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양
풀잎이 싱그러움을 숨기지 못 하는 초여름이다. 깨끗하고 청량한 5월의 어느 일요일. 은숙과 기운은 담임 선생님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주례를 들으며 비원 근처의 웨딩홀에서 결혼을 했다.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신부와 신랑이었기에 많은 관심과 축복을 한 몸에 받았을 터였다. 은숙은 구름처럼 풍성한 주름에 고운 반짝임이 넘실거리는 실크 드레스를 입었는데 어딘가 몽환적인 긴장이 흐르는 웨딩 드레스였다. 귀 아래까지 크게 부푼 어깨 장식에서 세기말 감성이 느껴졌다. 은숙이 이 드레스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다면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희미하게 생기는 드레스였다.
옛날 앨범을 들춰볼 때 마다 은숙은 결혼식 사진을 여전히 불만족스러워 한다. 웨딩홀 직원이 해준 화장이. 정확히는 짝짝이 눈썹이 마음에 안 들어서 표정도 뾰로퉁했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메이크업을 종일 참아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말을 듣고 은숙이 정말 어릴 때 결혼 하기는 했나보다 생각했다. 오래 전. 매니저가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사이 좋은 송충이 눈썹을 정성스레 그려주더니 예쁘다, 이대로 근무해라. 한 일이 생각났다. 웃으며 거절하는 법을 몰라 퇴근시간만을 기다렸었는데. 그 날의 은숙도 고쳐달라 말 할 용기가 없었던 걸까 싶다. 하지만 그 마저도 생기있고 사랑스러워 일부러 그렇게 그려줬다 해도 납득이 될 것 같다. 피로연에선 결혼식의 긴장이 풀렸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뿌까 머리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은숙이었다. 은숙은 은숙 그 자체로. 기운은 기운 그 자체로 빛이 났다.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풍성한 안개꽃과 백합을 꼽은 기운은 헤벌쭉 웃으며 서있다. "우리 아빠 멋있었구나~" 앨범을 보다 가끔 놀라 말하면 은숙은 목소리를 솔 톤으로 높이며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니 아빠 멋있었어~ 훤칠해서 아주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어~" 기운이 여전히 멋지다는 걸. 그가 매리아스에 반바지를 입고 집을 돌아다닐땐 잘 까먹곤 한다.
서른 해 넘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 나이보다 많은 그 해를 짐작하기란 어려워 그래서 내가 제대로 챙겨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를 생각 해 봤다. 나의 부모를 축하하는, 일 년에 몇 개 안 되는 이런 기념일마다 자책과 아무렴 어때를 반복하며 살고있다. 한 마디로 불성실한 편이다. 이 다음에 아주 고급진 일식집에서 회를 사주겠다는 이루지 못한 약속만 잊지 않으며 말이다. 은숙과 기운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내가 그 약속을 잊지 않게 도와주었다.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비밀이나 음모가 만들어지는 고급 일식집 장면이 나오면. 은숙은 저렇게 두 발을 쏙 아래에 넣고 앉아 회를 먹어봤음을 자랑했다. 그 잠깐동안 비치는 황송한 은숙의 표정을 내가 기억하기 때문에 잊지 않았다. 기운은 내가 취업을 해 바빠지거나 결혼을 해 멀어지면 그 약속을 까먹을까 애가 탔는지 가끔씩 약속을 상기 했기에 잊을 수 없었다. 내년에는 모시고 가야할텐데 생각한다. 순수한 마음을 고이 전한 적은 더러 있었는데 고맙게도 은숙은 내 편지와 작은 선물들을 모두 간직해주었다.
회색 교복에 빨간 넥타이를 하고 다니던 고등학생 때. 당시는 친구의 생일이나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큰 종이에 롤링 페이퍼를 돌리는 게 유행이었다. 그 덕분에 덜 민망한 마음으로 살면서 딱 한 번 이벤트를 해줄 수 있었다. 나는 꽃무늬 색종이를 사서 우리 반 학생 수만큼 하트를 접었다. 마흔 명의 축하 메세지가 필요했다. 내가 다 접진 않았다. 우리 반은 문과에, 중국어가 아닌 러시아어에, 체육 말고 미술 수업을 듣는 이상하게 평화로운 반으로 마흔 명중에 남학생이 다섯 명도 채 안 되는 반이었다. 교실에서 혼자 색종이를 접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여자애들 사이에선 누구던지. 손재주가 좋건 나쁘건, 이 기회에 하트 접기를 배우고 싶건 둘러 앉아 색종이 접기를 도와주는 게 미덕이었다. 그리곤 하나하나 20주년 결혼 기념일을 축하드린다는 메세지를 써주었다.
'앞으로 30, 40, 50 주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수인이 착해요. 축하드려요.' '아침마다 차로 수인이랑 같이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즐거운 날 되세요.' 오랜만에 꺼내보니 잉크도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선명했다. 몇 안 되는 남자애들도 투박한 글씨로 동참해주었다. 친구 엄마로부터 기특하다는 소리도 듣고 돈 만 원 용돈도 받을 수 있던 이벤트였으니 실속을 더한 뿌듯함으로 남았지만 그 이후로 이벤트를 해 줘 본 적이 없다. 이제는 편지 한 통 써주는 게 왜 조금 민망해진 일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딸을 키우는 기분이 어떤 건지 설명이 필요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했으므로 이 사건 말고 대단한 이벤트가 없었던 건 맞는 것 같다.
어제가 은숙과 기운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나는 재난 카드로 꽃이나 사갈까 하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결혼기념일과 별개로 마음에 남는 다른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 하기 전에, 그 동안 이 집에서 나를 키워주고 사랑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이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런 김에 글을 썼고 자기 전, 필름 카메라로 거실에 앉아 쉬고 있는 은숙과 기운을 한 방 찍어주었다.
뉴스 좀 보게 골프 좀 그만 보라며 기운을 나무라는 은숙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내가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도 이 둘은 늘 이대로 평소처럼 잘 살 것 같다.
결혼해서는 정말 부지런 해라, 바질바질(부지런) 해야돼. 김치랑 다진 마늘 얼린 거는 엄마가 가져다 줄게. 지나온 결혼과 다가올 결혼을 서로 생각하며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