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모드를 아시나요?
복희를 떠나보낸 지 5일이 흘렀다.
어제는 절에 가서 복희를 위한 꽃을 올리고,
그 아이를 닮은 염주도 하나 사 왔다.
작은 의식들이었지만
황폐한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더옹이라는 고양이가 산다.
아직 브런치 스토리에서 소개도 하지 못한 채,
만성 신부전과 췌장암이라는 무거운 병명을 안고
복희처럼 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 먼저
알리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더옹이에게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이상했다.
더옹이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면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슬픔도, 후회도, 그리움도,
심지어 사랑조차 실감 나지 않았다.
내가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
슬픈 건지,
아니면 너무 멀쩡한 건지 조차 알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혹시 내가 냉정해진 건 아닐까?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알아보니 이것도
하나의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셧 다운 모드'라고 불리는 이 것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아픔을 느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꺼두는
방어 반응이라고 했다.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이었다.
너무 아파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너무 사랑해서 사랑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 감정 없는 느낌조차도 내 안의
하나의 언어라는 걸 깨달았다.
무시하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이 느낌과 함께 있어보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키고,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글을 쓰는 것조차 참 힘이 든다.
문장 하나하나가 납덩이처럼 무겁다.
하지만 멈추지 않으려 한다.
셧다운 모드 속에서도 계속되는 일상들,
그 속에서 묵묵히 이어지는 돌봄과 사랑,
때로는 감정이 마비되는 것 같은 순간들이
오히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