

조금씩 넣어주며

마음이 쓰려왔다.


식음을 전폐하는 기간이 길어져서

결국 아이는 우리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침대 밑에만 숨어있었다.

세상이 두려워진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살기 싫어진 것인지

두려움과 배신감이

그 작은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침대 밑에서 꺼내

품에 안고 밥을 먹이면서 나는 속삭였다.





"이제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지내자"


때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때로는 밝은 목소리로 매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예전 너의 가족이 너를 어떤 이유로 여기에 데려다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네가 우리 집에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에 발톱까지 모두 깎아서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우리 집 앞으로 널 데려다 놓은 걸 거야

그러니까 어서 마음을 열고 우리 집에서는 헤어질 걱정 없이

평생 같이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정말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랬다


2주 동안 매일 같은 약속을 했다.

아이가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상관없이

내 마음을 다해 전했다.

이곳은 안전하다고

너는 다시는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는 스스로 밥그릇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신뢰를 되찾아가는 작은 용기,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그 한 입 한 입에 담겨있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김나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큰엄마(우리 엄마)의 방 첫째가 되었다.


이제 나돌이는 박스 속에 담겨 버려졌던 상

처는 모두 잊고

엄마의 따뜻한 침대에서 마음껏

뒹굴뒹굴하며 밝게 지내고 있다.


나돌이에겐 어쩌면 배신으로 느껴졌을

박스 속의 이별이

새로운 사랑으로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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