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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Aug 09. 2021

다시 새로운 시작

다시 클로미펜 2알씩 5일을 처방받았다. 그리고는 1주일 3일 후에 병원 예약을 잡아주셨다. 원래 약 처방받고 1주일 후에 내원해서 주사 처방받았었는데..... 왜 이번에는 일정이 느슨해진 걸까?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니 그런 거겠지~ 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더 꼬치꼬치 캐물어야 하나?? 그런 것들이 전문가인 선생님을 못 믿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진료실에서는 매번 뭐에 홀린 듯 정신없이 있다가 나오게 된다.


약을 먹는 동안 지난번처럼 머리가 심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울하거나 컨디션이 심하게 나빠지지도 않고 평온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흘렀고 다시 병원에 갔다.






초음파를 보자 내가 보기에도 전혀 자라지 않은 작은 난포들만 많이 있었다. 갑자기 궁금했다. 다낭성이 아닌 사람은 정말 난포가 하나만 보이는 걸까? 맨날 내 올망졸망한 난포들만 보니 참.... 궁금했다. 아무튼 제일 큰 게 0.9 정도였다. 잘 보이지 않는 왼쪽 난소에 있어서 선생님과 함께 내 배를 꾹꾹 누르면서 겨우겨우 발견해낸 녀석이었다. 선생님이 토요일날 예약을 잡아주셨어도 내가 자진해서 수요일에 한 번 와서 주사를 맞혀달라고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에서 선생님을 만나자 다낭성이 심해서 클로미펜이 잘 안 듣는다며, 호르몬 조절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경우 시험관을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오늘 난포 키우는 주사를 한 대 맞고 간 후, 다음 주 중간에 다시 한번 보자고 하셨다. 늘 집에서도 자가주사를 하게 처방해주셨는데, 이번에는 한 대만 주셔서 의아해하니, 지난번에도 너무 많은 수의 난포가 자라서 위험했다고 하시며, 이번에는 한 대만 맞고 가라고 하셨다. 


이번 주기는 지난번과 너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서 조금 혼란스럽다. 약이 안 들어서 잘 자라지 못했으면 주사라도 더 맞아야 하는 거 아닐까? 지난번까지 자가 주사를 여서 일곱 개씩 펑펑 썼는데 갑자기 조심스럽게 진행하시니 답답했다. 지지난달 까지도 다른 이상 없으니 자연임신 기대해봐도 된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갑자기 시험관 아니면 어려울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시다니!! 시험관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뭔가 더 억울했다! 선생님 처방대로 순순히 따라가면서 그래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씀하셔서 그런 것 같다.


난포 크기가 많이 자라지 않은 것은 예전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내가 단백질을 너무 안 먹어서 그런가?', '더워서 산책을 많이 못해서 그런가?', '혹시 차가운 커피를 많이 마셔서?' 등등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을 조금 놓은 건지... 어디서 주워들은 것처럼 그냥 '그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스스로 배란하기 어려운 상태이니 호르몬 약이나 주사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주사를 안 맞기도 했고...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일도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게 됐다. 예전에는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건강상 문제가 있으니까 조절하고 돌보려면 주기적으로 체크해줘야겠지. 예를 들어, 주기적으로 투석을 해야 하거나 당 체크를 해야 하거나 혈압을 체크하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뭔가 담담하지만 좋지 않은 기분으로 병원을 나섰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친구와 약속으로 밖에 있을 거여서 혹시 모를 주사 처방에 대비해 여분의 아이스팩까지 챙겨 왔었는데, 화장실에 다 버리고 나왔다. 날은 청명하게 맑았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즐겁게 놀다 오자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소소한 동네 구경을 하고, 나누지 못했던 밀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는 일은 정말 너무 즐겁고 소중했다. 올 해가 이제 거의 4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나와 친구 모두 깜짝 놀랐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니.... 갑작스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너무 임신 준비에 매몰되어 있지 않았나 하며 반성했다. 임신 준비 아니면 회사생활이 싫다는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격한 감정의 파고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더 많은 시간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내면서 안정적인 상태로 지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는 루틴을 지키면서 작은 성취감을 얻는 일도 경험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카페에서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옆 테이블의 어린 연인들이 서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을 본 적이 있다. 너무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었고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나는 우쭐한 마음이 생겼다. 이제 저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져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차를 다 마신 후에도 사랑하는 남편과 손을 잡고 함께 우리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했다. 이런 소소하고 강력한 행복의 감각들을 소중히 하면서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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