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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May 14. 2021

굿바이 얄리

날아라 병아리

 



출처 Pixabay


여러분은 어떤 노래나 음악이 당신의 히스토리의 한 부분과 맞물려 있나요? 우연히 듣게 된 노래나 음악이 그때 그 시절로 기억을 소환시키는 경험은 다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해철(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라는 곡을 듣다 보니 그림자처럼 지난 추억 한 조각이 따라옵니다.




요즘도 학교 앞에서 노란 병아리를 파나요?(판다는 말이 싫지만 그때는 흔한 모습이어서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초딩, 아니 국딩 2,3학년쯤 되었을까요? 내가 다닌 학교들은 왜 그렇게 다들 산꼭대기처럼 높은 곳에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높이와 길이만 다를 뿐, 모든 학교가 다 그랬네요.


국민학교는 올라가는 양옆으로 한쪽은 집들이, 한쪽은 문방구가 쭈욱 있었어요. 한 날, 정문 앞에서 노란 아이들이 삐약삐약 하며 박스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삼삼오오 국딩들이 그 박스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구경을 했답니다. 물론 저도 그중의 한 명이었고요. 그러다 어느 날 큰 맘먹고 꿍쳐놓은 용돈을 털어 한 녀석을 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가 추웠던 계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새 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이른 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아랫목에서 언니와 나란히 이불 덮고 티비보던 게 기억나는 거보면 따뜻한 게 좋았던 계절인 것은 분명한 거 같거든요.


시끄럽다고 엄마가 핀잔도 주곤 했지만 그래도 저와 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삐약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언니와 전 수업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삐약이를 보려고 냅다 집으로 달리곤 했지요. 쌀알도 주고, 과자도 주고, 물도 주고 그렇게 병아리를 살뜰히 보살폈어요. 아플까, 닳을까 애지중지하면서.

노랗던 병아리는 어느새 갈색 털들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고, 점점 어른이, 닭이 되어갔습니다. 어린 마음에 더 이상 작고 이쁜 노랑이가 아니어서 조금은 시무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좋았는데......


여전히 냉기가 옷 끝자락에 붙어있던 어느 날, 병아리 별로 떠났습니다. 어이없는 저의 실수로 말이지요.


저는 아직도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듭니다. 엉엉 울면서 언니와 함께 삐약이를 근처 땅에 묻어주었어요. 굳어있던 땅을 파고 묻으면서 춥지 않기를, 다음에는 더 좋은 가족을 만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란 단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어요. 같이 놀 수 없고, 같이 잘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슬펐고 또 미안했습니다.

그 후로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아주 가끔씩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느낌들이 항상 달랐던 거 같아요. 세상을 조금씩 배우고 알게 되면서 죽음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도 때마다 달라졌고,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죽음들을 목도하게 되면서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왔네요.





날아라 병아리 노래가 세상 밖으로 나온 후에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내 아픔도 함께 소환되곤 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변해가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어쩌면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노랫말은 비단 이 노랫말을 만든 이들과 저만의 추억은 아니겠지요. 가끔, 내 어린 시절의 풍경과 지금 이십 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의 어린 시절의 풍경이 오버랩될 때가 있어 신기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들과 나 사이에 달라진 것이 훨씬 많겠지만, 같은 것도 분명 있다는 말이지요. 지나온 유년의 그 어느 시절을, '나때도 그랬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정말 시간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또 어떤지 궁금하네요.




https://youtu.be/-X41UVzR1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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