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것에 대하여

by 묘묘한인생

게으르다.

아니

게을러진 것 같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정말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다.

남들과 조금 달랐을 뿐.

하지만 요즘의 얘기는 좀 다르다.

정말 게을러진 것 같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생긴 이 게으름은 내 본연의 성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어릴 적, 굉장히 늦게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어리디 어린 나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걷기 시작함과 동시에 혼자서 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을.

엄마의 손과 품에 기대어 나른한 게으름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그 핑크빛 날들을 최대한 누리고 더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유치원 때 역시 나는 게을렀다.

6살의 나는 도무지 이토록 어린 내가 왜 7시 30분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유치원이란 곳을 가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울고 또 울었다.

서러웠다.

이런 유치한 아이들과 유치한 율동을 하기 위해,

훨씬 더 맛있는 간식이 있는 집을 떠나 인색하기 그지없는 간식을 주는

이곳, 유치원에 와야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6살 중간에 유치원을 그만둘 수 있었다.

(물론, 나와 달리 부지런한 우리 엄마는 7살에 나를 다시 유치원으로 보냈다)


나의 이러한 성향은 청소년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매일 친구들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너랑 나랑 쟤랑 얘랑 똑같은 이 촌스럽고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신체 구조를 '완벽하게' 무시한 교복이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에 똑같은 신발을 신고 똑같은 책상에 앉아서

똑같은 책을 보기 위해 매일 아침 7시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세수를 하고 이곳으로 모여야 하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꾸역꾸역 중학교를 마치고,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고등학교를 들어갔지만

난 결국 고등학교 1학년 10월, 자퇴를 했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난무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지만,

사실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침에 학교를 가는 게 싫어서였다.

정말 아침 등교가 죽으리만큼 싫었다.

(아마 우리 엄마가 이 글을 읽으면 내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겠지만...)


문제는,

학원도 아침 수업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아침 등교를 겨우 피했더니 아침 등원이라니...

결국 나는 도서관을 선택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건 할 수 있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도 아침 수업은 최대한 빼고 들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아침 수업은 매일 지각 아니면 결석이어서

나의 대학교 성적은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거의 모든 회사는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

길게 다녀야 석 달 정도 다니고 GG를 쳤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전공은 영상과 관련되어 있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기보다는

밤늦게 시작해서 아침까지 일하는 직업을 구하기 쉬웠다.


뭐, 어쩌면 나는 게으르다기보단 아침형 인간이 아닌 걸 수도 있다.

저녁이면 말똥말똥 해지는 정신과

마음껏 부풀어 올라 여기저기 떠다니는 다양한 아이디어들,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다양한 것들에 대해 꿈을 꾸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아주 비밀스럽게 말이다.

그러한 생활은 나에겐 당연하면서도 매일이 설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밤잠이 찾아온 것이다.


'불면증'이라는 말로 포장된

나의 은밀했던 밤의 생활이 사라지고

난데없이 '밤잠'이란 놈이 찾아오고 만 것이다.


요즘은 늦게 깨고 일찍 잔다.

일찍 잠이 들어도 깨서 또 쭉 잔다.

'밤'이라는 시간 내내 잔다.

그리고 늦잠을 잔다.

큰일 났다.

이젠 정말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침의 나는 애초에 없었고,

밤의 나를 잃어버린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난 정말 심각해져 버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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