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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콤이 Sep 13. 2024

미국에서 독립을 꿈꾸는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


얼마 전 작성했던 글이 떡상을 했다.  기쁘면서도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힘든 시간 글로 불안함을 떨구어 냈던 그동안의 행위가 보상받는 기분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어떤 결론을 지어야 할까?  ‘가족’이 주제였던 만큼,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쓰지 못했을 글이니까, 그게 당연한 듯싶다.  비록 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기록해 두고 싶다. 



모든 부모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에게 진지하고 심오하게 이야기해 본 적은 드물 것이다. 나와 내 자녀에게는 평온한 삶을 선물 받은 인생이라 강한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평생 20대일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주저하게 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믿음이 생긴 말은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긴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자녀에게 조언을 한다면서, 혹시나 그 조언으로 인해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자녀가 사리분별 할 줄 아는 현명함을 무기로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굳게 믿고 이 글을 쓴다.      



인생의 지침서라기보다는, 엄마였던 내가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그럴리야 없겠지만, 당연히 그래서도 안되고)  인생의 고난 앞에 설 때, 다른 사람은 어떻게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하나의 참고용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전에 먼저 사과부터 하마.      



동생이 태어난 이후, 항상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컸을 딸에게 많이 안아주지 못했음을 미안하다. 하던 일 멈추고 , 너의 두 눈을 바라보며, 너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았음을 미안하다. 동생으로 말미암아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     


공부 잘하는 누나 이야기를 하면서, 비교되는 감정을 느끼며 컸을 아들에게 미안하다. 혹시나 그로 인해 아들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 버린 것 같아 더욱 미안하다. 칭찬보다 잔소리가 먼저 나간 것에 대해서도 미안하고, 누나에게 많은 기회를 준 것처럼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자라줘서 둘 모두에게 고맙다.      

  




최근 손 발이 꽁꽁 묶여있는 상황 속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압박을 느낀 적 있다. 심리적 스트레스로 불안감이 밀려왔고, 불안감은 부정적인 마음을 불러왔다. 처음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세상을 원망했다.      



해답도 못 찾고 원망만 늘어갔다. 그러나 그 원망은 마치 빛의 반사처럼 결국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곧 깨우쳤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쩌면 세상이 내가 모르는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어, 자꾸만 내가 무언가를 하게끔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니, 조금씩 세상이 달라졌다. 한낱 주부였던 내게 기회라는 게 하나씩 선물처럼 들어왔다. 시민리포터, 다양한 사람들, 인터넷 세상에서 글쓰기, 작은 성취감,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용기. 불안이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기쁨이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든 순간에도 절대 부정의 기운이 내 마음에 들어올 틈을 주어선 안된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용납하는 순간,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삶이 굴곡질 때마다 고개를 쳐든다는 거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이를 악물고 참아내기도 한다. 너무 참다 보면 서운한 감정이 나쁜 감정으로 변하고, 나쁜 감정은 원망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원망은 상대는 물론이고 내 삶마저 파괴한다. 이것이 바로 남을 원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미숙하고 나약한 존재다. 세상이, 가족이, 친구가 미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바로바로 풀어버려야 한다.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건 넘어가고, 도저히 속상해서 안 되겠다 싶은 건 참지 말고,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을 말해야 한다. 단, 부드럽게 매너 있게 공손하게.      



만약에 서운한 감정을 말했음에도 상대가 몰라준다면, ( 여기서 전제는 ‘누가 봐도’ 상냥하게 자신의 마음을 진심 담아 이야기하는 거다. 너무 속상해서 감정 섞인 울먹임 정도도 괜찮다. ) 되려 그런 나를 이상하게 몰고 간다면, 그냥 입을 다물어라.      



절대 반응하지 말아라. 무표정도 좋고, 먼 곳을 응시해도 좋고, 엷게 띤 미소도 괜찮다. 이미 내 마음 따위는 무시하는 상대에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순간, 정말 세상이 무서워진다. 그것이 나를 방어하는 방법이다.     


 

반대로 원망이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선함 역시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선함을 택해야 한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주며,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삶은 우리가 보낸 에너지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이 결국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삶의 원리는 노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운동과 공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젊은 시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강한 확신으로 전할 수 있다. 원하는 게 있거든 정체하지 말고 항상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삶은 우리가 쏟은 노력에 따라 그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너는 크게 될 사람이다”     



크게 된다는 건 뭘 의미할까? 나의 어머니는 종종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 시절엔 어디서 점을 보고 오셨는지, 딸이 비행기를 많이 보며 여기저기 다닐 거라며 점쟁이가 한 말을 전달하셨다. 그래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딸이 승무원이 될 거라 생각하셨다. 어머니 시절엔 해외여행 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세상이라, 어머니 기준에서 ‘승무원’은 큰 사람이었나 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승무원이 안 됐다. 점쟁이의 틀린 예언이었다. 그러나 내 첫 직장 생활은 인천 공항에서 보냈으니 비행기를 많이 보았고, 그 당시 또래 보다 해외를 여기저기 다녔으니 꼭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      


     

“ 크게 될 아이다 ”          



어머니는 여전히, 내 자녀인 손녀와 손주에게도 그러신다.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하시는 걸까? 아마도 가족에게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계신 것이겠지.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응원도 담겨 있을 테고.   


  

아이들이 미국에서 앞으로 자주 듣게 될 말이다. 크게 될 아이라는 말을. 아이들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할머니 말씀에 한 가지만 더 보태고 싶다. 크게 된다는 것은 ‘직업적 성공, 개인적 성장, 사회적 영향력, 재정적 성공’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나는 아이들의 건강과 평안한 삶을 최우선으로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크게’ 되고 싶다면 반드시 목표를 갖고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     



이 외에도 ‘일에 관하여’ ‘결혼에 관하여’ 등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잔소리가 될 것 같아 이쯤에서 글을 마친다. 「미국으로 아이를 독립시킨다」 제목보다는 「미국에 계신 할머니한테 아이 보내기」가 더 어울렸겠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부모로부터 진정한 독립의 가치와 의미를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원망 대신 선함을, 나태함 대신 노력을 선택하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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