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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Sep 15. 2021

언어의 온도  이기주

책이 있는 공간.  말과 글에는 나름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가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중략
그렇다면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 서문 중에서

 




오래전에 한창 베스트셀러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그 시기 어디쯤에 이 책을 구입했었다. 그래놓고 쌓아두기만 했다. 언어의 온도를 가늠할 정도의 온도 자체를 갖지 못했던 때를 마침 만나서 그 현실을 헤엄쳐나가기에도 바빴던 듯싶다.


이 작품의 온도는 purple일까. 사람마다 색에 온도를 입힌다면 보라색도 사람마다 온도는 다를 것이다. 게다가 보라색도 어디 딱 보. 라. 색. 한 가지더냐.


내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일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누구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사실 따뜻함만 또는 차가움만 있는 언어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따뜻한 것이 아닐까. 늘 적정한 따뜻함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또 언어다. 같은 말도 오늘은 따뜻하다가 내일은 차가울 수 있는 것이지 않나.


내용에는, 몰랐던 단어의 유래라던가 순우리말 이라던가 단어의 어원에 대한 풀이가 많이 들어있다. 즐겁게 읽었던 부분이다. 또한 많은 영화들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내가 본 것과 보지 않은 것들이 섞여있다. 역시 즐겁게 읽었던 부분이다.

반면에 어머니 혹은 부모님, 사랑 등 삶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들은 가슴을 먹먹하고 스산하게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참 토실토실하고 빵빵한 도야지 같은 책이다. 나도 같이 토실해지고 싶게 만드는 책.


중간쯤 '내 안에 너 있다'편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그 속에 등장하는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완전히 문외한이지만 당장 너튜브로 달려가서 음악을 또 감상했다. 댓글들을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잔뜩 있더라. 언어의 온도를 읽다가 온 사람들이 태반.


어떤 글에서는 나의 과거를 읽어 내고 어떤 글에서는 나의 치부를 들춰 내고 어떤 글에서는 나의 슬픔을 드러내고 어떤 글에서는 나의 아픔을 길어 올리게 했다. 언어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감정들이 줏대 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네를 타기도 했다.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 p 46 부재의 존재 중에서


부재의 존재. 누구는 과거를 읽어내고 누구는 과거의 다른 이름일 뿐인 추억을 읽어내고 누구는 현재진행형을 읽어낸다. 내게는 매일 먹는 밥처럼 일상적인 일이다.



"기주야, 인생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 p 101


잘못된 줄도 모르고 신나게 뜨개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잘못을 깨닫는다. 어디부터 꼬였는지를 찾다가 머릿속도 꼬이고 다시 시작하던가 잘못된 한 코를 찾아야 하는 일이 아뜩해서 먼 산만 보다가.

그래. 꼬인대로 차라리 계속 떠도 괜찮지 않을까. 목도리를 뜨려고 한 거지만 모자가 되어도 나쁘지 않겠는 걸. 아니 더 예쁠수도 있겠는 걸!

원하던 것과 조금 비껴간다고 해서 인생 쫑나는 것도 아니고. 늘 원하던 대로 '짠'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글文, 지지 않는 꽃

"라이팅? 글쓰기? 글은 고칠수록 빛이 나는 법이지. 라이팅은 한마디로 리라이팅Writing is rewriting이라고 볼 수 있지."

중략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 p 139 ~ 140 라이팅은 리라이팅 중에서


브런치 작가가 된지 4개월여 지났다. 그럼에도 제대로 작정하고 정말 쓰고 싶은 글 발행을 못하고 있다. 블로그 글을 아주 가끔 옮겨놓는 것 외에는. 참 이상한 일이긴 하다. 블로그와 브런치 모두 글을 쓴다는 것에는 다르지 않는데 심각한 심리적 벽이 느껴진다는 것이 말이다.


라이팅 이즈 리라이팅.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글을 쓰다 보면 뻔한 단어조차 생각이 안날 때가 다반사고 내가 가진 언어의 빈약함이 여실히 드러날 때의 참담함을 느낄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한계가 턱까지 차오를 때가 부지기수다. 어떤 때는 너무너무 쓰기 싫어서, 또 어떤 때는 간절히 쓰고 싶은데 써지지가 않아서 지칠 때도 비일비재. 밑의 글에 있는 '나이를 결정하는 요소'에 머릿속에서 깜쪽같이 사라진 언어들을 다시 찾아오지 못할 때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주 나를 헤집는 생각 중에는 내 언어의 빈곤이 주는 비애가 있다.






행行, 살아있다는 증거

감정은 연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청률과 바꿀 수 없고 돈으로도 구매할 수 없다.

감정은 비매품이다.  p -  240 감정은 움직이는 거야 중에서


감정은 비매품인데 아주 가끔 사고 싶다.



느끼는 일과 깨닫는 일을 모두 내려놓은 채 최대한 느리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유일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삶의 밝음이 사라지고 암흑 같은 절망의 그림자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때 비로소 진짜 늙음이 시작된다.   - p 270 나이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빈번히 나이와 늙음에 대한 상념들이 꼬투리를 잡고 나를 놓지 않을 때가 있다. (정말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십 년 만 어렸으면 같은 생각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후회도 (안 하고 싶지만) 자주 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이 불쑥 불쑥 들 때마다 나이를 먹었구나가 오히려 더 생생하게 나를 몰아친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 것을 몸 구석구석 가슴 구석구석 머리 구석구석 박아서 박제를 해놓아야 할까.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92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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