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는 아는데 '애린 왕자'는 뭐지 싶었다. 저자는 같은 사람인데 제목이 뭐지 싶었다. 그렇게 손에 든 책. 알고 보니 요즘 많이들 읽는 핫한 책이란다. 책을 열어보니 대번에 알겠더라 하하. 나는 갱상도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한들 모든 것을 다 알아듣고? 이해하지는 못했다. 경상도라 해도 지역은 다양하고 사람도 다양하니 저마다 사용하는 방식이나 사투리가 다를 수도 있다. 더 소상하게 말하면 경북 포항이다.
어린 왕자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글의 흐름이나 내용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처음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은 많이 낯설 수도 있겠다 싶다. 해석본이 필요할 만큼 외국어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억양이나 글의 어미들은 어느 정도 익숙하고 생생한데 나도 모르는 생소한 단어들이 제법 있었다. 흥미롭게 읽었지만, 초반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작의 감동이 조금은 반감되는 느낌이 아쉽다. 이 책을 읽을 분들은 부디 '어린 왕자'를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명작이고, 문장 하나하나 맛나게 씹어 영원히 소화되지 않도록 마음 구석구석에 알알이 박아놓고 싶은 책이 어린 왕자거든.
비행기 조종사인 내가, 6년 전 비행기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떨어진 후 만난 한 소년과의 9일간 함께했던 이야기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숫자로 B612라는 소행성에서 왔으며, 그가 별을 다니면서 만났던 군상들과 지구에 와서 만났던 노란 뱀, 사막의 꽃, 장미, 여우, 철도원, 장사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고, 9일째 밤에 자신의 별로 돌아간 후, 어린 왕자를 그리워하며 남기는 이야기다.
"아제도 알끄다...... 그래 슬프모 누구든동 노을이 보고 싶은 기다."
"'질들인다'는 '관계를 맺는다' 카는 뜻인데." "관계를 맺는다꼬?" "니는 여즉 내한테는 흔한 여러 얼라들하고 다를 기 없는 한 얼라일 뿌인기라. 그래가 나는 니가 필요없데이. 니도 역시 내가 필요없제. 나도 마 시상에 흔해빠진 다른 미구하고 다를끼 하나도 없능기라. 근데 니가 나를 질들이모 우리사 서로 필요하게 안되나. 니는 내한테 이 시상에 하나뿌인기라. 내도 니한테 시상에 하나뿌인 존재가 될 끼고......"
질들인다(길들인다), 미구(여우)
"사막이 아름다븐 기는, 어딘가 응굴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데이......"
응굴(우물)
"잘 가그래이." 미구가 말해따. "내 비밀은 이기다. 아주 간단테이. 맘으로 바야 잘 빈다카는 거. 중요한 기는 눈에 비지 않는다카이."
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몇십 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강렬했던 느낌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른다. 누구나 아이였던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면 아이였던 시절을 잊고 살게 된다. 보아뱀을 삼킨 모자라던가, 양이 들어있는 상자라던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어른들은 그 그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숫자로 많은 것을 판단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숫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의도적으로? 생각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었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마도 싫었던 모양이다. 그때 이미 나는 숫자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겠지. 그 숫자에 익숙해짐이 괜히 싫었다. 그래서 왠지 숫자들만 외면하면 어른이 더디 될 것만 같이 단순한 생각을 한 것이지.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B612에 가보고 싶기도 했었고, 어린 왕자를 만나 친구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책에서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까지 다닌 별들에는 각각 왕, 허영 쟁이, 술꾼, 사업가,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을 켜고 끄는 사람 하나, 지리학자가 살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들과 세태를 풍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왕자를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해주는 노란 뱀, 친구와 우정에 대한 깨달음을 가르쳐주는 여우, 그리고 장미, 사막의 우물 등 가슴을 흔들어제끼는 빛나는 구슬같이 반짝이는 문장들이 별처럼 많다.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읽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도 없겠지만,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물론 어린 왕자를. 애린 왕자는 색다른 맛이 있어 새롭게 읽어보는 재미는 있지만, 한 줄 한 줄 문장에서 주는 떨림들을 모두 전하기에는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각색본에 원작(번역본이라고 해야 하나)이 함께 실렸다면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생각이 들었다.
'전라도 편'도 출판될 예정이라고 하던데, 출판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애린 왕자로 다시 만나 반가웠다.
<애린 왕자>는 골목 띠 댕기믄서 흙 같이 파묵던 시절 그리버가 같이 놀던 얼라들 기억할라꼬 내가 다시 써봤다. 두둥실 정겨븐 이 말, 이 사투리 이기 바로 내 친구들 그 자체다. 세월에 자꾸 열버지는 내 동심은 쪼매 달랐던 기지 이기 서울말 아니라고 틀린 거는 아니자나. - 최현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