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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Nov 15. 2021

낡은 연보라색 꽃무늬 커튼을 보면



며칠 전부터 자꾸만 눈이 갔다. 요즘 같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법한 촌스러운 꽃무늬에다가 연보란지 진분홍인지 아리까리한 색의 커튼. 

가만히 쳐다보노라니 낡고 색도 바랜, 그럼에도 아직 커튼이랍시고 열일 중인 커튼에 문득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이 커튼은 당시 살던 집과 가장 가까웠던 시장의 커튼 집에서 깔 맞춤으로 제작? 한 것이다. 방이라고 해봤자 중간에 문을 둔 고만고만한 크기의 두 칸 뿐. 각 방마다 창문이 하나씩. 그래서 커튼도 쌍둥이였다. 엄마가 커튼을 달고 난 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모습, 나도 이쁘다 감탄하며 바라봤던 모습들이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된다.

그 집에 깔 맞춤했던 것이라 지금의 집에는 커버린 키 때문에 짧아진 바짓단처럼 둘 곳 없는 끝자락이 달랑 달랑거린다. 발목까지 오던 롱치마였던 것이 종아리까지 오는 어정쩡한 치마로 바뀌어버린 듯한.

스무해를 훌쩍 넘긴 세월을 색마다 꽃마다에 알알이 먹어버렸나. 어쩌면 처음에는 화사한 분홍 꽃이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얀 바탕이 순백색이 아닌 것을 보면 꽃들도 연보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집은 엄마와 함께 산 마지막 집이었다. 그 집에서 나는 독립을 했었다. 내가 그 집을 떠남으로써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그 집에서 15년 이상을 살았다. 수많은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지나간 날들은 웬만하면 말랑말랑한 이름을 달고 내게 오지만, 그 집은 서걱서걱 날로 씹히는 생쌀 같은 아픈 이름도 함께 달고 온다. 무엇보다 나의 철없고 부끄러운 흑역사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온다.


그 집에서 형제들이 모두 결혼을 해서 떠났고 마지막에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집. 생애 최초의 '우리 집'이었던 집.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허름한 그 집을 참 많이도 아꼈던 것 같다. 이름만 집이었을 만큼 초라했던 집을 하나씩 하나씩 집답게 만들었으니까. 연보라 꽃무늬 커튼은 그렇게 어느 정도 행색이 갖춰진 집다운 집에 꽃이라도 피우고 싶으셔서 심으셨을까.


생각해 보니 엄마는 꽃무늬를 좋아하셨다. 아니 예쁜 것을 좋아하셨다. 삶의 무거운 추 때문에 가지지 못했을 뿐. 여자로서의 삶보다 엄마로서의 삶을 오래 사셔야 했던 우리 엄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로 이사 오셔서는 노년의 즐거움을 누리긴 하셨을까.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을 당신의 삶이 커튼 속의 꽃으로 피었다.


활짝 핀 꽃잎들이 봄여름 가을겨울 없이, 칼바람이 불면 칼바람을 막아주고, 따가운 빛살이 내리면 그 빛살 온몸으로 머금어 주는 너는 오늘도 여전히 꽃이다.


엄마는 추억 자리로 떠났고 연보라 꽃무늬 커튼 너는 꿋꿋이 남았구나.

그리고

나도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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