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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Sep 05. 2020

맥주 벌컥벌컥 여름

여름의 깁스 1호 


 그럴 일은 없지만 만일 그렇다고 상상해보면 아찔해지는 상상을 종종 해왔다. 그중 하나는 다리털을 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였다. 중학생 때부터 매일 밤 부지런히 털을 밀어온 나는 매끈한 척하는 나의 팔다리에 익숙하다. 언젠가 호인에게 “오빠, 내가 다리털을 안 밀면 나도 너처럼 털이 그렇게 많이 날까?” 물었고 호인은 “당연하지. 막 까맣게 이렇게 꼬불거리게 나처럼~” 하며 본인의 다리털을 자랑하듯 그리고 위협하듯 보여주었다. 난 "으악" 하며 자리를 뜨곤 했다.


앞으로 6주간 깁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결혼식에 이어 어이없게도 '이제 다리털은 어쩌지?' 싶었다. 결혼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랐을 걱정이었다. 6주간 다리털을 밀 수 없다는 건 내게 기념비적인 일이다. 청록색 깁스가 둘러지는 와중에 커팅 때 드러날 것을 생각하니 어디로든 숨고 싶어 졌다. 깁스 환자의 다리라면 수백수천 개를 보셨을 텐데 왠지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나도 기르면 성인 남성처럼 수북한 털이 날까? 내 다리털이 자랄 만큼 자라났을 때를 나부터도 본 적이 없었다. 불투명하고 가늠할 수 있는 게 없어 걱정은 자꾸만 덩치가 커져갔다.


털은 누구나 나는 것인데 유독 학창 시절에 남학생은 여학생의 털을 놀림거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두 말하면 잔소리지 싶을 만큼 털로 놀림받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들은 털이 많다고 구경을 오거나 얄밉게도 털을 잡아당기고 도망가며 사람을 괴롭혔다. 그러면 아프니까 빽하고 소리가 질러졌는데 무척이나 가오가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4학년 조폭마누라인데(반마다 정의로운 조폭마누라가 많았다.) 통감이라도 사라져 조용히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데. 생각하며 늦게라도 표정을 가다듬었다. 안 아픈 척, 하나도 안 창피한 척. 또래 여자아이보다도 팔에 털이 많은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음이 자주 원망스러웠다. 은숙은 팔다리에 선천적으로 털이 나지 않는, 한 번 만져보면 이거 반칙 아닌가 싶은 비단결 피부의 사람이었다. 이제는 어른이고 털로 놀림받을 나이도 지났지만 혹시라도 방치해 두었다가 누구라도 털에 관심을 보이면 어쩌나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태식에게 물으니 남자의 경우 다리에 털이 너무 없는 아이도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털에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이미지가 심어져 있나 보다. 매일을 밀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정상으로 규정되는 범위 안에 너무나 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라도 홀가분하니까. 아르바이트할 때 같은 고민을 했던 선배는 다리에 레이저 제모 시술을 이미 받았다 얘기하며 "정말 털 없는 애들은 돈 벌었어. 이참에 팔도 할까 봐."라고 자주 말했다. 면도기를 주기적으로 바꿔주던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1주, 2주 지나니 정말로 다리털이 자라났다. 붓기와 근육이 빠지면서 깁스가 헐렁해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틈 사이로 조금씩 털의 성장과정이 보였다. 스스로를 외면하고 싶어 짐과 동시에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게 어디까지 자라날 수 있을까. 집에만 있고 땀을 흘리지 않으니 호인 씨가 말한 간지러운 기분도 느끼지 못했고 비교적 냄새도 나지 않아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태식은 나의 걱정을 알고 가끔씩 장난을 쳤는데 내가 딴 짓을 하는 틈을 타 조용히 다리털을 보고 있기도 하고 혼자 웃고 가기도 했다. 나는 예민해져 보지 말라고 소리쳤다.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어도 일단 '목발이 어딨더라'부터 시작해야 하니 쉽게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뭐라고. 태식은 "그럴 수도 있지. 뭐 어때? 귀여운데."라고 늘 말해주었지만 어릴 때부터 단련된 털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이 참에 처음으로 팔의 털도 길러보았다. 팔에 털이 많아 별명이 '사자'였던 사촌언니만큼 자랐을 쯤. 그냥 처음 스스로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만지면 까끌한 느낌을 견디는 조건으로 겉보기 미용을 택했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습관성 면도가 그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밤마다 털을 면도하지 않고 사자가 된다는 건 몸도 마음도 편안한 일이구나. 나는 조금씩 해방되었다.


다리털 역시 무지막지하게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얕볼 수는 없을 만큼 자라났다. 속시원히 그 꼴을 보게 되니 의외로 깁스 커팅식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볼 테면 보라지 싶은 당당함도 덩달아 생성되었다. 자포자기의 당당함이래도 좋았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을 깨트려보면 이유 있는 희열이 있었다. 다리털을 기르게 되었을 때 나는 왜 성인 여성이 아닌 성인 남성의 다리가 먼저 떠올랐을까. 왜 '다리털을 밀지 않는 다면'을 주제로 한 상상이 내겐 그토록 아찔했을까. 무언의 약속을 담은 사회의 정서는 크고 작은 단위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단위를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스스로 넘어서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넘었다가 다시 자빠지는 사람마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나와 한 몸 같은 목발을 짚고 거실로 나왔다. 오랜만에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다. 맥주는 어째서 이렇게 시원할까. 털을 기르며 여름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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