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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Dec 03. 2021

눈 감고 보는 하늘이 더 파랬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


볼을 훑고 가는 바람은 서늘하기 짝이 없는데,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


'눈 감고 보는 하늘이 더 파랬다.'

오래전 고등학교 축제 때 시화전에서 본 국어 선생님 작품이다. 이후로 쇠털같이 수많은 날들을 지나왔고 쇠털같이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는데 이상하게도 아주 가끔씩 이 짧은 시가 떠오르곤 했다. 왜일까. 지금 나는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많은 것 같은데 말이지.


아주 가끔 이 시가 생각날 때면 눈을 감고 하늘을 보곤 했다. 일순 어둠 속에 잠식되었던 하늘은 곧 눈을 뜨면 더 새파랗게 다가오곤 했다. 눈을 감았던 순간 하늘의 모습은 인화하지 않은 날것의 필름 같은 것이었다.


수 해가 지나도 이 글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도무지 안갯속인 것들이 있는. 기억이라는 것.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지 7개월째다. 브런치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글 씀에 게으름이 낑겨 길을 잃고 버벅대고 있는 중이다. 블로그 글을 발췌해서 가져오는 것조차도 낑긴 게으름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은 참, 무성의한 사람이다.


매일은 아닐지라도 무엇을 쓸지를 고민하는 시간은 많았는데, 쓰고 싶어서, 비우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왜 쓰지를 못할까. 그 '왜'에 갇혀 브런치를 켜놓고 화면만 노려보다 닫은 날들이 수두룩하다. 일단 키보드라도 두드려보자고 손을 올려놓아도 한자도 쓰지 못하고 닫는 일도 잦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갇혀있는 생각들이 너무나 철옹성같이 완강해서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인 채로 머릿속에 멈춰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워져 버린, 잃어버린 언어들도 큰 벽이었다.  반쪽자리로 둥둥 부유하는 자들과, 불투명 가림막에 가려 형태를 알 수 없는 존재로 머리 안에서만 미친 듯이 맴을 도는.

 그것들을 어찌할까.


사는 것에 내몰려 '씀'을 모조리 놓고 버리고 살았던 지난한 날들이,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지우고 깡그리 가져가 버렸다. 글자들이 저 혼자 떠다니며 문장이 되지 못할 때의 서글픔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질 때가 있고,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질 때가 있으니 종내에는 그냥 쓰는 걸 멈춰 버린다. 지나온 시간들이 원망스럽고 어쩜 이럴 수 있나 싶어 스스로도 원망스러워진다. 시작도 하기 전에 한계에 부딪친 씁쓸한 기분이다.


멋진 미사여구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춤인 상태로 뇌 벽만 알짱알짱 건드리는 단어들을 기억해내려다 하세월을 보낸다.


브런치에게 자꾸 미안함만 쌓인다. 같잖은 변명들을 길게도 썼다만.

 

머릿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고 갇혀있기를 선택한 그것들은 어찌할까. 시간은 가는데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한숨만 는다.

누가 보면 엄청 대단하고 삐까뻔쩍한 스토리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알겠다. 공갈빵.


일단 기다려주기로 한다. 점점 추워지니 게으름은 더할 것이고 밖으로 나오는 것도 더 싫을 테니까.



미아가 되어 방황하고 있는 언어들이 다시 집을 찾아올 수 있게 열심히 독서 중이지만 장담할 수는 없으니 한물 간 전어라도 구워서 냄새를 피워봐야 할까.


십 대 때의 그 신선하고 통통 튀던, 연필만 잡아도 글이 되던 그때의 팔딱대던 언어들을 데려오고 싶다. 눈감고 보는 하늘이 더 파랬다 같은 각인 되어 절대 내 몸에서 사라지지 않을 언어들을 데려오고 싶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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