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어?

by 묘묘한인생






1.

나는 '누군가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치명적일 수도, 한없이 우스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보자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추문과도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정보를 하나 더 더해보자면,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런 사람의 은밀한 비밀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그 사람을 아는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걸 외치라고 꼬드기듯이

앞에 앉은 사람의 입에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복수심과 짓궂은 감정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아주 넌지시 그 추문의 실마리를 조금씩 흘렸다.

그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저녁 식사 자리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아마도 이 실마리는 조금씩 조금씩 굴러가 커다란 무엇이 되리라.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 사람에게 물어볼 예정이다.

"별일 없으시죠?"




2.

서울이 아닌 외곽으로 미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에는 바람을 피해 사람들이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스가 있었다.

그 안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는데,

한 남자아이가 끊임없이 부스의 자동문을 눌러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문에서 찬 바람이 들어왔고,

나의 미간은 자연스럽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 형! 5%나 6%나 그렇게 차이가 없다며!! 그런데 왜 안 해줘!!"

바로 옆에서 큰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는 연신 머리를 쥐어뜯으며

반은 울먹거리듯, 반은 포효하듯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인 듯 했다.

그렇게 나는 찬바람과 함께 들락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취한 아저씨의 애처로운 통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제발 같은 칸엔 타지 말자...'


기차가 도착했고, 하필 그 아이와 나는 같은 플랫폼에 서있었다.

'단단히 망했군'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기차를 타러 온 것이 아니라

엄마와 함께 아빠를 마중 나온 것이었고,

세 식구는 그렇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차에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피곤한 눈을 잠시 감으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아, 형! 그러니까 5%랑 6%랑 차이가 없다며.. 그런데 왜 그래?"

낯익은 목소리가 바로 내 앞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아저씨는 기차에 타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고서 화가 좀 풀린 건지

갑자기 가방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꺼냈다.

한 쪽 귀와 어깨에 핸드폰을 끼워놓고 샌드위치 비닐을 벗겨

입에 우걱우걱 욱여넣으며 아저씨는 화해의 말을 건넸다

"근데 형, 별일 없어?




3.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국을 끓이고 간단한 반찬을 한 개 만들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사무실 고양이들 방을 청소하고 놀아주고

햄버거를 먹고 일을 했다.

입원한 김야노댕이의 병원에 찾아가 상담을 했다.

아직 언제 퇴원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낙담이 되었다.

저녁 모임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난생처음으로 인생네컷을 찍고,

인형 뽑기도 해보았다.

꼬마 아이에게 선물할 예쁜 인형을 고르고

선물용 소금 빵도 샀다.

크리스마스라고 한껏 화려하게 꾸민,

그러나 너무나도 한적한 백화점 구석 한 의자에 앉아

손님 없는 가게들을 쳐다보았고,

잘못 나온 스파게티에 클레임을 걸었다.

그래도 배 터지게 먹고 나와 10분 연착되는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와 고양이의 약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옷을 갈아입는다.

침대 한 쪽에 걸터앉아 소주를 한 잔 따르며

혼자 조용히 나에게 물어본다

'별일 없니?'




4.

힘든 몸을 이끌고 들어온 집에 도착해있는 택배 상자 하나,

아는 동생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리미트 에디션 고양이 키링이었다.

예쁘다.

기운 없는 내게 보내는 그녀만의 덤덤한 응원법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행복하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

고맙다.




5.

별일 없는 하루

별일 없는 나

별일 없는 우리

별일 없는 인생

별일 없는 순간들이 가득하면 좋겠다.


나도,

우리도,

모든 이들도,

별일 없기를 바라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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