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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Jul 14. 2021

자라나지 않는 난포들

지지난주 토요일, 난포가 잘 자라지 않아 주사를 처방받았다. 매번 [약을 먹고+초음파로 확인 후+주사를 맞음] 일정이었기 때문에 평범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약을 먹고 잘 자라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주사를 맞으면 지난번처럼 잘 자라겠지! 하면서 운동도 틈틈이 하고 잘 지냈다. 


수요일에 초음파 검사를 하자 세 개정도 난포가 자랐다고 하셨다. 아예 약과 주사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 배란이 될 만큼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사를 2번 더 주셨다. 금요일에 오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토요일 아침 진료로 부탁드렸다. 금요일날 가서 하루라도 더 빨리 체크했다면 결과가 조금 달랐을까.... 


토요일에 가서 초음파를 봤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전에 1.6 정도로 컸던 난포들이 1.4로 작아져 있거나 아직 1.6 정도였다. 내막도 1센티가 안 되는 정도였고... 늘 내막은 1센티 정도였었는데.. 이전 주기까지는 그래도 초음파를 볼 때마다 난포가 차근차근 커졌었는데.... 걱정이 됐다. 진료실에 가자 선생님께서 다낭성인 경우 이렇게 작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주사를 2번 더 맞고 월요일 오후에 다시 한번 보자고 하셨다. 


주사실에서 주사 하나를 맞고 나와서 걸어가는 동안 평소와 다르게 배가 아팠다. 컨디션이 안 좋은가 생각하면서 걷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배를 걷어보니 주사 맞은 곳이 부풀어 오르고 피가 조금 맺혀 있었다. 같은 주사를 이제까지 주사실과 집에서 많이 맞아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깜짝 놀라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주사실 선생님도 위치는 이상이 없는데 왜 이런지 명확히 설명해주지는 못하셨고, 다시 진료실로 가보라고 하셨다. 주사 맞은 곳은 땡땡하게 멍울이 생기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한 번 보고 의사 선생님께도 배를 보여드렸다. 선생님이 피하주사라 천천히 흡수될 거라고 말씀해주시자 불안함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통증과 부풀어 오른 배는 금방 나아지지는 않았다. 주 사를 놓을 때 뭔가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검사 결과도 썩 좋지 않은데 매번 문제없던 주사까지 말썽이니 조금 더 울적해졌다. 


 




지난주 토, 일, 월은 가족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토요일 오전 진료는 예상하고 있어서 아침 진료를 보고 강릉으로 출발하는 것으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월요일 오후 진료까지 잡히는 바람에 마지막 날 일정은 일찍 끝내고 올라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나마 오전이 아니라 오후라서 다행이었지만.... 병원 일정 때문에 온전히 휴가를 즐긴 것 같지가 않고 피로만 쌓인 기분이었다. 


월요일에 본 초음파 검사에서는 더 확연히 작아진 난포들만 보였다. 모두 1.2~1.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내막도 0.7~0.8 정도였고. 휴가에서 빨리 돌아온 보람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힘이 쭉 빠졌다. 선생님께서는 주사를 고용량으로 두 번 더 맞아보고, 그래도 반응이 없어서 난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번 주기는 잘 안 맞는 것이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자라고 있는 난포로 보였던 게 난포가 아니라 그냥 남아있던 물혹이 아니었을까? 이제까지 난포가 크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페마라가 나에게 안 듣는 것 같다. 내 난소는 난포를 키우고 배란시키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진행하려고 하니 얘네도 싫어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렇다면 이렇게 억지로 키워낸들 이후 과정이 잘 진행이 될까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생겼다. 그래도 어쨌든 주사를 받았으니 착실히 맞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수요일 아침 진료를 보기 위해서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이틀 동안 주사 맞고 기다리면서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 병원에 가서 어떤 소식을 들어도 아주 기쁘거나 마구 우울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멍든 내 오른쪽 배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초음파 상으로 보이는 난포들의 상태는 월요일과 다름이 없었다. 아직 덜 자란 녀석들이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고용량의 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도! 참 뚝심 있는 녀석들이다. 선생님께서도 이번에는 약이 계속 안 듣는다며, 이런 경우 계속 진행해도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하셨다. 클로미펜의 부작용 때문에 이번에 페마라로 진행한 것인데, 다음에는 용량을 줄이더라도 다시 클로미펜으로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이번 주기는 약을 먹고 생리를 하게 한 다음 내원하라고 하셨다. 


안 좋은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그동안 꼬박꼬박 토요일, 수요일마다 병원 다니고, 약 먹고, 주사 맞고 했던 나와 남편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씁쓸했다. 그래도 1~2주 정도는 병원에 갈 일은 없을 테니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계속해서 난소를 못살게 굴어서 과하게 자극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선생님이 바로 생리 유도하고 다시 오라고 하시는 걸 보니, 그래도 난소에 큰 무리가 간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내 첫 번째 인공수정 시도는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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