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돌이 Mar 26. 2021

남편의 역할

주사를 맞고 나서는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생리를 기다렸다. 나는 사실 늘 생리가 반가웠다. 일 년에 몇 번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아 그래도 완전 망가진 건 아니야, 느리지만 꾸준한 아이야(?) 이런 마음으로 늘 생리를 맞이했다. 정말 쓰면 쓸수록 왜 이때까지 멍청히 손 놓고 반가운 손님맞이 놀이나 하며 지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닥치지 않으면 급하지 않은 것이니… 다시 젊어진다고 해도 꾸준히 산부인과를 다녔을지는 모르겠다. 


내 예상보다는 조금 더디게 온 손님은 주사를 맞은 후 5일째에 왔다. 선생님 지시대로 생리 3일째부터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었다. 어디에선가 잠이 오는 약이라고 들어서, 매일 저녁 9시에 먹었다. 원래 잠이 많고, 저녁나절부터 쓰러져 잠드는 것이 익숙한 나지만, 약을 먹는 동안에는 늘 조금 더 졸렸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한 알은 사실 때를 놓치고 나중에 먹었다. 강릉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갈 때 챙겨가는 것을 깜빡해버려서…. 12시간 정도는 문제없겠지 하며 마지막 한 알까지 다 복용했다. 


약 복용을 종료하고 3일 후에 병원에 갔다. 퇴근하고 바로 방문해서 초음파를 받았고, 진료실로 가기도 전에 난포가 아주 잘 자랐다는 선생님의 기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환자도 초음파 받으면서 실시간으로 초음파 영상을 볼 수 있는지 몰랐다. 왼쪽에 모니터가 달려있는지 모를 만큼 늘 산부인과 검사와 초음파는 긴장되는 처치였다. 진료실에서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나도 실감하긴 했다. 동그란 보름달 같은 난포 하나가 우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늦게 먹은 약 한 알 때문에, 약에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하면서 병원에 왔는데, 내막도 난포도 잘 자라주었다니 너무 다행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모레 두 번의 숙제를 내주셨고, 난포가 잘 터졌는지 확인하러 3일 후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와 수납을 하기도 전에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고.






글을 쓰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임신이라는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과업에 대해 쓰면서도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내가 내 약점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성격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결혼 전 명확히 우리는 딩크 부부다! 우리는 2명을 낳겠다! 와 같은 가족계획을 세우고 서로 합의하지는 않았다. 정말 어쩌다 보니 좋으니까 계속 만나고, 계속 더 만나면서 살고 싶어서 결혼하게 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거기에 내 부인과적 건강에 대한 나의 방어적 태도,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이후의 육아 부담 등으로 아마 건설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내가 거기에 알았어!! 내가 건강히 낳아주지!! 이렇게 못 받아줬다. 생각할수록 남편에게 미안하고, 반성할 거리 투성이다.


나는 과도하게 임신과 출산, 양육의 책임을 스스로에게만 부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겪지도 못했으면서 내가 마주하는 환경과 자료들을 토대로, 여성이 제일 힘들고 취약하며 주된 결정권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전적으로 여성의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전자의 반을 제공하고, 앞으로 가족 구성원으로서 함께 아이를 키워나갈 남편이 이렇게 사이드로 빠져있어야 하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요즘 남편에게 관심을 더 가지라고, 내가 신경을 쓰는 만큼, 당신도 정신적으로라도 신경을 쓰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요구도 ‘이것 봐, 나는 이만큼 고민하고 준비하고 신경 써서 하고 있는데, 너는 아니잖아. 억울해. 너는 몸이 불편하지도 않잖아. 너도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기대했다가 실망도 했다가 하고, 내가 물어보면 척척박사처럼 임신이라는 그 의학적 과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해!’라고 탓을 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걱정은 조금 덜어놓고 앞으로의 우리 인생에 대해 같이 생각해볼 수 있게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요구나 나무람, 비난이 아니라 함께 하는 대화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임신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