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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May 21.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책이 있는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입버릇처럼 자주 쓰는 말이다. 늪 같은 깊은 침잠 속에서 나를 밝음 속으로 끌어올려줄 것만 같은 애틋한 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나를 긍정적이고 희망적 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가을 지리산에 놀러를 갔다가 푹 빠졌던 적이 있다. 가까운 동생들과 함께였는데, 지리산 근처 민박에 묵으면서 마냥 즐거워했었다. 1박 2일 일정이었는데, 숙소에 짐을 푼 후 산행을 했었다. 산행이라기에는 보잘것없지만 우리 셋은 숲 속을 걸었다.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갈 때는 조잘조잘 대화도 하면서, 이것 저것 둘러도 보면서 느긋한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더해질수록 우리는 말을 잊어갔고, 더군다나 나는 나만의 생각에 빠져 무작정 걷기만 했었다. 하늘은 빛으로 자꾸만 무겁게 나에게 달려들고 있는 중이었고, 숲은 어디선가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나무들의 낙엽소리로 사르락 사르락 댔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흔들리며 떨어지던 잎들은 눈처럼 흩날리기도 했고 저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를 놓쳐버리고, 아니 나만 홀로 떨어져 먼저 하산을 해버렸다. 오로지 귀만 열어둔 채 무작정 걷기만 했던 내가 그녀들을 잃어버린 거였다. 그렇게 돌아내려 오던 길에 진짜 비를 만났다. 꾸물대며 내 어깨 언저리를 툭툭 치며 달려들던 구름들이 결국 비가 되어 숲을, 나를, 또 불안한 마음을 집어삼켜버렸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혼자 숙소로 돌아갈 수 없어 입구에서 비를 맞으며 젖은 채로 그녀들을 기다렸다. 한참을 서있다가 드디어 그녀들을 만났다. 그때가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세상은 어두웠다. 재회한 우리들은 안도와 웃음을 찬삼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었다.

다음 날, 그곳에 있는 식당에서 재첩국을 먹었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햇살을 담아 빛나던 섬진강을 걸었었다. 투명한 물살을 우리 셋은 말없이 넋 놓고 바라보았었다.

그때가 지리산과 섬진강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의 섬진강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이 책은 공지영 작가가 섬진강 옆에 새롭게 둥지를 마련하면서, 그곳에서의 일상과 느낌, 그리고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결심과,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거기다가 섬진강으로 그녀를 만나러 왔던 손님들과의 일화들이 담담하게 소개되어있다. 사는 것에 아픔을 가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픔을 나누고 자신의 경험을 조곤조곤 그들에게 들려주었던 경험들을 풀어놓았다.




나는 그렇게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를 사랑한다고 "연습했다" 솔직히 나는 사실 이걸 진심으로 원하지도 않고, 이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보다는 그냥 이 세상을 다 때려 부술 정도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게 더 내 적성에 맞는 것처럼 느껴지고, 젊을 때라면 몰라도 이제 와 "너를 사랑해"같은 닭살 돋는 말을 하는 것이 과연 미친 짓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했다. 아인슈타인이 한 유명한 말대로 "매일 똑같은 일을 행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니까. 이제는 조금은 다른 일을 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녹찻잎들을 비벼 형체가 없어지도록 으깨면서 된장을 생각했다. 차가 본래의 맛을 내기 위해서, 콩이 된장이 되기 위해 우리는 가끔 우리가 생각했던 우리의 형상들을 잃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발효차는 비닐을, 콩은 곰팡이를 뒤집어쓰고 일정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고통뿐인 듯 느껴지는 그 시간들을 잊지 마시기를. 나비가 되기 위해 벌레는 자신의 몸을 마비시켜 번데기가 되어야 했고 꽃은 마치 죽음과도 같은 추락을 맞아야 했다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매일 거울을 보며 예쁘다고 칭찬해 주기, 알몸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해주기, 가장 사랑하는 자신이 사는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매일 가장 사랑하는 자신을 정갈하게 꾸미기 등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어색하고 낯간지러워하면서도 해내고 있는 작가는, 우리에게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참 어려운 노릇이다.


내용 중에 자문자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자신에게 물어보고 자신이 대답해보는 것이다. 마음의 암반에 도달할 때까지 묻고 답하는 것. 마음의 암반이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이란 녀석을 향해 계속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 순간 통증이 느껴지는 깊디깊은 심연이다. 암반에 도달하면 고통을 느끼게 되고 그럼으로 깨닫는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것. 그렇게 자신과 마주 보며 부딪쳐오는 고통도 무뎌질 수 있음에 이르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 모래밭의 모래 알맹이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말이다.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다. 작가는 그래서, 자신의 겉모습이나 자신을 소중하게 다루는 방법을 먼저 시작하며 그 방법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다. 내면을 사랑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일이니까 그나마 쉬운 외면을 사랑하는 법부터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나를 사로잡아 책 앞에 앉혔지만 제일 크게 내 마음을 건드린 것은, 너는 누구의 시선으로 자신을, 세상을 보고 있는가였다. 그렇다. 나는 수많은 그 누군가의 눈으로 나를,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킨듯해서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바꾸기 쉽지 않은 자신을, 사랑하기, 소중히 하기, 그리고 진정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쁜 모습이든, 좋은 모습이든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기.부터 시작해 볼 일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8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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