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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Jun 15. 2021

그날, 밤바다




낯선 곳의 낯선 바다. 

검은 어둠이 턱밑까지 차오른 물들. 

기억 속의 그날에 대한 선명한 그림은 

검은 물속을 떼 지어 헤엄치던 꽁치 떼였다. 

새까만 검은 물만 

옅은 불빛에 넘실대던 그 시각에,

 드리운 낚싯대 사이로 

무리를 지어 몰려들고  사라지고는 하던 

그 빛나던 푸른 등. 

물빛에 반사된 그 모여든 빛들은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의 날렵함은 물조차도 막지 못했다. 

감탄사. 

살면서 처음 본, 

사진의 플래시 불빛만큼이나 

빛나던 찰나의 순간들. 

그 무리 지어 거칠게 물살을 가르던 

새끼 꽁치 떼의 모습은 

지금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바래지지 않는 한 장의 강렬한 

필름으로 남았다.



그 해 여름부터는 

현재의 생활들이 

지루하고 염증이 돋던 때였다. 

뒤도 돌아보기 싫었고, 

앞도 막막했던 시간들. 

어디 그 해뿐이랴만은 

그 해도 여기저기 염증들이 

붉은 반점처럼 

삐죽이 올라오던 

때 중의 한 해였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사면이 물로 덮였지만 

땅과 가까스로 연결되어 있는 

그 도시를 처음 가본 참이었다. 

문밖만 나가도 바다가 보이는 곳. 

고운 바다. 

낯선 땅에 

아직 익숙지 않은 이의 안내로

 그곳을 찾았었다. 

아름답지만 낯섦에 대한 두려움이

 발끝에서 찰랑대던 곳. 

불현듯 아는 이 하나 없는 

무인도 같은 섬에 내려 

오로지 

한 사람의 발걸음만을 

좇을 수밖에 없던 사면초가. 

깊어가는 어둠과 쉬이 친해지지 못한 채 

잠을 설치자 

군말 없이 따라나선 곳. 

고운 바다 항구의 끝자락.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다 구경을 했다. 

절반은 까맣지만 

제 목숨 다 해 빛을 내던 별이 있었고, 

그 별빛을 몸에 담고도

절반은 어둠으로 출렁대던 바다. 

뚫어져라 바라보면 

가라앉을듯한 심연. 

갑자기 나타난 부산한 꽁치 떼. 

꽁치 떼의 유연한 움직임들이 

나의 삶을 충동질했다. 

울컥 

몸을 찢고 올라오는 생동을 느끼며 

다시,

 현실과 

마주할 

힘을 

얻었다. 




검은색이 넘실대던 밤.

달빛은 졸음으로 사그라지고

가녀린 

먼 곳의 불빛들과

별들만이 안쓰럽게

온 힘을 다하던 바다.

검은 물을 뚫고 튀어 오르던 

그 꽁치 떼의 눈부심.

마음속의 두려움이

나를 잠식하고 갉아먹던 

죽어있던 시간.

푸른빛과 나란히

새처럼 날아오르던 그때.

꾸덕꾸덕 붙어있던 상념들이

날개를 달았었다. 

훨훨.




그날 이후의 내 선택이 잘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날 이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차례로 왔다.

그날에게 내 슬픔의 이유를

물을 수는 없다.

그날에게 내 고통의 이유를

물을 수는 없다.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이든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된

그날과 그 사람을

잊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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