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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May 07. 2021

하루를 채우는 것은 사소한 선택들이다





사거리 모퉁이에

 서 있었다. 갈 곳은 분명한데 어떻게 갈까를 고민 중이었다. 버스를 탈까. 생각해보니 여기서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없다. 택시를 타자. 작정하고 걸으면 못 걸을 거리는 아니지만, 오늘 난 몹시 발이 피곤하니까. 그렇게 목적지 방향의 택시를 타기 위해 조금씩 걷다가, 아차 싶은 것이 이 곳은 택시마저도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었다. 나는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제법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운도 따라줄 거라는 작은 기대감.

오랜만의 맑음인 하늘을 바라보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들이 기어들어왔다. 선택, 선택들.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걸을지. 버스도 없고 택시도 귀한데. 어쨌든 걷다 보면 택시가 많이 다니는 곳까지 갈 수 있겠지. 그런데 걷기 싫다. 그곳은 저기 마트 뒤편인데. 먼 거리를 갈 작정이었다면, 잠시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했다시피, 몹시도 발이 피곤했고, 갈 목적지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잠시의 이도 저도 못한 찰나의 갈등. 저쪽 길을 택했으면, 택시를 잡기가 수월했을 텐데 이미 이쪽 길로 와버림을 선택하는 바람에 기다림이 필요하게 되고 말았다. 편하게 가고 싶었는데.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게으름쟁이니까. 기어들어 온 생각들은 뜬금없이 서글픔을 만들어 내고, 갑자기 황량한 네거리 중앙에 홀로 서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선택이란 단어는

광활한 모래사막만큼이나 넓어서, 선택이란 글자 자체에서 멀미를 느낄 때도 있다. 둘 중에 하나, 여럿 중에 하나, 또는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다 하더라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밥을 먹을까 라면을 먹을까,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카페라떼를 마실까, 라면을 먹는 다면 어떤 라면을 먹을까, 커피밖에 없으니 커피를 마셔야겠다. 모든 하루가 그렇게 채워진다. 크고 작은 선택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들. 은연중에 돌아보면 구구절절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서정주 시 자화상)가 아니라 8할이 선택들이다. 8할이 아니라, 전부라고 해도 농담이라고 흘리지는 않겠지. 하루는, 저금통에 저금을 하듯 선택을 모아서 이루어진다. 너무나 사소로워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을 뿐. 한 번 돌아보시라. 오늘을 어떻게 채웠는지.



광활하게 넓은 선택의 사막 위에서, 

살다 보면 좀체 만나기 힘든 오아시스처럼 커다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실수 없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믿고 신중히 선택을 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잘못된 선택임을 깨달았을 때, 그 절망감은 깊은 우물 속에 떨어진 끈 없는 두레박과도 같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의 나의 선택에 스스로를 불신하게 되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신중함이 넘치다 못해 급기야 남에게 선택을 부탁하거나 강요하기도 한다. 이 부작용을 과감하게 떨치고 잘못된 선택을 이겨내는 방법은, 뻔한 얘기지만 자신을 믿어야겠지. 그리고 후회하지 않기로 자신과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후회가 온다면, 그냥 받아들여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독이자. 그래야 미련이 남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던 사거리에서,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잔잔한 바람같이 씁쓸함을 주는 선택 오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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