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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May 10. 2021

그냥 그런 날이었을 뿐

2020.12.14.



며칠 전부터 겨울바람이 무섭도록 불어 제치고 있다. 지금 나는 햇살이 비치는 방에 앉아 볕을 즐기는 중이다.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꺼내어 볕에 널어놓고 싶어 진다. 

살면서 우리는 사소하지만 꼭 처리해야 할 일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하고 나면 생각도 안나는 것들.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핸드폰이 말썽이었다. 인터넷으로 우리 집 냥이의 모래를 주문하는데, 아 이놈의 핸드폰이 구매하기를 아무리 눌러도 먹히지를 않는 거였다. 네이X 쇼핑의 문젠지 내 폰이 문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사이트를 닫았다가 열었다가, 구매하기를 누르고 누르고 또 눌러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한순간 화가 치밀었다. 짜증이 폭발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고 있던,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물밀듯 밀어닥치면서, 내가 지금 이일 말고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이렇게 속을 썩이냐고 핸드폰에다가 악다구니를 썼다. 급기야 급한 일도 아니었던 것들까지 내 마음을 몰아세우니, 나는 종래에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성질이 나버렸다.




휴우 핸드폰을 내려놓고 베란다에 나가 칼바람 한 움큼 들이켜고, 찬찬히 다시 폰을 열고 시도를 했다. 겨우 주문을 넣는 데 성공하고. 보니까 웹 상태가 원활하지 못했던 것인지, 내 폰이 문제였던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잠시 숨 고르기 할 만큼의 기다림이 필요한 거였더라. 평소에는 클릭만 하면 금방 넘어가던 다음 화면이 그 찰나의 기다림을 하필이면 오늘따라 필요로 했던 거였더라.

늘 해왔던 평소와의 다름. 오늘따라 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 홀로 툴툴댔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부끄러움이 온몸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더라.

이게

뭐라고 

말이다.

이미 내 마음속에 못처럼 단단히 박혀버린 틀이란 것에서 벗어나서 화가 난 건지 아니면 그냥 화를 내기로 작정을 해서 화가 난 건지. 

잠깐이었지만, 자신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불안감을 주었으니 한 번쯤 스스로의 행동에 반성하고, 또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생채기를 냈으니 작은 위로라도 줘 볼 일이다. 너무 사소로워서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일들도 오늘처럼 어느 날 또 불쑥불쑥 찾아와서 스스로를 괴롭게 할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서 보니, 내 마음 어딘가가 무언가에 치여 오도 가도 못하던 것에 설상가상의 작용이 기름을 부은 게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는 뭐 그런 일로 다 화가 나냐고도 할 것이다. 나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예기치 않았던 나 스스로의 반응 때문이리라.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얻은 소소한 깨달음. 마음의 여유 없음이 밑바닥 어디쯤 보이지도 않을 듯이 걸쳐있던 그 무엇인가를 긁어버린 듯함. 지나고 나면 그깟 일로 왜 그랬을까 아무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혼낼지도 모를 일이다.

잔잔한 척 잠자고 있던 마음의 틈에 후회의 돌팔매가 던져진다. 그 던져진 돌멩이는 넉넉하지 못했던 마음이란 녀석을 탓하면서 아주 사소한 이유로 스스로에게 기어이 생채기를 입힌 꼴이 되어버렸다. 꼴이 우스워진 거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이 축축하고 꿉꿉한 마음을 덜어내서 볕에 짱짱하게 말려 기분 좋게 개서 다시 넣고 싶다. 그리고, 쿨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뭐, 그깟 일일 지언정 성질날 수도 있지 뭐. 그럴 때도 있지 뭐. 부끄러움도 후회도 넣어둬 넣어둬. 그냥 그런 날이었을 뿐. 그냥 그런 날이었을 뿐이라는 것만 받아들이면 될 뿐.

아무것도 아니잖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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