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를 떠나보내며
시간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네 아이들과의 만남을 차근차근 소개한 후
복히와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런 여유로운 계획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어제 비로소 깨달았다.
9년이라는 시간을 남기고
복히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갑작스러운 간부전으로 인한
패혈증이라는
차가운 진단명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CPR을 하는 선생님 곁에서
복히를 부여잡고 외쳤다.
"엄마 여기 있어,
복히야 힘내"
그 말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력했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생명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그렇게 또 한 번 느꼈다.
이번이 일곱 번째 이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아니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이별을 거듭할수록
무게는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더 깊이 가슴에 새겨진다.
장례.
죽음을 맞이하는 법,
이별과 이별하는 법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그만큼 잔인하고
괴로운 시간이 또 어디 있을까
복히를 염하고 관에 옮기면서도,
나는 그 아이의 성향을 생각했다.
귀찮은 걸 싫어하던 아이라서
수의 같은 건 입히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복히다운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관 뚜껑에 편지를 썼다.
떨리는 손으로,
흐려지는 글씨로.
그 짧은 글귀 안에
우리의 9년을 어찌 다 담을 수 있겠는가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화장으로 이어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4-5시간이라는 절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울고, 웃고, 멍하니 있고,
뜬금없는 수다를 떨었다.
장례지도사님들에게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최대한
상냥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어찌했을까 싶다
1시간 30분 넘게 걸려 아이를 안고
장례시장에 도착해서
3-4시간을 넘게 그곳에서 장례를 치루고
다시 1시간 30분을 걸려 스톤이 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
다신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반려동물 장례업체에서 데려가서
보호자 없이 장례를 치르고
나중에 유골을 택배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은 분명 잔인하다.
점점 굳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화장터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 줌도 되지 않는 뼛조각으로 나오는
아이와 마주하는 것도 모두 고통스럽다.
어제 처음 갔던 곳에서 예약이 밀렸다며
한 달 뒤에 스톤을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집이 아닌 곳이면
잠시라도 무서워하던 그 아이를
한 달이나 모르는 곳에 둘 순 없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그런 감정이 어디 있겠냐고.
맞다.
이건 철저히 복히를 잃은 내 감정일 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장례의 고통을 겪는 것까지가
그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의 책임이자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복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집에서 자고 있는 것만 같다.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처럼
나를 반기러 나오다가 방바닥에
벌렁 누워버릴 것만 같다.
아마 한동안 그럴 것이다.
그러다 정말 다시는 그 아이를 안을 수 없다는 걸
처절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
또 한 번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이다.
나의 모정이다.
복히야,
9년 동안 고마웠어.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또 언제나 고마워.
우리 곧 다시 만날 테니
나농이 언니와 재미있게 신나게
그저 세계최강귀요미 복히로 지내고 있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