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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May 25. 2021

<세상의 모든 위로>  윤정은 쓰고  윤의진 그리다

책이 있는 공간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가

그냥 무작정 제목이 맘에 들어

 집어 든 책이다.

세상의 모든 위로라......

플라타너스 잎같이 넓은 손바닥으로

쓰담쓰담해주려나.

4개의 소주제로 나눠진 책.

소주제들이

마치 위로의 단계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들어주고, 바라봐주고,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언제부터인가 굉장히 힘든 일이 닥쳐올 때면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은 힘들지만 호사다마, 결국 일은 해결되고 힘든 만큼 더 기쁜 날이 올 것이다. 한평생을 두 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해 본다면 지금 이 힘든 순간은 몇 분이나 될까? 기껏해야 지나가는 한 장면, 몇 초쯤 될 것이다. 그러니 참아 내자. 눈 딱 감고, 잠시 숨을 고르고, 결국은 다 지나갈 것이다.

'영화관' 중에서


현실이 너무 끔찍할 때

하는 말이 있다.

'이건 꿈일 거야. 현실일 리 없어.'

영화도, 소설도

인생이다.

그 인생 안에 나를 녹여서

울기도 웃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는 항상

호기심을 이끌고

그래서 엿보기를 한다.

엿 본 삶에 나의 삶을 빗대기도 한다.

영화든 소설이든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이야기들임에는 분명하다.


지금 나는

두 시간짜리 영화 중

어디쯤 와있을까.





'슬픔의 유통기한'

  냉장고에서 유통 기한이 오늘까지인 

우유를 꺼내 마시며 생각했다.

'슬픔에도 우유처럼 

유통 기한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에 다가올 슬픔까지 1+1로 

한꺼번에 찾아온 거라면 좋겠다.'

'꾹 참고 한 번에 다 마셔서 

끝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든 순간은 유통 기한에 적힌 

기간까지라고

조금만 견디면 다 해결될 거라고

버겁게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고

누가 말해 준다면 좋겠다.


좋을 텐데.

슬픔의 유통 기한을 안다면.


 슬픔의 유통 기한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누가 정해준다면

정말 좋긴 하겠지만,

오늘까지만 슬픔이야.라고

정해준다 한들

딱 끊어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긴 하겠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깨니 풍경이 낯설다.

'아 여행지에 와 있구나.'

갈증을 해소하고 창 밖을 보니

빈 도로에 차는 지나다니지 않고 

신호등만 깜빡거린다.

정직하고 일정한 속도로 

초록에서 빨강으로

빨강에서 초록으로 바뀐다.


차 한 대 달리지 않으니 

몰래 잠깐 쉬어도 좋으련만.

어쩌면 저렇게도 성실할까.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멀리서 달려온다.

차는 신호등의 불빛에 맞추어 

출발과 정지를 반복한다.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이처럼 제 몫이 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아주는 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새벽 신호등의 일' 중에서


 

드문드문 잘살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미친 듯이

불안감이 폭발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묵묵히 열 일하는

신호등을 생각해야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신호등들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열등감은 떨쳐 버리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손잡고 등 두드려 주며 같이 가야 하는 친구인 것 같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떨치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그 감정의 속성이니까. 예민하고 까칠해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한 친구인 것이다.


일기를 덮으며 아직 내 안에 자리한 열등감을 꺼내 놓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다 펜을 꺼내 오래된 일기장 귀퉁이에 꾹꾹 눌러 적는다.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있어서 오늘의 나도 있어.

너를 극복하기 위한 발버둥 덕에 오늘의 나도 있어.'

'일기' 중에서

 

꼭 열등감이 아니더라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 하나 정도는

누구나 있지 않을까.

깊숙이 숨겨둔 그런 것들이

두더지처럼 불쑥 튀어나오면

그래. 너도 꽁꽁 숨겨져서 힘들 테니

오늘은

마음껏 소리쳐!

라고 위로라도 건네야겠다.




그랬다. 이미 찍힌 발자국은 지워버리면 그만이었다. 앞으로 찍을 발자국도 마찬가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길이 되고 삶이 될 테니까. 내가 가는 길이 곧 내 삶이 된다. 좋은 방향으로 걸어갈 생각만 하자. 뒤돌아보지 말고 힘차게.

'발자국' 중에서


좋은 방향이란 어떤 방향일까.

화살표대로 따라가는 것일까.

내가 화살표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내가 방향을 만들었다면

그 방향이

좋은지, 맞는지,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물음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길을 걸어가는 게

삶이라는 이정표일까.

지워진 발자국 말고

찍을 발자국

누가

깃발이라도 꽂아놓고

펄럭여줬으면 좋겠다.

 



유독, 

내 등을 쓸어줄 큰 손 같은

위로가 간절한 날이 있다.

그런 날 이 책을 열어보면

토닥토닥 손길 느낄 수 있으리라.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00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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