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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Oct 16. 2021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  박재삼 시

시와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귀뚜라미는 목이 쉬도록 울어대느라

아플 틈도 없겠다.

낮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아낌없이 내어 주더니

지금은 어느 곳에서

날개를 접고 몸을 뉘었는지 고요하다.

그에 아랑곳 없이

귀뚜라미 소리는

밤의 적막을 부수듯 쉼이 없다.

새들처럼 녀석들도

지친 목을 돌보는 휴식이 필요할 텐데.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기억 속을 헤집어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바다는 본 적이 있는데.

일출이든 일몰이든 말이다.

이 시에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석양이다.


마음이 한자리를 못 앉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며 어슬렁 거린다.  

시처럼

서러운 첫사랑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그네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 속에 있을 때,

사랑이 떠났을 때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아픈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시절 인연들...


아련했던 첫사랑의 기억,

그다음 사랑,

그 그다음 사랑의 기억들이

가을볕의 파편처럼 흩날린다.

또, 추억이 강물처럼 젖어들고 만다.


내게도 그런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내게도 그런 이별이 있었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살아간다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뱉어버리면 괜히 서러워진다.


마음에

머뭇대며 살금살금 동요가 일면

하릴없이 그 동요 속에

마냥 머물고 싶어진다.

그 동요가

슬픔일 수도 쓸쓸함일 수도

외로움일 수도 있을 테지.


홀로 바다를 찾았던 어느 날,

파도처럼 일렁대던 마음 한끝

다독여보려 갔던 그 어느 날.

그 마음 바다에 두고

돌아오고 싶었건만

일렁대던 파도만 덤으로 얹어

돌아왔던 몹시도 아팠던 그날.

그날의 바다는

내게 파도를 내주고도

시치미를 떼더라.


제목만으로도 눈물이다.

언젠가는 꼭

울음이 타는 가을 강가를

 서성이고 싶다.

종일 물멍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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