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Jun 07. 2021

아몬드  손원평

책이 있는 공간

얼마 전에 구입해놓고 그냥 쌓아둔 채로 방치되어있던 책이다. 읽고 싶었던 책인데, 쉽게 손이 뻗어지지가 않았다.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충격적인 일들을 너무나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다음장을 읽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결국 읽어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같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중략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p50 중에서



곤이 - 난 사랑이 실없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도 무슨 대단하고 영원한 것처럼 말하는 게 꼴같잖아. 난 그런 물렁한 거 말고 강한 게 좋다. 

윤재 - 강한 거?

곤이 - 그래. 강한 거. 센 거. 상처받고 아파하는 거 말고 차라리 내가 상처 주는 쪽을 택하는 거.

p178 중에서





아몬드는, '정상'과 '평범'속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보통의 감정과 편견들을, '정상적이지 않은' 윤재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알렉시티미아'라는 병명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죽을때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들도 많을 만큼 낯설다. '감정표현불능증'이라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윤재가 가지고 있는 병명이다. 또한 편도체가 너무 작게 태어나 공포나 두려움같은 것은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다.

주인공인 윤재가 곤이를 만나서 차츰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프롤로그에는 괴물이 또다른 괴물을 만났다고 표현했다. 왜 괴물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범주밖에 있어서? 

윤재의 시선에서 보여진 정상적인 사람들과, 자칭 괴물인 자신과 또다른 괴물로 칭해지는 곤이에 대한 이야기. 성장 소설이며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p225 중에서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p259 중에서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은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지고 태어난 윤재. 윤재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윤재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인 할멈과 함께 살았다. 끊임없이 감정에 대한 교육을 했던 엄마. 귀여운 괴물이라며 윤재를 세상 누구보다 아꼈던 할멈. 그렇게 중3까지 윤재세상의 전부였던 그녀들이 윤재의 생일날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날 큰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어릴때부터 정상인을 학습으로 배웠던 윤재는, 엄마와 할멈이 운영했던 헌책방과 함께 거친 세상속에 던져진다. 다행히 헌책방 건물주인인 2층 빵집사장이 윤재에게 도움이 되기를 자처하고, 윤재를 물심양면 도운다. 아직 미성년자였지만, 빵집 심사장의 도움으로 헌책방을 홀로 운영하면서 학교도 다니게 되는 윤재. 

언제나 그렇듯 학교에서 윤재는 이상한 아이 또는 병신취급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느 날, 엄마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몇번 마주쳤던 윤교수라는 사람이 책방을 찾아오고, 13년전 잃어버린 아들 역할을 부탁 받는다. 윤교수의 부인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사람으로, 평생을 아들을 잃어버린 죄책감으로 살면서 병을 얻었다. 그렇게 가짜 아들이 되어 면회를 가고, 며칠 후 부인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장을 찾았던 윤재는 그곳에서 진짜 윤교수의 아들인 곤이를 만난다. 곤이는 알고보니 얼마전 자신의 반으로 전학을 온 윤이수였다. 곤이는 부모를 잃어버린 후 버거운 세상에서 스스로가 만든 이름이었다. 

곤이는 전 학교에서 사고를 친 후 윤재의 학교로 전학을 온 것이었다. 곤이는 불량학생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아들 흉내를 낸 윤재를 초반에는 몹시도 때리고 괴롭힌다. 나중에는 자주 윤재의 헌책방을 들러서 잡지를 사가기도 하고, 윤재의 병을 알고는 그를 고쳐주려고 하지않아도 될 일을 하기도 한다. 

도라는 같은 반이었음에도 한동안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윤재와 가까워지는 여학생이다.

곤이와 도라를 만나면서 점점 변화하는 윤재.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직접 소설로 확인하기 바란다.





아몬드는 

윤재의 1인칭시점소설이다. 그러니까,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진 아이가 경험과 관계를 통하여 점차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가 주는 서늘함이 시리다. 충격적인 것도 전혀 충격적이지 않게, 비극도 전혀 비극적이지 않게 썼지만 읽는 사람은 오히려 더 깊이 충격을 받고 더 깊이 아파하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윤재반의 담임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화가 났고, 곤이의 아버지인 윤교수라는 작자에게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윤교수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과한 자기연민과 합리화들이 너무 싫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사람은 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17살이 될때까지 살아온 곤이의 삶이 가엽고, 오히려 윤재처럼 되고싶어하던 그 아이의 마음이 서글펐다.


윤재를, 윤재가 아닌 독자들은 끊임없이 윤재의 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계속 든 생각이 감정을 느끼지못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였다. 그러면서도 윤재의 편도체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더 커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가슴이 머리를 누를 수 있다는 말도 믿고 싶어졌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윤재와, 반면에 감정이 지나치게 과잉인 곤이.

다른 두사람이 성숙해지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무덤덤하면서도 직설적으로 그려낸 소설 아몬드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838072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위로>  윤정은 쓰고  윤의진 그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