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여전히 내 꿈은 남미

by 레츠고하이


왜 사나요?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감동받기 위해서 삽니다”라고 답변한다. 감동의 크고 작은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70 넘은 내 나이에는 살면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큰 감동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거의 대부분이 소소하다. 그림 수업에서 그야말로 열심히 반장 역할을 하는 젊은 학생, 지하철 내리기 전에, 자리를 양보해 준 분을 찾아와 다시 ‘감사’ 인사하는 임산부 부부, 팔순에 글쓰기를 시작한 선배님, 그리고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반문하게 만드는, 외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종로 3가 포장마차 풍경 등이다. 그때마다 살짝 미소를 짓게 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덕분에 사는 멋과 맛을 느끼기도 한다.


감동을 쉽게, 자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여행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버킷리스트를 적어 보라고 하면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의 진미는 준비하는 데 있다”라는 말처럼, 낯선 길에 나설 준비를 하면 내내 가슴이 설렌다. 나는 20년째 자유여행을 하고 있다. 패키지여행에 비해 당연히 준비할 것이 많고 더 많은 두근거림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여행은 아내와 내가 수시로 대화하며 준비한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먼저 내가 2-3개 여행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일반적인 여행 일정과 정보를 얻고 여기에 여행 카페, 유튜브, 블로그 등을 참조하여 우리만의 여행 경로를 만들면 아내는 여기에 꼭 방문할 곳과 맛집 등을 체크, 추가하며 색을 입힌다. 그 후, 몇 번의 수정을 통해 어느 정도 계획이 완성되면 최종적으로 아내의 결재를 받는다. 인생이 그렇듯, 이렇게 애써 준비했는데도 한순간에 계획을 바꿔야 하는 일도 생긴다.


얼마 전, 오랫동안 마음속에 넣어두었던 일본 자유여행을 했다. 북해도에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처음에 나는 렌터카를 이용하여 6박 7일 일정으로 북해도 동쪽 끝, 시레토코 국립공원을 다녀오는 여정을, 수시로 아내에게 설명하며 준비했다. 주행거리가 1,300km이고 이틀은 하루에 400km를 운전해야 한다. 아내에게 완성한 일정을 설명하였더니 무 자르듯 “그건 무리예요”라고 한다. 그동안 별다른 얘기가 없다가 이건 뭐지? 역시 여자인가? 이유는 한 마디로 나이 70인 나에게 장거리 운전이 무리라고 한다. 하긴 은퇴 후에는 평소에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운전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도 “가능할까?” 했다가, ‘시레토코’에 꽂혀 “가능할 거야?”를 반복하며 만든 일정이었다. 어쩌나? 아내 말을 들어야지. "차라리 잘됐다" 하며 대중교통을 이용, 노보리베츠와 삿포로 두 곳만 방문하는 5박 6일 일정으로 변경했다.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다른 여행 계획을 짜야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준비했다. AI 덕분이다. 기간, 장소, 여행목적 등으로 프롬프트를 작성해서 여행 일정을 짜달라고 하여 답을 얻고, 여기에 내 정보나 요구를 더해 묻고 답하기를 몇 번 반복하여, 숙소와 현지인만 아는 맛집까지 거의 완벽한 일정을 짤 수 있었다. AI 대단하다. 감동이었다.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는 나의 이런 설렘을 알까? 일본 여행은 특유의 아기자기함, 섬세함, 치밀함 외에도 편안함을 준다. 이번 여행 중 일본의 새로운 멋을 배웠다. 자유여행을 하다 보면 구글 지도가 있음에도 현지인에게 길을 묻게 된다. 여행 중 현지인에게 세 번 길을 물었는데 모두 목적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이가 건네는 친절은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감동이었다. “여행이란 길을 찾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자유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주로 자동차 여행을 했는데 아직 남미에 가보지 못했다. 여행 관련 오랜 꿈이 있다. 꼭 해 보려고 했던 남미 여행은, 칠레 남북 4,300km를 종주하는 자동차 여행이었다. 은퇴 기념으로 한 달짜리 여행을 준비했었다. 북부에서 출발해, 빛나는 황금빛 모래가 끝없이 펼쳐지고 태양 빛에 붉은 바위가 춤추는 아타카마 사막과 우주 속에 나 혼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달의 계곡을 방문한다. 중부를 향해 1,500km를 달려 세련된 도시 풍경과 알록달록한 골목, 시장의 활기가 어우러진 산티아고와 발파라이소를 즐긴다. 그리고 남쪽으로 30여 시간을 달려 안데스 산맥의 날카로운 봉우리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를 자랑하는 파타고니아, 펭귄과 남극으로 향하는 바다가 어우러진 푼타 아레나스에서 편안함을 즐기는 일정이었다.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비행기표까지 예약해 놓고도 가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이다. 이제 아내는 1,300km도 무리라는데 4,300km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남미 패키지여행을 생각해 본다.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이구아수 폭포를 꼭 가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시간을 맞추어 리우 카니발에도 참여하고 싶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끔 여행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일정을 살펴본다. 비행시간도 장난이 아니고,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호텔로 들어가는 일정에 자신이 없다. 대안으로 비즈니스를 이용하고 여유 있게 진행하는 프리미엄급 상품을 살펴보면 가격이 만만치 않다. 친구가 내년 1월에 인당 3,000만 원 하는 품격 패키지로 남미를 다녀온다는 자랑을 한다. 부럽다. 나도 한번 질러 볼까나? 아내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답을 안 한다.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는데, 준비하는 친구가 단체 대화방에 일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준비모임에서 꼭 해 보자고 했던 액티비티가 빠졌다. 이어서 올라오는 글에 그 이유는 “70 넘은 사람은 입장 불가”라고 한다.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만약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것이다. “남미로 떠나겠습니다.” 이제 남미 자유여행은 정말 불가능하고, 체력은 패키지의 힘든 일정을 치를 자신이 없다. 하지만 꿈은 나이 들지 않는다. 남미는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다. 마음속으로 보고 듣고 걷는다. 여전히 내 꿈은 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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