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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Mar 26. 2021

어쩌다 임신 준비


임신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물론 가벼운 마음을 일정을 타진해본 적은 있다. 이직하고, 결혼하고 하면서 생물학적 나이와 승진연한과 평가기간 등을 머리 써가면서 가장 이상적인(?) 임신, 출산 기간을 산정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애송이 같은 짓이었지만…^^


4월에 결혼 후 6개월 정도는 신혼을 즐겨야지!라는 마음으로 피임을 했다. 피임약을 꾸준히 먹으며 익히 알고 있었던 내 다낭성 난소증후군 증상이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10월쯤부터는 이제 몸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엽산이랑 비타민D도 복용하면서, 피임약도 끊었다. 


3달 정도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러운 기쁜 소식은 없었다. 중간에 다행히 생리를 했기 때문에 바보스러운 기대는 아니었다. 난임의 기준이 피임하지 않은 상태로 1년 간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만, 원래 배란이 잘 안 되는 지병이 있는 터라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난임이면 어쩌지?



내가 정말 정말 아기를 바라 왔던 것도 아니고, 내 나이나 계획상 아주아주 늦은 것도 아니지만, 예상하고 계획할 수 없는 상태를 견뎌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현재 회사에서 버티며 살아야 할지, 이직을 해야 할지,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언제 될지 모르는 임신 때문에 도전을 주저하는 것도 불만스러웠고, 새롭게 도전한 후 갑자기 임신 통보를 받게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마음으로 임신을 준비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온전히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부모 되기를 공부하면서 아기천사가 와주기를 바라야 하는 것 아닐까 하면서. 


내 무책임함과 게으름을 탓하기도 했다. ‘임신이 어려울 것 같아’라는 생각은 늘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내 치부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낭성인데 바로 임신됐어요’ 류의 글들을 보면서 위안 삼았던 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러한 내 약점, 치부를 바로 마주하기를 주저했다. 내가 늘 그러듯이 문제나 갈등은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처리하는 방식으로….


아무튼 이런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가 병원에 간 것은 내 생일날이었다.






큰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날은 내 생일이라서 일주일 전부터 오후 반차를 내놓은 상태였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으나 왠지 생일에 풀 근무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다. 오후에 은행이나 들르고, 서점이나 들러서 평일 오후를 평범하게 보내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귀의 이물감 때문이었다. 익숙한 이 느낌, 예전에 경험한 적 있는 이 느낌은 고양이 털이 고막을 건드릴 때 생기는 감각이었다. 지난번처럼 심해서 턱을 움직일 때마다 거슬린 것은 아니었지만, 귀를 미세하게 잡아당기면 귀 안에서 버스럭거리는 게 오래 참을 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병원 가야겠다고 생각한 게 이미 한 달 정도 지난 후였지만...) 회사 근처 이비인후과 검색을 하면서, 다니던 산부인과 근처로 고르게 됐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산부인과도 도전하자고 생각했다. 


낯선 곳은 아니었다. 재작년에 결혼 준비하면서 겸사겸사 상황 파악만 해두자는 마음으로 처음 이 산부인과를 방문했었고, 질염으로 종종 가기도 했었고, 지난해 3월에는 폴립 제거 수술까지도 받은 병원이었다.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내 상황을 설명드리고 바로 초음파를 보았다. 초음파를 본 선생님은, 아무 기미도 기약도 없는 상태라고 하셨다. 아마 내가 용기를 내서 오지 않았다면 아마 몇 달간 아무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내 게으른 난소 같으니……. 바로 본격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오늘 주사를 맞고 생리를 하게 한 다음, 생리 2일째부터 배란유도제를 5일간 먹은 다음 초음파를 확인한 후 성관계를 가지라는 지시였다. 며칠간, 며칠 후 언제 언제, 이런 식의 일정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핸드폰 메모장에 적기 바빴다. 



아 나도 글로 읽기만 했던 이 과정을 시작하게 되겠구나.



얼떨떨했다. 갑자기 이렇게 계획적으로 임신 시도를 진행하게 되다니. 기쁘기도 했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가능성 있는 확률로 진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 그렇게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는 결과지를 받은 것 같은 희망적인 느낌. 


주사 때문에 딱딱해진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부푼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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