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호송차 탈 뻔
“경찰입니다.” 길을 가는 데 난데없이 한 남자가 다가와, 목에 걸린 신분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어 그는 다급히 물었다. “OOO에서 지갑 주우셨죠? 그거 어디 있습니까?” 오래전 직장 동료 A가 겪은 일이다. 사연은 이랬다. 어느 날 A가 동네 길을 걷다가, 한 남자(B)가 택시를 타며 지갑을 떨어뜨리는 걸 보았다. A는 그것을 주워 바로 근처 치안센터에 맡겼다. 그 후 B는 분실 신고를 하고, 경찰은 CCTV를 뒤져 지갑을 주운 A의 모습을 확인한다. 며칠 뒤, 경찰은 잠복근무 끝에 같은 옷차림의 A를 발견하고 검거를 시도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땐 “세상 참 무섭네”하며 남의 일처럼 웃으며 넘겼다. 몇 해 뒤, 그 일이 내 일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오래된 단독주택을 임대하고 있다. 남들은 부럽다고들 하지만, 일흔 살의 나에게는 버거운 짐이다. 수시로 수리할 일이 생기고, 세입자 관리와 청소, 우편함 확인, 공과금 계산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은퇴 전에는 2주에 한 번 정도 방문하여 이 집을 관리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쓴 건 우편함이었다. 가로 30센티 남짓한 작은 철제 상자는 다섯 가구가 쓰기에는 좁았다. 게다가 우편물만으로도 부족한 공간에 광고지, 작은 택배 물품, 이름 모를 선물, 심지어 쓰레기까지 뒤섞여 그 속은 마치 작은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질서와 무질서가 부딪히는 곳이었다. 우편함이 넘치기라도 하면 우체부는 바닥에 우편물을 내려놓았고, 잠시 후면 그것들은 대문 앞에 이리저리 흩어지곤 했다. 우편함 정리는 늘 나에게 적잖은 부담이었다.
은퇴 후에는 이 집의 방 한 칸을 사무실로 꾸미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들른다.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우편함 점검이다. 광고지와 쓰레기는 바로 꺼내 버리고, 우편물은 세입자들이 꺼내 가기 좋게 가지런히 정리한다. 우편물이 아닌 물건은 사무실로 옮겨두고, 수취인이 있으면 문자로 알려준다. 수취인이 없는 경우는 보관하고 있다가 물건 주인으로부터 “혹시 이런 것 보셨나요?” 하는 연락이 오면 “제가 보관 중이니 찾아가세요”라고 안내하며 “앞으로는 우편함에 물건을 넣지 마세요”라고 부탁한다. 이것은 나름의 우편함 질서 유지 방법이었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날은 우편함 입구에 지퍼백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건 뭐지?” 하며 꺼내 살펴보니 이런저런 물건이 몇 개 들어 있는데 보낸 사람, 받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 우리 임차인에게 보낸 선물이겠거니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무실로 옮겨두었다. 그 후, 5박 6일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10일간의 추석 연휴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자. 그래도 주인이 안 나타나면 치안센터에 맡겨야지.” 했다.
“경찰입니다.” 그날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평소처럼 우편함을 정리하고 있는데, 건장한 남자 하나가 다가와 신분증을 들이밀며 한 말이다. 나는 평소처럼 동네 순찰 관련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짜고짜 “우편함에 걸려 있던 지퍼백, 왜 가져갔습니까?”라고 했다. 말투는 차가웠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순간 전 직장 동료 A가 스쳐 갔다. 나는 "제 사무실에 옮겨두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내 말을 자르듯 말했다. “그걸 왜 가져갔죠?” 그 말투엔 내가 도둑이라는 확신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과 높은 톤의 목소리로 우편함이 늘 넘쳐 우편물이 아닌 물건은 따로 보관해 왔던 상황을, 그리고 이 물건은 보낸 사람, 받는 사람 이름조차 없었다며 마음을 다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의심을 아끼지 않는다.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내 일상의 작은 질서와 순수한 선의가 이토록 쉽게 '절도'라는 혐의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는 억울함에 목이 메었지만, “일주일 더 기다려보고 치안센터에 맡기려 했습니다”라고 간신히 답했다. 그제야 그는 마지못해 “물건을 보자”라고 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그 지퍼백을 가져와 건넸고, 경찰은 물건이 그대로인지 꼼꼼히 확인한 후에 내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가 내 정보를 조회하는 동안 문득 뒤를 돌아봤다. 골목 끝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경찰차가 서 있었다. 경찰은 나를 절도범으로 간주하고, 이미 호송차까지 호출한 상태였다. ‘절도범’으로 경찰 호송차를 탈 뻔했다.
사연은 이랬다. 임차인 중 한 명이 당근 거래를 하며, 매수자에게 돈을 받고 “10분 안에 가져가세요”라며 물건을 우편함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그사이 내가 집에 도착해 우편함을 확인하면서 그 물건을 사무실로 옮긴 것이다. 보낸 사람, 받는 사람 이름이 없으니 나는 당연히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매수자는 약속한 물건이 없다고 항의하였을 것이고, 매도자는 물건을 분명히 걸어 놓았는데 없어졌으니,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은 근처 CCTV를 뒤져 내 옷차림, 아니 내가 즐겨 메는, 백 등에 흰 선 3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아디다스 삼선 백팩’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복근무를 하다가 그날 ‘삼선 백팩’을 메고 걸어오는 나를 발견, 도둑놈 잡았다는 듯이 심문한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이름도, 주소도 없는 물건이 내 우편함에 걸려 있기에, 늘 하던 대로 작은 질서를 지키려 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 물건 매도인이 내 공간을 무단으로 침범한 것 아닌가? 몇 번을 되짚어 보아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내 공간과 나름의 질서를 지키려 했는데, 세상은 나를 도둑으로 취급했다. “아무리 맑은 물도, 의심의 렌즈를 통과하면 언제든 구정물이 된다.”라는 말처럼, 작은 질서를 지키고 싶은 내 진심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범죄자 취급받았다. 몸은 경찰 호송차에 타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몇 번이나 실려 갔고, 그 상처는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