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오래된 것들이 많다. 집부터도 오랜 건식을 자랑하고, 하나같이 새것보다는 때 묻은 낡은 것들이 많다. 이전에 살았던 곳에서 이 집으로 건너온 물건들 중에 자전거 한 대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사시사철 베란다에서 본래 자기 자리였던 양 서있는 자전거.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는 베란다. 공기같이 익숙해져 버린 그 자리 그 자전거. 수없이 나와 눈이 마주쳤을 테지만, 마음이나 생각과는 마주치지 못한. 그랬는데 어제는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저렇게 바위처럼 한자리에서 낡고 병들어버렸나 싶어 애잔한 마음이 사뭇 들었다.
이사 오고 얼마간은 참 열심히 쓸고 닦고 했었는데. 몇 년의 시간이 묵은 때처럼 녹이 슬었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고바위라 내려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올라올 때는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타보지를 못했다. 단 한 번도 체온을 내어주지 못함. 그렇게 돌덩이가 되어 버린 데는 내 책임도 무시 못 할 일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내어주지도 않고, 연관된 모든 추억을 깡그리 싸매고 있을 것처럼 그렇게 꼭 곁에 두어야 할 것처럼 욕심을 부렸었다. 그때는 그랬다.
살던 집에서 이 집으로 이사 온 날의 자전거는 쌩쌩하고, 건강한 청년 같았는데 지금은 타이어도 빵꾸나고, 쓸모롭지 못한 채 자리 차지만 하고 있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꾸역꾸역 미안함이 밀려온다.
이 자전거의 나이가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와 만났다는 것이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서 주인이 따로 있었고, 나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뒷자리에 타본 적은 있지만.
어쩌다 다른 도시에 살다가 친하지도 않은 나한테까지 왔냐고? 그것을 설명하려면 많은 것을 이야기해야 하니 그냥, 거기 이삿짐 속에 있어서 가져온 걸로 하겠다.
가만히 자전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한 시간은 제법 길어서 정이라도 든 것인지, 쓸쓸하고 늙은 모습이 애처롭다.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들까지 함께한 시간 동안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전거. 묵묵히 말이 없으니, 내 머릿속에는 흑백 필름처럼 장면들이 떠오르네. 자전거와 자전거를 보면 떼놓을 수 없는 사람들과 그 시절들이.
다시 때 빼고 광내면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깨끗하게 닦고 기름칠하고 타이어도 갈고 하면, 다시 성형한 것처럼 쌩쌩하게 쭉쭉 바람을 가르며 달릴 수 있을까.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추억이라는 예쁜 이름이 될 즈음, 즐거웠던 시간들만 가득 싣고 신나게 달려볼 날을 기대해 볼란다.
사람의 마음도 때 빼고 광내고 기름칠하고 타이어도 갈아서 다시 새것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앉아주지도 못한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자전거에게 부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