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홀로 앉아있다.
내 주위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때로는 나를 지나쳐가기도 하고,
때로는 내 옆에 앉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내 앞에서 앉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쉴 새없이 말을 한다는 것.
그들은 무슨 할 말이 그다지도 많은 것일까.
그래서 난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남성 둘이 나의 건너편에 앉아서 주문을 한다.
이들에게 음식의 메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점심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그들의 대화의 장.
그들은 열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예술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창작물을 내어놓는 일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한 남성은 경이롭다는 말을 무려 다섯 번이나 내뱉었다.
두성과 진성에 대해서 말을 한다.
두성과 진성을 내는 그의 입에서 쉼 없이 말과 밥풀이 함께 나온다.
얼마나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는지 굳이 내가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불뚝 나온 배 위의 바지춤을 추켜세우며 한 남자는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정말 경이롭다고 생각해요."
그래, 경이로웠다.
노년의 여성들이 지나간다.
어떤 약을 먹으니 무릎이 덜 아프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 약을 먹기 전까지는 누워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더랬다.
그러니 삶이 우울하고 입맛도 없어서 이렇게 이대로 나도 가는 건가 싶었다고.
그런데 손녀가 약을 사 왔다고 한다.
그 손녀는 대기업을 다니는데 벌써 4년 차라고 했다.
얼마나 바쁜지 평소에 얼굴을 볼 수가 없는데,
그 와중에도 할머니가 무릎 아프다는 얘기를 어찌 기억하고
무릎에 좋다는 그 약을 사 왔다고 한다.
그 약 이름을 들어보기는 했냐고 친구에게 묻는다.
그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대기업 부분부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어쨌든 그 손녀의 덕분으로 그 노년의 여성은 벌떡 일어나서 계단을 올라
쇼핑을 즐기러 떠났다.
한 남성이 내 앞에 앉는다.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지금의 와이프와 계속 살아야 하냐고 물어왔다.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꽤나 우스운 질문이었다.
그 답은 이미 본인이 알고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이야기 중독자인 나는 관심 있는 척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뭐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아내와는 이미 소원해진 상태였고,
아이가 있으니까 쉽게 이혼을 결심하긴 어려운데
하필 이럴 때 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이 아닌가?!
얄궂은 인생이다.
과연 어제 그는 나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얻어 갔을까, 궁금하다.
한 여성이 내 앞에 앉았다.
모르는 여성이다.
내년의 자신의 삶이 궁금하다고 했다.
생판 처음 보는 이의 삶까지 내다볼 정도로 내가 능력이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이야기 중독자인 나는 카드를 펼쳐들었다.
카드를 쓰면 언제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나에게 의심 없이 풀어낸다.
그녀는 자아를 찾고 싶었다.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하든, 여행을 떠나든 하고 싶다는 열망에
아주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시길 조언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그녀는 사직서를 냈다.
나와 그녀의 이성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그나저나... 내 탓일까.
한 여성이 내 옆에 앉는다.
나에게 묻는다.
그 어떤 이의 추문에 대해서.
나는 입을 닫는다.
그녀는 말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다고,
이 퍼즐을 완성하고 싶다고.
나는 물었다.
그 퍼즐은 어차피 미완성으로 끝날 것인데
왜 완성되지 못할 것에 자꾸만 미련을 두는 것이냐고.
피스를 잃어버린 퍼즐은 그냥 치워버리는 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몇 조각의 퍼즐 이야기가 궁금해
아마 어젯밤에 잠도 설쳤으리라.
하지만 난 말하지 않는다.
그 퍼즐은 내 퍼즐도 아닐뿐더러
아직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난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 있는 이 이야기의 퍼즐을
쉽게 내어놓진 않을 것이다.
나는 사악한 이야기 중독자이다.
언젠가 그 지독하고도 별일 아닌,
그렇지만 흥미로운 막장 퍼즐 이야기를
이곳에서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